일본 가마쿠라현 가마쿠라시에는 ‘고토쿠인(高德院)’이라는 사찰이 있다. 이곳에는 조선 궁궐에 건물로 추정되는 ‘관월당(觀月堂)’이라는 건물이 있다. 조선 왕실의 건물이 일본에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왕실은 1924년 조선 척식은행에 ‘관월당’을 담보로 돈을 빌린다. 이 후 조선척식은행은 재정이 어려워졌고 파산을 면하기 위해 스기노 키세이라는 일본의 자산가에게 돈을 빌리며 파산을 면하는데 이 때 그에 대한 답례품으로 관월당을 넘겨준다. 답례품이 된 관월당은 스기노 키세이의 별장으로 옮겨졌다가 고토쿠인이라는 사찰에 기증되어 현재 자리에 있게 된 것이다.

 

며칠 전 관월당의 현재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가마쿠라에 있는 고토쿠인을 찾았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높이 13.4m의 가마쿠라 대불을 지나자 관월당을 만날 수 있었다. 
관월당을 보자마자 느낀 것은 환수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일단 원형에서 너무 많이 변형됐다. 관월당의 옆면은 돌판으로 메워졌고 지붕의 모양도 전통 궁궐양식과는 달랐다. 의도된 변형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일본식 건물 같아 보이는 관월당을 보고 더 이상의 자료조사 및 연구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인데 찾아와야하지 않겠느냐 묻는다면 그것을 찾아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므로 찾고 싶지가 않다고 답할 것이다. 문화재 환수운동은 강제로 빼앗겼던 우리 민족의 잃어버린 역사와 혼을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찾는 작업이다. 해방 100년을 맞이하는 해에 맞춰 진행된 문화재 환수운동은 식민지 사과의 의미로 당시 일본 칸 나오토 총리의 담화를 통해 『조선왕실의궤』를 반환하게 하였고 정전60주년을 맞는 해에 진행된 문화재 환수운동은 오바마 대통령이 미군에 의해 약탈당한 조선왕실의 인장 9점을 정상회담 때 직접 반환하게 하였다. 
이처럼 문화재 환수운동은 그 의미가 분명해야만 진행할 수 있는 사건이다. 명성황후가 세자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궁궐 안에 세운 법당으로 추정하고 있는 관월당을 환수해오면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필자가 내린 결론이다. 

 

환수가치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두 번째 이유는 관월당을 사들이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데 있다. 문화재환수운동은 잃어버린 민족정신을 찾는 운동이기에 절대로 문화재를 사들이지 않는다. 우스갯소리로 “문화재를 사서 국내에 가져오는 것이 문화재 환수운동이라면 국내 최고의 문화재 환수운동가는 리움박물관의 소유주 이건희 회장일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작년에 문화재 경매를 담당하는 회사에서 ‘우리는 문화재 환수를 위해 문화재 경매를 실시한다.’라는 마케팅을 해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문화재 환수와 문화재 구입은 엄연히 구분해야하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화재 환수에 돈을 쓰지 않는 것도 비현실적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것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문화재환수를 위해 힘쓴다는 문화재청 산하 재단 이사장이 문화재 환수와 문화재 구입을 구분 못하는데 일반 국민이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것은 문화재계에 있는 지식인들이 문화재 환수운동을 ‘문화재’에만 초점을 두어 진행하기에 일어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환수의 문제로 다가서지 않고 구입을 해서라도 ‘관월당’을 찾아오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관월당 구입 및 이사 비용과 국내에 들어왔을 때 활용가치를 따져보겠다.
비용 문제부터 살펴보자면 일단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관월당’ 건물의 가격보다 이사비용이 최소 3배에서 10배 이상 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월당을 돈을 주고라도 사와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국내 기업이 그 정도의 기부금은 내지 않겠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떤 기업이 비용대비 효과가 적은 일에 발벗고 나서겠는가.  
문제는 또 있다. 비싼 비용을 내고서라도 찾아온다한들 궁궐 건물로 ‘추정’되는 건물이기에 한국에 와도 제자리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관월당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관월당을 환수해야한다고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1차 자료에 대한 조사와 분석을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 남이 한 이야기를 듣고 앵무새처럼 언론에 나와 떠들고 있었다. 제대로 된 조사조차하지 않고 환수문제를 거론한 지식인들의 뻔뻔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담보로 잡혔던 물건을 다짜고짜 빼앗긴 문화재라고 주장하던 자칭 지식인들이 왜 그런 오류를 범했는지 알 수 있었다. 1차 자료에 대한 조사 없는 이야기가 다 무슨 소용인가. 이러한 가짜 지식인들의 거짓말에 관월당을 환수해야한다고 방송사 프로그램까지 취재를 하여 보도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렇다면 관월당의 활용가치는 얼마나 될까? 경복궁으로 돌아온 자선당 유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해외에 있는 문화재는 모두 찾아와야한다며 가져왔던 경복궁 자선당 유구는 훼손이 심해 용이 불가능하여 자선당 복원당시 하나도 사용하지 못했다. 그 이후 현재까지 경복궁 북쪽 건청궁 뒤뜰에 방치돼 있다. 
자선당 유구를 활용하기 위해 복원에 사용은 못했지만 옆에라도 둬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여론에 경복궁 북쪽 건청궁에서 경복궁 동쪽 자선당까지 이동하는 안이 제시 된 적도 있다. 그러나 건청궁에서 자선당 앞으로 이전하는 비용이 전문가 추산 1억원이라는 결론이 났고 이전 안은 폐기됐다. 비용 문제로 인해 앞으로도 상당기간 자선당 유구는 건청궁 뒤뜰에 자리할 예정이다. 자선당 유구가 경복궁 안으로 돌아올 당시 삼성문화재단은 상당한 비용을 내고 자선당 유구 이전을 도왔다. 그러나 활용가치가 없는 문화재를 환수하는데 헛돈을 썼다며 아직까지도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상태다. 
앞선 사례를 비추어 볼 때 관월당의 국내 활용도가 가늠될 것이다. 자선당 유구의 경우 돌아올 자리라도 분명했지만 관월당은 돌아온다고 해도 어디로 돌려놔야할지 알 수 없는 문화재다. 그렇기에 국내에 들어와도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관월당 문제를 조사하면서 필자는 사실 한국의 지식인에 대해 무척이나 많이 실망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제대로 된 조사 없이 말로만 하는 지식인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신중을 기해야하는 환수 문화재 선정 작업부터 오류가 나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식인이라는 이름 아래 문화재 환수문제에 대해 공부하지 않고 무턱대고 환수작업을 시작하니 문화재 환수와 문화재 구입을 혼동하는 지식이들이 환수운동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앞으로 이런 지식인은 건전한 사회가 거르기를 소망해본다.

 

* 관월당은 2010년 국내로 들어올 뻔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협상이 파기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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