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는 나의 즐거움?

나는 자발적 실업상태가 된 지 1주일째다. 실업상태라 돈이라고 하면 통장에 몇푼 뿐이기에 한번 돈 안 써보겠다는 마음으로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다들 말하듯이 집밖에 나가는 순간에 교통비-식사비-커피비 등 모든 것이 돈!돈!돈!이라 집밥만 먹는다. 우리 집이 텃밭을 가지고 농사를 지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서울에서 살았음 마트 가서 돈 쓰게 될 뻔 했다. 그렇지만 계속 물건을 사야하는 일들을 마주한다. 내 손에 있는 몇 백원이라도 소중한 나로서 물건 사는 것만큼 고민되고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인가?’를 끊임없이 물어본다. 지금은 물건 사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은데, 언제 경제행위를 하면서 즐거웠던 적 있었나?

지난 몇 년 간 소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던 시절들이 생각난다. 편의점에서 짜잘하게 매일 사가며 내 입을 호화스러운 척하게 했고, 아무런 생각 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다가 보이는 잡동사니를 샀고 휴대폰과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지만 멋져 보이는 것들을 사 모았다. 뭔가 허전함을 느끼며 자기 위로조로 ‘나를 위한 선물이야.’라는 식으로 소비해왔던 시절이 있었다. 과연 그 당시는 즐거웠고 나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소비가 즐거웠던 기억들: 관계 맺기
나는 사회에선 백조지만 집에서는 가사노동을 해야만 하는 집도비이다. 아직 며칠 되지 않아서 그런지 청소할 때도 계속 걱정과 고민뿐이다. 무심코 틀어 놓은 티비에서 ‘재테크 방법과 주식 변동’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잠시 걸레질을 멈추고 ‘저 방법 써먹을 정도 돈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찰나에 내가 엄마들이 하는 혼잣말을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내가 언제부터 돈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목을 맺나’는 생각이 불쑥 든다. 용돈을 받았던 초등학생때부터 인가? 아님 타지에서 대학입학 후 목돈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인가? 알바를 하고 짧게 돈 벌어본 경험때문인가? 내 머리 속 기억들을 다 들어보아도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담 내가 가진 푼돈으로 즐겁게 쓰고 지냈던 적이 있었나?

내가 돈을 모아서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사거나, 가족들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할 때 즐겁게 사용한 것 같다.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을 소비함으로서의 가지게 된 만족감 말곤 없었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할아버지를 따라 아이스크림 사러가던 가게방에선 항상 더 많이 받아오는 기분이 들어 즐거웠다. 시골동네의 하나뿐인 가게방(슈퍼)는 마을사랑방같은 공간이어서 모든 거래는 외상과 호의로 이루어졌고 부수로 많은 교환활동이 가능했다. 어려서부터 돈으로 주고받는 관계라기보다는 가게방할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지냈던 그 때 무엇인지 모를 따뜻함이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자리잡혀있다. 또 일주일에 한번만 동네에 오는 순대오토바이할아버지는 내가 이사갔음에도 영역을 확장해 우리동네를 와줄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며 초등학교시절 내 나의 순대를 담당하셨다. 그때는 무엇을 사러간다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었고,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마음이 더 담겨 있어서, 사고 교환하는 것들이 참 즐거웠던 것 같다. 그 안에는 ‘우리가 함께 살아갈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경제가 이루어지고 더 주기도 하고, 덜 주기도 하고 돈이 없으면 외상도 해주며 서로의 상황에 맞도록 돕고 지냈던 것 아닐까?

사람들의 관계 속 경제행위
우리 동네도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다들 시가지로 나가고 구멍가게가 없어졌다. 어느 순간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생겨났다. 전에 비해 훨씬 깔끔하고 편리한 모든 것들이 갖춰져 있는 곳들에 둘러싸여 나도 살고 있다. 그런 곳일수록 돈으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고, 직원들의 노동력도 서비스라는 차원으로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쉬워지는 것 같다. 다시 돌아와 고향에서 지내다보니 누구도 가게방할아버지와 순대할아버지처럼 나를 기억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먹고 살기 위한 소비를 할 뿐이지. 이걸 건네주는 사람의 이야기, 생산자의 이야기, 이 물품의 역사에 관심이 없고 플라스틱를 위에 붙어있는 가격표만 본다.

