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한민국 청년연설대전 연습 과정에서였다. 금빛 머리카락을 갖고 있던 그녀의 첫인상은 매우 밝아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입을 떼자마자 그 반짝거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말했다. 


“저는 지난 6년간 나이를 먹지 않았습니다. 아니, 나이를 먹지 못했습니다.” 


2012년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녀가 14년간 동경하며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연예인이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그녀를 집으로 초대했다. 둘은 밥을 먹고 영화도 보고 연인이면 할 법한 것들을 했다. 그녀는 그와 자신이 연인이 된 줄 알았지만, 그는 그녀의 입이 너무 가벼워서 문제라며 입단속 후 돈을 줬다. 그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가 그 돈을 돌려줬고 그렇게 그와 연락이 끊겼다. 


14년을 믿어오고 동경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연락이 끊기자 그녀는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사랑인지 폭력인지 가늠할 수 없는 날들이 계속해서 흘러갔고 그렇게 두 번의 자살시도가 있었다. 한동안은 정신과 병동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렇게 6년이 흘렀다.


“왜 제게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생각하고 분노하고 증오하고 죽이고 되살려 놓고 용서를 받고 다시 죽이고 애걸하고 울고 웃고 죽고 죽고 또 죽었습니다.”


연설 연습을 끝마칠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로 그녀는 말을 하며 펑펑 울었다. 굵은 눈물이 계속해서 뚝뚝 떨어졌고 부축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힘들어 보였다. 연습을 마친 그녀는 대회 날에는 울지 않을 거라며 참가자들에게 말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종료됐다. 



2018년 5월 26일, 청년연설대전 본선 무대에 오른 그녀


그 후, 연설대전 행사에서 그녀를 만났다. 검은색의 차분한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담담하게 앉아 있었다. 앞선 참가자들의 연설을 들으며 그녀는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나는 그녀의 마음이 복잡할 듯하여 쉬는 시간에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그녀 뒤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참가자 중에는 ‘방관도 폭력이다. 우리도 페미니즘을 배우자!’라는 주제로 연설한 남성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분의 연설이 마음에 안 들었다며 훈계를 하는 잔소리꾼이 등장한 것이다. 미투 운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연설자에게 강요하던 잔소리꾼이 말했다.


“아니 그러면 옛날 케케묵은 일들까지 다 꺼내 가지고 처벌을 하란 말이야? 그건 아니잖느냐~”


그녀는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그녀가 연습 때 힘들어했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래서 얼른 그녀 옆으로 뛰어가서 듣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곤 그녀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조금 떠들다 가겠지라는 생각에 그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도 부탁했다. 그러나 잔소리꾼의 말은 내가 사진을 세 장 찍고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주변에 피해자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 한 채 날카로운 비수 같은 말들을 계속해서 내던졌다. 나는 잔소리꾼이 사라질 때까지 그녀에게 계속 말을 시켰다. 그렇게 길고 긴 쉬는 시간이 끝났고 잔소리꾼은 유유히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그냥 잊어버리고 살면 된다고 쉽게 말했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면서 겁도 없이 그 집에 찾아간 네가 잘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를 용서하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연설에 나선 그녀에게 옛날 일을 들춘다며 떠드는 이도 생겨버렸다.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하고 자신이 왜 상처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잖아요. 아프니까.” 김승섭(2017),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p.305


그녀는 지난 6년간 상처받은 이유에 대해 계속해서 되새김질했을 것이다. 그 되새김의 과정에서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그녀를 혼내고 훈계하는 일들이 반복됐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삶에 대해 너무 쉽게 발언하는 경향이 있다. 그녀가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그 침범들은 그녀를 더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그녀의 연설 중에 가슴에 새겨진 말들이 있었다. 


“피해자 여러분, 이유 없이 숨지 마십시오. 가해자 여러분, 비겁하게 숨지 마십시오. 그리고 피해 당사자와 가해 당사자를 제외한 여러분, 어떨 땐 가만히 들어주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 


그녀는 연설을 마친 후 당당하게 걸어서 무대를 내려왔다. 고생했다며 힘껏 포옹해주는 참가자도 있었다. 그렇게 괜찮은 것처럼 보이던 그녀는 급히 대회장을 나갔다. 뒤따라가 보니 역시, 그 자리는 무척이나 힘든 자리였나 보다. 그녀는 화장실에서 펑펑 울고 있었다. 이제 제대로 말을 했다며 연설 연습을 했던 날보다 더 많이 울었다. 

그때 그녀를 다독이던 다른 참가자가 말했다. “우리 언제 한 번 모여서 삼겹살 먹죠! 오늘처럼 딱 붙는 정장 말고 고무줄 바지 입고 말이에요!” 그 말은 그 순간에 정말로 적합한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울고 있을 때 ‘왜 울고 있니’, ‘네가 잘못한건 아니야?’, ‘잊어버려’의 말보다 같이 삼겹살 먹자는 말이 훨씬 더 알차 보였다. 조만간 우린 고기를 먹을 것이고 그녀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만히 들어줄 예정이다.   


