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봄의 시작은 으레 우리들에게 설렘과 기대를 안겨주기 마련이다. 청소년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들에게 봄은 곧 새 학년, 새 학기의 시작을 뜻하기 때문이다. 몇 반이 될까, 어떤 친구를 만나게 될까, 또 어떤 선생님이 내 담임 선생님이 되실까. 아이들은 이런 설렘을 안고 3월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더구나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있어서 기대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급식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실에서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점심시간 1시간 남짓은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유일하게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이렇게 청소년들에게 없어선 안 될 ‘점심’을 놓고 경상남도에선 논란이 한창이다. 작년 11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그동안 실시했던 무상급식을 중단한다는 입장 발표에서 불거졌다. 당시 홍 지사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무상급식은 포퓰리즘 정책”, “나의 초중고 시절에는 물로 배를 채웠다”라며 개인적 경험을 섞어 비난했고, 또 “학교는 밥을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는 비난도 퍼부었다. 그렇다면 그의 말을 하나하나 따져보도록 하자.

 

먼저 홍 지사와 경남도청은 경남의 열악한 지방재정을 무상급식 중단의 이유로 들었다. 과연 그 말이 사실일까? 경상남도는 지난 3월 1일 재정공시 발표에서 무려 1,561억 원 ‘흑자’라고 밝혔다. 이는 전국 광역도의 평균 흑자 규모가 89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경상남도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재정 흑자 규모를 자랑하는 수준인 것이다. 또 2015년 올해 기준 경남 지역 무상급식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비용 1125억 원 중 경남도청이 부담할 액수는 257억 원에 불과했다. 이에 따르면 홍 지사의 열악한 지방재정 때문에 중단한다는 주장은 결코 앞뒤가 안 맞는다. 흑자 규모로만 놓고 보면 경남도청이 전부 무상급식을 부담하고도 남는 상황에서 홍 지사와 경남의 그러한 주장은 속이 뻔히 보일 정도로 얄팍하다

 

<지난 2010년 경기도의 한 초등학생들이 ‘친환경 무상급식’을 먹고 있는 모습이다.
ⓒ 유성호 오마이뉴스>

 

다음으로 홍 지사는 무상급식이 포퓰리즘 정책이라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먼저 ‘무상급식’이라는 용어의 수정이 필요하다. 현재 시행하는 무상급식은 말 그대로의 공짜 점심이 아니다. 우리들이 납부하는 세금에서 그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초중고 의무교육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람 누구라면 교육 받을 의무가 있다. 그래서 의무적인 교육현장에서 ‘의무(적인) 급식’은 필수로 따라오는 것이다. 학생들이 집 외에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학교다. 그런 학생들에게 차별 없이 식사 한 끼 대접하는 건 국가와 정부의 책무 아니겠는가. 이렇게 당연한 것을 두고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운운하며 정쟁으로 이끄는 건 아이들 앞에 부끄러운 짓이고, 또 타당한 이유도 될 수 없다. 무상급식은 학생들의 복지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이지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낱 표 하나 얻기 위해 만들어진 정책이 아니다.

 

오늘날 무상급식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돼 왔다. 당시 선거에서 무상복지(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는 최대의 화두이자 획기적인 정책의제였다. 이 공약을 내세운 많은 야권의 광역단체장(각 도지사, 시장)과 교육감 후보들이 당시 열세라는 예상을 뒤엎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었다. 국민들이 얼마큼 소득의 불평등에 의해 고통 받고 있고, 또 그로 인해 얼마나 복지의 필요성을 느끼는지 알게 해준 선거였다. 복지가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라는 걸 당시 선거 결과가 증명해준 것이다. 하지만 그 선거 이듬해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시행을 놓고 당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의 입장 차이와 이견 마찰 때문에 결국 서울에서는 주민투표까지 실시하게 되는 진풍경이 벌어졌지만, 33.3%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하지 못 하여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 하고 끝나버렸고, 오 시장은 약속대로 시장직을 내려놓았다. 만약 선거 이후 1년이나 지난 그 시점에서 무상급식에 대한 불만 여론이 대다수 시민들에게 존재했다면 고작 투표율이 그만큼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경남의 경우도 그렇다. 지난 3월 중순 경남CBS와 리얼미터가 ‘경남 무상급식 중단’과 관련해 경남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잘못한 결정이다’란 의견이 59.7%로 ‘잘한 결정이다(32.0%)’란 의견보다 두 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와 무상급식 중단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홍준표 지사는 이런 결과와 대다수 주민들의 직접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도민들에게 ‘종북’이라 표현까지 쓰며 비난하며 주민들의 바람을 어긴 채 독단적인 행정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종북이라니,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두고 종북으로 매도하는 행정가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도지사선거에 나와 무상급식에 대한 찬성 입장을 내비췄고, 취임사에서도 무상급식에 대한 당위성과 타당성을 주장했던 사람이 저렇게도 비열하게 자신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변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경남의 무상급식 중단 결정을 전해들은 함양의 한 초등학교 4학년생이 쓴 일기가 화제다.
ⓒ 경남도민일보>