백조로 돈을 펑펑 쓰며 끝없는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보니 나는 근원적 원인을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며 경제행위를 하고 있는 지’가 문제였다. 합리적 인간처럼 되라고 배운 모든 경제지식들이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법보다는 ‘돈’이라는 허상으로 나와 너를 분리하여 분절화 시키고 있었다.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우리 동네는 경제적 인간보다는 사람다운 인간들이 살았던 곳이었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에 와서야 지저분하고 몇 품목이 없었던 가게방의 아이스크림과 비계를 더 많이 주던 순대모듬을 사먹고 싶고,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그분들과 일상 대화를 너무나도 나누고 싶다.




‘오늘도 청년실업’
어김없이 뉴스에선 청년실업과 취업난, 어려운 경제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사람들은 청년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 마디씩 거든다.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 공부만 해서 쯧쯧’부터 ‘다 우리의 책임이다. 미안하다 흑흑’까지 모두 저마다의 청년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경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가만히 듣고 보니, 지금 나의 모습은 매스컴에서 다루어지는 청년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취준생/6년만에 대졸/대학나온 고급인력이라는데 공부와 책상에서 하는 오피스 워크 말곤 할 줄 아는 능력 없음/돈도 집도 없어 다시 부모님 집/아슬아슬한 스펙 등등. 다 말하려 하니 구차해진다. 내 처지 말고도 다양한 청년들의 모습이 있음에도 청년실업문제를 정형화시킨 뉴스들이 계속 전달된다. 주류 언론을 챙겨보시는 우리 부모님은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나를 계속 비교하며 한숨을 푸욱 푸욱 쉰다.

뉴스에선 41만명이 나와 비슷한 상황이란다. 어떻게든 취업시키면 청년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모든 정책과 연구들은 청년과 청춘을 연관 지어 이슈를 생성한다. 다들 ‘청년/청춘’이르는 틀을 고루하게 만들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또, ‘대기업 취업의 문을 열어주면 되고, 창업을 할 수 있으면 된다.’는 식으로 거짓정답일지도 모르는 기존의 방법들에 헛된 희망만을 심어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누군가 날 청년이라고 규정하고 우리가 무기력하고 힘든 존재로만 만드는 것 같은 누군가의 생각들이 기분 나쁘다. 다들 스물다섯 살이 경제적 노동력으로서 한창이라고 하지만, 나는 무기력한 25살을 보내고 있다. 매스컴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반복되는 청년에 관한 이야기에 ㅆ 욕하고 싶었고 순간 욱하기도 한다.

 

‘국민여러분, 경제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커가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국민여러분, 경제가 어렵습니다.’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계속 어렵고 힘겨운 삶을 조장하는 경제가 회복되길 바라고 각자 기다리며 열심히 일하는 것이 최우선일까?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경제 속의 삶을 살아왔던 우리에겐 어쩔 수 없이 경제가 나아지길 바라며, 당장 안정적이고 돈을 적당히 주며 익숙한 공간을 찾아서 사는 것을 택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여기서 하나 묻고 싶다. ‘과연 지금의 경제가 나아질까요?’ 라고. 경제상황과 청년실업문제가 마치 정답을 찾는 듯이 일정한 형태의 정책과 수단들로 귀결되는 모습을 계속적으로 봐왔다. 투자나 개발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누구에게도 동의 받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현실성 없는 경제학원론법칙들처럼 그저 경제가 나와 내 친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을 한정시키고 경제 안에서 갇혀서 살 수 밖에 없도록 하고 있다.

 

‘타의적 백조생활’
나는 사회에서 노동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지금까지 뒤처지지 않으려 공부하고 남들 하는 대로 하기 위한 삶을 살려했던 것 같다. 계속 ‘잘 하고 있는 거야’라고 자기위안을 할 수 있는 형식적 생각을 하고 합리화해왔던 것 같다. 현명하게 살기 위해 어떻게든 사회가 요구하는 틀 안에 나를 구겨 넣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점점 내 모습을 잃어가고 세상이 원하는 모습이 되어가고 누군가가 정해준 메시지가 담긴 뉴스 속 이야기를 똑같이 하고 있었다. 백조가 되고 나니 극도의 스트레스와 미운 25살의 삐딱함으로 인해서 인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과 믿어왔던 경제에 회의감이 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청년에 대한 우울한 이야기를 듣고는 ‘내가 아직 준비가 덜 돼서 일거야. 언젠가는 기회는 올 거야.’라고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결국 나는 세계경제와 나라경제가 어렵기에 선택받지 못한 타의적 백조생활이었다. 주류경제에서 백조인 내 상황은 어렵고, 경제회복은 나아갈 곳이 없어 보이기에 기다리는 것도 대책 없이 보인다.