* 그녀가 그 당시 상황을 부른 노래입니다.



 *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지난 177, 수많은 2차 가해에 시달리다 못한 후배가 죽었다. 후배의 페이스 북에는 자살의 징후가 가득했다. 산적한 일을 처리하는 데에 바빠서 그냥 넘겨왔던 게 죽음으로 돌아왔다. 그 애의 사건을 일개 가십 취급하며 소비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성폭력을 화제거리 취급하며 실명이 궁금해서 안달이 난 사람들에게 질려버렸다. 온통 그 애가 당한 성폭력의 수위에만, 그 사람이 얼마나 무기력한 피해자 상에 부합하는가에만 관심이 쏠려있었다. 여러모로 악몽 같은 여름방학이었다.

 

오롯이 나를 좋아해주던 사람의 죽음이었다. 나를 조사위원회의 위원으로 직접 지목한 진정인의 죽음이기도 했다. 그의 죽음은 여러모로 내게 큰 상실이었다. 나는 그 애의 죽음과 마주하며 과연 앞으로 내가 성폭력 사건 자체를 다시 마주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가해자가 사과문을 빙자한 입장문을 붙이고 나서 익명 커뮤니티 반응[사진=커뮤니티 캡처]



내가 가장 분노했던 건 학내 익명커뮤니티에 만연한 수많은 2차 가해다. 후배가 생전 고통 받았던 사건 두 개 모두 2016년에 벌어진 일인데, 아직도 당시 익명 커뮤니티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때 익명커뮤니티에서는 피해자에게 왜 익명커뮤니티 시끄럽게 여기에 공론화 하고 난리냐는 반응과 가해자에 동조해서 적극적으로 2차 가해에 가담하는 반으로 갈려 시끄러웠다. 아무리 피해자 편을 들어도 너 피해자 본인이냐? 평소 행실 보니까 억울할 일도 없겠는데 왜 난리냐?’ 는 반응만 돌아왔던 당시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사람들은 익명 뒤에 숨어 그를 적극적으로 난도질했고, 그의 과 사람들은 피해자를 평소 행실이 이상한 사람 취급하거나 혹자는 별 일 없었으면 과 회장까지 했을 인재의 스캔들을 안타까워했지만, 그마저도 익명커뮤니티의 분위기가 무서워 침묵해야만 했다.

 

결국 그 애에게 자기를 비난하는 익명 여론은 그의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싸워주지 못했던 우리 모두와 다를 바 없지 않았을까. 해가 바뀌고 성소수자 모임 레인의 동아리 승격심사 과정에서 가해자의 친구가 또다시 2차가해를 했고 없는 사실을 지어내 타인을 자살 직전까지 몰아간 사람이 포함된 동아리의 진실성을 의심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시 본인의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와 괴로워하던 그 애는 결국 우리 모두를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2차 가해에 대한 의문은 내 안에 남아 아직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20161학기에 있었던 성폭력사건 공론화 당시, 나는 가해자에게 쏟아지는 무분별한 비난을 경계했다. 이 공동체에 가해자에게 떳떳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가해자가 가해를 저지르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묵인과 방조를 저질렀고, 성폭력문화에 문제제기하지 않는 우리로부터 성폭력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에는 내가 가진 생각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는 가해자를 미워하지 않는 게 너무나 힘이 든다. 스스로의 피해 사실을 폭로하고 대자보를 쓰며 학교의 미온적 대처를 규탄하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아 반성폭력 실천 모임 활동을 하던 그 애를 떠올리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직까지도 2차 가해를 저지르며 떳떳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피진정인을 떠올리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이럴 때마다 나는 공허해진다. 이론과 함께하지 않는 실천은 공허한 실천이라는데, 나는 그런 공허한 실천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서글퍼지기도 한다.

 

2018년이 되고 미투 운동이 사회 각계에서 터지는 동안에도, 성공회대학교는 여전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 틈에 수많은 성폭력이 벌어지고 묵인되고 사라진다.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학생사회를 마주할 때마다 그 애가 생각나 견딜 수가 없다. 양예원 씨와 스튜디오 실장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세지를 볼 때마다 2016년 우리학교 익명 커뮤니티에서 가해자 입장대로 떠들어댔던 사람들의 차이점이 대체 무엇인지 곱씹게 된다. 이 세상에는 아직 가해자의 말이 진실이요, 양 측의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는 양비론적인 말을 진리처럼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그 애를, 나를, 수많은 피해자들을 무너지게 했을 것이다.

 

성폭력에 의한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나 다름없다. 아무도 그의 편에 서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을 선택한다. 앞으로 내 인생에 얼마나 많은 사회적 타살자들을 마주하게 될까. 자신의 피해를 꾹꾹 눌러 적었던 그 애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하며 괴로워하고 위안받았던 다른 학교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댓글을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살아있을까? 부디 죽지 않았기를.

 

* 2차 가해/ 2차 피해에 대한 용어적 논의가 있지만 글을 쓸 당시 적었던 대로 2차 가해라는 표현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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