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우유를 좋아하지만 두유도 좋아해. 어쩌면 두유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카스텔라, 쿠키와 함께 먹는 우유는 정말 맛있지만, 마시고 나면 입안에 끈적끈적한 것이 자꾸 입 안에 맴돌아. 배가 살살 아픈 날에 차가운 우유를 마시면 몇 시간동안 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아 고생을 하지. 하지만 두유는 그런 게 없어서 좋아. 우유보다 고소한 맛도 나고, 마시고나서 입 안에 남는 것도 없고. 사람들은 우유와 두유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식품이라고 생각할 진 몰라도 사실 그 둘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어. 우유牛乳는 소젖을 짜서 얻는, 한자 그대로 ‘소의 젖’이야. 하지만 두유豆乳는 물에 불린 콩을 다시 물과 갈아서 만든 음료지. 우유가 동물에게서 얻는 다면 두유는 식물에게서 얻는 거야. 그런데 이상한 건, 두유가 영어로 소이밀크라는 거지. Soy-Milk. 콩-우유. 나는 그래서 두유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들어. 두유는 콩의 젖을 짜서 얻는 게 아닌데 왜 milk라는 어미가, 乳라는 한자가 들어가 있는 걸까. 콩을 짜냈으니 두유豆油가 맞는 것 아닐까? 처음에 두유를 만든 누군가가 소이밀크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큰 실수였던 게 분명하다. 마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인디언, 이라고 불렀듯이 말이야.

 

채식주의자들은 두유를 더 좋아해. 내가 알기로는 채식주의자는 종류가 둘 있는데, 세미(?)채식주의자들은 계란이랑 우유까진 먹어. 하지만 프로(?)채식주의자들은 계란이랑 우유조차 먹지 않아. 고등학교 때 원어민 영어선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은 프로채식주의자였어.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을 안 먹고 늘 빵과 샐러드로 점심을 싸와서 먹었지. 하루는 그 사람이 빵을 먹고 있을 때 우리 반 여자애가 그 선생한테 관심이 있었는지, 점수를 잘 받을 요량이었을 런지는 몰라도 딸기우유를 하나 매점에서 산 뒤 포크로 샐러드를 찍어 먹고 있던 그에게 우유를 내밀었어. 하지만 그 교사는 우유팩에 적인 ‘milk’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손을 내저으며 단박에 거절을 하더라고. 여자애는 자신이 사온 딸기우유의 빛깔처럼 얼굴이 빨개졌지. 수업시간에 좀 더 집중을 했더라면, 그 원어민 교사가 첫 시간에 자신을 채식주의자라고 하는 걸 들었을 텐데 말이야. 나는 민망해져 있는 여자애를 뒤로 세우고, 내가 쉬는 시간에 마시려고 사두었던 두유를 내밀었어. 그리곤 이렇게 말했지. “하우 두유 두?”

 

나는 두유종류를 많이 알아. 이십 년 전에 처음으로 두유라고 인지하고 먹었었던, 가위로 모퉁이를 잘라낸 뒤 그 사이에 작은 빨대를 꼽아 마셨던 삼육두유, 목욕탕에서 아빠와 나오면서 사먹었었던 순두유, 병원에 입원했을 때 친구가 사온 고소한맛이 진했었던 검은콩 두유, 그리고 베지밀. 특히, 베지밀은 종류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플레인 요구르트같이 담백한 맛이 나는 베지밀 에이가 있어. 이건 아침에 식사대용으로 바나나랑 같이 갈아서 마시면 맛있지. 그냥 마시기엔 좀 밋밋하고.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유인 베지밀 비. 에이와 비교했을 때 조금 더 달콤한 맛이 나는 그 두유에는 분명히 당성분이 추가적으로 들어갔을 거야. 추운 겨울날 거리를 걷다가 편의점에 들어갔을 때, 우연히 온장고에 있던 베지밀 비를 천원을 주고 사마셨을 때, 나는 아직도 그때의 따뜻함을 잊지 못해.

 

이렇게 나는 좋아하는 두유가 많지만, 그래도 내가 우유를 찾는 이유는 내가 두유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것 하나와 관련이 있어. 두유는 왜 우유처럼 여러 가지 맛이 없을까? 더 이상 다른 맛은 낼 수 없는 걸까? 그게 제일 걱정되고 궁금해. 우유는 초코, 딸기, 바나나, 메론, 커피... 이 밖에도 많은 종류가 있는데 두유는 기본 맛, 달콤한 맛, 검은콩 딸랑 세 가지 밖에 없더라고. 언젠가 두유계의 에디슨이 나와서 맥주 종류만큼이나 많은 두유를 맛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Prologue : 이마트에서 쿨피스 파인애플 맛을 산 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이런 생각을 했다. 왜 파인애플 우유는 없을까? 포도 우유는 왜 없으며 딸기 두유는? 그리고 커피 주스는 왜 없는지. 그러다가 정류장 옆으로 외국인이 다가왔다. 그는 일 리터짜리 베지밀 두유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다.

 

* 사진출처: 구글 검색(http://www.seehint.com/r.asp?no=1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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