 

그래서 나는 백조생활이 익숙해진 시기에 하나 결심을 했다.

어차피 힘들 거라면 타의적 백조생활이 아니라 ‘자발적 백조인생을 살기’로 했다.

‘자발적 백조’로서 경제와 사회를 삐딱하게 바라보고 다른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다음 편에는 자발적 백조인생의 주제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사회적경제. 먹는건가요?

‘사회적경제’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법도 만들어지고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떠올리거나 잘 모른다. 그렇다면 사회적경제에 대해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 마디로 정의하고, 공통적 정의가 있을까요? 꼭 그렇지만도 않다. 사회적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조직들과 기업들의 특징에 따라 다른 표현을 사용하기에 여러분이 직접 경험해보면서 알아가길 바란다. 무책임한 대답일 수 있지만 사회적경제가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되어가면서 좀더 명확한 공통 정의가 제대로 확립될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필자가 느끼고 배운 사회적경제를 이 글에서 전달하고자 한다.

사회적경제를 알게 된 당시를 돌이켜보자면, 나름 괜찮게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했던 생활 속에서 나에게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공허함이 다가왔었다. 매번 마주했던 그 감정이 처음에는 낯설기도 하고 간파하지 못했다. 분명 나는 돈 주고 사서 나름의 합리적 선택으로 좀더 편리한 것을 취하고 있지만, 내가 하고 있는 경제행위는 따뜻한 무언가 빠져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예를 들어 집근처 대형마트에 가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값싼 물건을 사와서 나 혼자 먹고 있다고 하자. 값싼 물건을 샀다는 경제적 효용에 대한 만족감은 집에 가는 길에도 계속 갈까요? 물론 몇몇의 사람들은 경제적 효용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나는 집에 도착했을 때 마트에서 누굴 만났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오로지 가격만 기억이 났다. 나와 마트 직원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반복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만났음에도 오로지 돈과 바코드로만 이야기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마트에서 나의 경제행위 안에서 나-마트직원의 관계를 포함하지 않았고, 오로지 시장에서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관리비용에 가치를 뒀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 많이 비추어지듯이 세련되고 도외적인 우리의 삶과 생활방식으로부터 내가 그때 느끼고 불편했던 감정이 초래되고 있었다. 우리가 암묵적으로 지향하는 경제생활은 우리의 모든 삶을 가격과 돈으로 표현되어야만 인정받고 우리가 보지 못한 소중한 것들이 외면을 받고 있었다.

당연히 경제적 효용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가지고 ‘경제라는 건 화폐와 가격으로 나타낼 수  밖에 없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효율성을 위한 로봇도, 경제적 수단도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임에도 누군가의 노동과 관계를 오로지 물질적 숫자로만 반영해서 바라보고 있는 경향이 크다. 어느 순간 이런 상황이 경제라는 이름으로 익숙해졌고 당연하다고만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밥상과 이웃의 부지런함으로 깨끗한 길처럼 누군가의 관계를 위한 배려와 노동으로 이루어진 것들을 가격표가 없다는 이유 하나로 무가치하다고 치부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적 가치가 존재하고 사회적경제에서 중시하는 가치들이 존재한다. 내가 공허하게 느낀 이 감정은 바로 자본주의경제에서 외면하고 있었던 관계와 사회적가치로 인한 것이었다. 나는 구멍가게라도 동네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아는 동네사람들이 생산하는 푸드를 소비할 때 행복했다. 이 경제행위 속에 가격엔 포함되지 않는 따뜻한 관계와 사회적으로 가진 의미가 더 중시했던 것이다. 사람으로서 우리는 경제적 욕구외에 사회적 욕구가 존재하듯이, 경제행위에서도 사회적 자본을 기반으로 한 행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이뤄가는 경제생활들이 바로 사회적경제가 아닐까 싶다. 사회적경제는 우리가 하는 경제생활이 우리를 도우면서도 돈이 소수의 주머니로만 돌아가는 세습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가 아닌, 지역사회에서 순환하여 일자리가 생겨나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사회적경제 모습은 내가 어렸을 적 살았던 마을공동체의 확대판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에 관계를 바탕으로 한 경제행위와 경제생활이라고 느꼈다.