 

결국 4월 1일부터 경남은 도의회 의결을 거쳐 전면적인 무상급식 중단을 강행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많은 학생과 다자녀 가정이 당장의 예상치도 못 한 심적, 금전적 부담을 지게 생겼다. 얼마 전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일기 하나가 있었다. 경남의 한 초등학교 4학년생이 쓴 것으로 그 내용엔 무상급식 중단으로 고통 받을 부모님에게 미안함이 담겨있었다. 그 일기를 들여다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 이제 급식비를 내야한다. … 계속 그 생각을 하면 부모님께 되게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하루하루 마음이 편치 않은 것 같다. 나라도 안 태어날 걸...... … 엄마, 아빠한테 미안해서 잘 때도 편히 못 자고 그래서 너무 마음이 힘들고 속상하다. 어떨 땐 난 내가 죽고 싶기도 하다. 너무 힘들다.”라고. 나의 고등학생 시절 급식 지원 대상자였던 나와 내 친구들이 수업 도중에 담임선생에게 복도로 불려나가 일렬로 세워진 채로 가난을 증명할 서류를 준비해오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그 비참함과 창피함의 순간이 중첩되어 떠올랐다. 저 아이는 사회에 발을 들여놓기 전부터 급식비 부담 때문에 인생의 좌절감을 느낀 것이다. 왜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고작 이런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게끔 만들어야만 하는가.

 

무상급식, 아니 의무급식의 시행의 유무는 고작 액수나 정치적인 이해타산으로 결정할 부분이 아니다. 의무급식 하나로 인해 많은 학교-학생 사회에 비용 이상의 긍정적인 효과를 안겨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과 친구들 사이의 차별이 사라지고 동등한 관계가 되었음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급식을 먹으려면 어쩔 수 없이 가난을 증명해야 했던 학생들에게 의무급식이라는 좋은 제도가 그들의 부끄러움과 상처를 보듬어줄 것이다. 또 가난이란 낙인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의무급식이 지금의 학생들에게 학생으로서의 권리란 측면에서 더 나아가 미래에 국가로부터 마땅히 권리를 보장받을 사회의 주체라는 인식 또한 심어줄 것이라 기대해 의심치 않는다. 이처럼 의무급식은 단순히 밥 주는 것, 밥 먹는 것의 이상의 교육적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초, 중, 고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미래를 위해 자그마한 교실에서 고생하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친구들과 편히 먹는 밥 한 끼는 큰 위안과 행복으로 다가올 것이다.

 

결국 무상급식(=의무급식)을 중단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의무급식이 갖게 될 의미와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의무급식은 복지가 더 이상 국가가 가난한 이들에게만 베풀어준다는 시혜적 개념이 아니라, 국가가 차별 없이 동등하게 전체 구성원들에게 마땅히 지급하고 국민들은 마땅히 누려야하는 ‘권리’의 개념으로 인식의 저변 확대를 이끌어내는 데 제 역할을 해줄 것이라 본다. 이제 홍준표 지사처럼 사회적으로 철 지난 정치이념적, 성장론적 복지논쟁을 일으키는 건 그만두어야 할 때다. 실질적인 복지는 행정가와 정치가들이 얼마큼의 의지와 철학의 밑바탕을 갖추느냐에 따라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앞서 말했듯이 보편적, 제도적 복지는 우리나라에서 역시 시대적 요구이자 권리로서 자리해나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백 번 양보해 홍 지사의 본래 입장대로 도정 예산이 부족한 것이 무상급식 중단의 이유라면, 중앙정부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경남도민들의 복지 권리를 위해 재정문제와 지방분권을 놓고 맞서 싸워야 할 일이지, 오히려 도민들의 권리를 합의 없이 빼앗는 건 행정가로서 절대 옳지 못 하고 비겁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자, 이제는 홍준표 지사가 경남도민들과 더불어 국민들에게 ‘고품격’의 도지사인지, 또는 ‘싸구려’ 도지사인지 둘 중 어떻게 평가 받느냐는 온전히 본인의 올바르고 현명한 결단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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