마음 속 쇠사슬을 벗어나, 사회적경제

사회적경제는 말은 쉽지만 그것이 가능하겠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우리가 쇠사슬을 끊지 못하는 서커스단 코끼리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충분히 사회적경제가 가능하다고 본다. 서커스단 코끼리는 어렸을 적 받았던 학대와 쇠사슬의 무게로 인한 마음 속 편견으로 인해 평생 쇠사슬에 묶여 지낸다고 한다. 우리도 마음 속 쇠사슬로 인해 경제를 편향적으로 어렵고 차가운 것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닐까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주류경제 메커니즘은 만인이 행복해 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과연 그런가요? 우리는 어느 순간 효율성과 경제적 효용만 생각하는 행위를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자본주의에서는 돈을 가진 소수의 부 증식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직면한다. 돌고 돌아야 하는 돈의 종착지는 ‘돈을 가진 자’가 되어버린 상황이고, 누구나 잘 살기 위해선 치열하게 '돈을 가진 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몰아세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하는 경제행위가 나를 돕고 내 이웃에도 도움이 되어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나아지도록 하는 방식의 경제를 만들 수 있다. 마음의 쇠사슬을 끊고 서커스단 코끼리가 아닌 자유 코끼리가 될 수 있듯이 인드라망처럼 관계로 연결된 사회를 반영한 ’사람 중심의 경제’ 사회적경제를 만들어가고 이루고자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우리도 될 수 있다.

서커스단 코끼리가 비참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선 쇠사슬을 끊을 만한 위대한 힘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실천해야 한다. 처음 겪는 상황에서 계속 해서 연습하고 실천하다보면 코끼리는 쇠사슬을 벗어나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사회적경제 속 사람들의 모습도 코끼리가 마음 속 쇠사슬을 벗어났듯이 움직이고 있다. 사회적경제 영역 안에서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공정무역 외 다양한 섹터의 주체들이 활동하고 있고 협력해서 사회혁신을 이끌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믿음을 가지고 실천하고 계속 연습하는 작업처럼 사회적경제 내 많은 사람들이 ‘사람 중심 경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민주주의 원리, 협동가치, 사회적 가치 등을 실천하고 연습해가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대안이라고도 보는 시각도 있지만 사회적경제는 사람들이 '사람중심 경제'로 좀더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두려움과 편견을 이겨내면서 삶으로 실천하고 만들어가는 작업을 하는 장이다. 지금까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자본주의 경제의 쇠사슬을 벗어나, 사람중심 경제를 믿고 사회적경제 활동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중요한 ‘한 사람이자 주체’로서 경제와 사회를 바라보고 오늘부터 나의 소비와 생활방식을 조금씩 변화시켜 보는 건 어떨까요?



꺼내 먹어요. 사회적경제

미리 자이언티 노래 관계자와 자이언티 팬들, 오글거려서 힘들어 하시는 독자분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자이언티-꺼내먹어요 노래를 들으며 사회적경제도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아래 가사를 읽어보길 바란다.

안녕! 쉽지 않죠? 바쁘죠?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죠?
바라는 게 더럽게 많죠? 그렇죠.
쉬고 싶죠? 시끄럽죠? 다 성가시죠?
집에 가고 싶죠? 집에 있는데도. 
(뭔가 포근하고 사람냄새 나는 사회적경제라는)집에 가고 싶을 거야.

그럴 땐 (사회적경제)를 아침사과처럼 꺼내 먹어요
(사회적경제는 너의 생활를 신경쓰니) 피곤해도 아침 점심 밥 좀 챙겨 먹어요.
그러면 이따 내가 칭찬해줄게요

(사람들을) 보고 싶어. (사회적경제는 사람을) 많이 좋아해요
(사회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더 많이 안아주고 싶어요.
사랑, 사랑 비슷한 걸 해요. 어쩌면 정말 사랑해요.

(지금 삶이) 힘들어요?
(사회적경제는) 아름다워서 알아봐줘요 나를
(사회적경제는) 흘려 보내지 마요 나를
사랑해줘요. 놓치지 마요. (사회적경제를)


사회적경제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한강대교를 걷게 되면 볼 수 있는 글귀처럼 내일이 생각보다 괜찮을 거라는 마음으로 변화를 실천해보고 사회적경제의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에서 좀 더 나은 삶의 방식으로 변화하기 위해 함께 믿고 실천하면서 계속 시도하고 있는 경제이다. 우리도 지금부터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으며 마을 안에서도 진행할 수 있고, 좀 더 넓은 공간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 사회적경제는 언제든 꺼내먹을 수 있는 초콜릿처럼 우리 삶에 가깝게 존재한다.

# 꺼내먹어요. 사회적경제



희한한 경제 속 우리의 모습

어제 만난 친구가 그런 말을 했어요

눈과 귀를 닫고 입을 막으면 행복할거라고.

너는 톱니바퀴 속 작고 작은 부품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사랑에 정복당할 시간도 없는 희한한 시대에 열심히도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마지막 저금통장에 들어있는 십만원을 들고서 나는 어디로 갈까 또 상상하죠.

울지마 달리질 건 없어 울지마 그냥 그림자처럼 살아가라고 친구는 말하죠

가만히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그럼 지금보다 행복할 거래요

너는 바뀌지 않을 글자를 보면서 다시 써볼까 상상해본 적도 있죠

울지마 어쩔 수 없다고 울지마 네가 잠자코 있었다고 하네요

눈 감고 귀 막고 입을 닫고 살면 그럼 지금보다 행복할거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그래도 세상 한 가운데 어차피 혼자 걸어가야만 한다면

눈 뜨고 잘 듣고 목소릴 내보면

그럼 지금보다 나아지겠지 그리고는 천천히 살아갈 수 있겠죠?

- 옥상달빛, 희한한 시대 中 –


뭔가 말도 안되고 희한한 면을 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옥상달빛의 노래처럼 많이들 이야기 하지 않나요? (옥상달빛, 희한한 시대 MV 꼭 보길 권유합니다. 특히 사회초년생들) 매번 사회생활을 하면 어쩔 수 밖에 없는 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돈 벌기가 쉬운 줄 아니?”라고 말을 듣기도 합니다. 과연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그럴까요? 


우리가 자주 말하는 돈은 경제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는 쉽게 생각하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활동으로 살림살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미시적으로는 우리집 살림살이, 거시적으로는 국가 살림살이/지구촌 살림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경제는 우리가 하는 사회활동의 하나로서 내재된 부분이지만, 어느 순간 살림살이 신경쓰다 보니 우리가 본연 모습을 잃어버리거나 경우도 있다. 그런 삶이 잘못되었거나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 하루에 나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노동력이라는 이름으로 투입하는 것은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있는지를, 얼마나 노동을 하고 오로지 자신을 위한 생활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균형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다. 이를 뛰어 넘어 내가 일하고 있는 이 곳에서 나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조직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영향력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수 있겠지만, 이걸 좀더 크게 사회적으로 바라본다면 나는 어떤 존재인가? 거대한 경제나 기업라는 톱니바퀴 속 작고 작은 부품으로 느껴진 적 없나? 가족들과 다른 여가생활의 충분하여 삶의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을 자신과 사회적 활동(삶)을 위해 보장받지 못하고 홀로 열심히 버틴다. 또, 눈과 귀를 닫고 입을 막으며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인정해야만 이 또한 지나가고 행복할거라 한다. 과연 그럴까 의문이 든다.



다른 방식의 삶: 사회적경제와 사회혁신

돈을 벌기 위한 현실이라고 말하면서 그 현실이 우리가 한쪽만 아는 사실일 수 있다.우리는 혼자 있음 살벌하며, 어려운 단어로만 포장되어 있는 희한한 경제 속에 있다. 그러나, 경제 안에 구속 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사회적 활동도 중요하고 이를 통해서만 사람다운 생활이 가능하다. 희한한 시대에서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그 방식이 바로 사회적 경제, 사회적 혁신이 될 수 있다.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걸어나가는 경제와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라고 한다면 단어를 들으면 다들 어려워하고 복잡하게 생각한다. 혹자는 사회주의 경제라고 연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설마 당신도?). 사회적경제는 사회를 변화하고 자신의 삶도 꾸려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속에서 사회가 혁신하기도 하며, 조금씩 변화하기도하여, 사람들의 삶도 풍족해 질 수 있다. 기존의 경제는 분절화되어 개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경제적 욕구만 충족되는 삶이었다면, 사회적경제는 다르다. 사회적 자본(신뢰와 관심)을 바탕으로 사회적 이슈와 영향력을 고려한 삶이 가능한 경제이다. 사회적경제 안에는 사회문제해결이나 취약계층 고용으로 좀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혁신을 이끄는 기업(사회적기업/소셜벤처)도 존재하며, 혼자하면 어려운 일들을 함께 협동해서 이루어내는 기업들(협동조합)도 존재한다. 또한 사람들은 그저 경제적 수단이 아닌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가지고 하루하루 함께 살아간다. 사회적경제는 사람과 사회를 중시하기에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좀더 많은 사람들을 고려한 결정을 하고 고민을 한다. 즉, 나만을 위한 삶가 아닌, 사회와 모두를 위한 삶를 고민하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아가보실래요?

사회적경제와 사회혁신은 완벽한 대안이거나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행위자로서 활동할 기회를 열어두고 개방적 소통이 가능하며,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 있다는 것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돈중심의 경제가 아닌 사람중심의 경제인 사회적경제와 사회혁신은 좀더 나은 세상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회적 경제는 저 멀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지나가는 그 곳에서도 있으며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은 자본주의 경제와 혹독한 삶에서 벗어나 떠나라고 하는 계몽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희한한 시대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존재하고, 함께 살아가고 천천히 나아가는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고민을 나누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느끼고, 조금씩 우리도 좀더 나은 삶을 위해 걸어서 나아가볼래요? 느영나영 함께 살아가는 법 알아가보실래요?

 

 

나는 일상에 지쳐 여행 떠나고 싶어 이곳저곳을 배회하다가 추운 겨울에 제주도에 갔었던 적이 있다. 그때 명창으로부터 배운 노래가 바로 ‘너하고 나하고, 너랑나랑’이라는 뜻을 가진 제주도 방언인 ‘느영나영’ 제주도 민요이다. ‘느영나영’민요(한번 들어보시길)를 연신 따라 부르던 당시 나의 모습을 회상해보면, 여행이라는 낭만에 젖어 ‘김종욱찾기’ 영화속 이야기 같은 사랑과 뭔가 새롭고 다르고 완벽한 유토피아을 찾을 것이라는 생각에 계속 해서 혼자 도피하듯이 돌아다니고 있었던 중이었다.그때 ‘왜 나는 내가 살아야 할 곳을 정하지 못하고, 모두가 살기 어렵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홀로 해결하려고 돌파구를 찾아 해매고 있나’ 하는 물음이 생겼었다. 요즘 다들 힘들다는데 내 고민을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요즘 잘 지내시나요? 지금 지내고 있는 곳에서 당신는 함께 잘 살고 있나요?


느영나영 사는 세상: 분절화된 개인과 냉혹한 경제


고향 떠나온 난 도시에서 모든 걸 돈으로 부담하고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느꼈다. 무엇을 할 때마다 돈돈돈 할 수 밖게 없었고 소비를 해야만 삶이 가능하도록 되어있었다. 살다보니 어느 순간 마을시장에서 단골가게를 가서 관계를 형성하며 하는 소비보다 대형마트가서 싸고 깨끗해보이는 플라스틱 그릇에 들어있는 걸 사는 게 더 익숙해졌다. 밥한끼 제대로 챙겨먹기 보다는 어딜 가든 있는 편의점에서 손에 있는 돈에 맞춰 저렴한 가격에 한끼 떼우는 게 편해졌다. 또, 기업들이 찍어내는 제품트렌드에 따라 TV와 인터넷에서 소문난 제품을 수동적으로 소비하고, 내가 세일해서 산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재잘재잘 이야기한다. 그런 일상 속에서 뭔가 모르는 공허함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있다. 또 나는 뭔가 허전한 마음을 휴대폰과 카드로 소비하며 해소하려 한다. 내가 쓰는 이 돈이 어디로 흘러가고, 내가 쓰는 이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구의 노동력이 들어가고 어떤 환경적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제품의 정보에 관해 잘 모른다. 지금 하는 소비의 의미에 대해 무관심한 채 일시적 내 효용과 만족감을 위한 소비만 하는 내 자신을 문뜩 발견한다. 모두가 이런식으로 자본주의 경제 속에서 분절화된 개개인되어 홀로 합리적이고 경제적 선택이라고 믿는 소비를 하고 있다. 개인이 쓴 돈이 소수의 누군가에게 더 많이 돌아가는 소비가 될 수 있고 누군가의 노동과 소중한 자원에 대한 고려 없이 계속해 소비를 해 쓰레기를 만들고 있다. 소비자로서 비대칭한 정보로 잘 알지는 모르지만, 뭔가 소모적이고 일시적 소비를 하는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아가는게 가능할까? 화폐적으로 나만을 위한 소비가 아닌, 사회적자본로 이루어진 소비로 지속가능하고 좀더 따뜻한 경제가 될도록 우린 할 수 있다.


사회초년생인 나는 나름 희망차게 사회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지만 구조적으로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매번 증명받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을로서 살아가는 위태로운 고용형태이기에 내가 일하는 만큼 노동의 대우를 받나 의문이 들지만, 이 일마저 없어지면 안되기에 야근도 하며 버틴다. 많은 직장인들이 ‘미생’이기에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질 것이고, 사회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있는 것이라곤 몸뚱이 밖에 없어 착실히 일해서 노동소득으로 좀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나와 나의 가족들, 나의 사람들의 안정적 생활과 삶을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경제체제에서 우리는 노동이 아닌 돈으로 돈을 벌기 쉬운 세상이라는 것을 목격하고, 고도로 발전되고 있는 금융시장에 진입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출근하면 보는 저 빌딩 맨 꼭대기층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노동을 하기에 저렇게 높은 월급을 받고, TV 속 고발뉴스에 나오는 정치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기에 저렇게 많은 돈으로 더러운 짓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진정 금수저를 물고 나오듯이 고소득자 자식이나 신의 직장을 갖아야만 세습자본주의에서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그래도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공부로 충분히 미래가 나아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일터와 닭장 같은 도서관으로 돌아간다. 사회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걸 안다고 계속 지금처럼 버티고 동아줄 같은 희망을 기대하며 일하고 공부한다면 과연 미래는 나아질까? 좀더 우리를 사람으로 인정해주고 내 노동력을 존중해주고 기업과 경제를 우린 만들 수 있다.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매스미디어에 익숙해져 사회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기 보다는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해가면서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때도 있어 가끔 내 자신이 무섭기도 하다. 하극상 이야기를 들으면 사회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결론은 사회구조와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고 뻔한 답으로 끝나는 것 같다. 묘하게 우리 안에서 사회문제는 우리가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다는 인식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눈 앞에서 일어나기 전까지 저 멀리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문제들은 바로 우리 옆집에서도 일어나고 있지만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아 모르고 있고, 보호해줄 아무런 사회적 안전망과 사회적 관계가 없어 낙오되고 배제되면서 사회문제가 발생한다. 옛날에는 마을에서 공동체를 형성해 서로 도우면서 문제를 풀어 나갔지만, 지금은 분절화된 우리모두가 소시민으로 홀로 냉혹한 경제와 돈의 앞에 서서 해결해 나가면서 사회문제가 더 발생한다고도 볼 수있다. 그렇다면 구조적 노력을 하면서도 사회문제를 함께 모여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시작해서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지역사회문제부터라도 고민해 조금씩이라도 변화될 수 있다.

 

 

 

느영나영 함께 사는 세상: 사람중심 경제


나는 밤 늦게 집에 들어가는 길에 모던한 야경을 보며 갈 때 ‘이 곳에 나 혼자 뿐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왜 난 혼자만 아등바등 살아가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나의 성향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도 하면서, 다르게 보니 ‘주변이야기를 너무 곧이곧대로 듣고 살아온 삶의 태도’가 문제였다. 학교 다니며 교수님과 선생님들은 항상 ‘사회’라는 곳이 얼마나 냉정하고 직장생활을 비롯해서 모든 공간에서 모두가 경쟁하고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해준다. 마치 잔혹동화 같은 세상이야기를 어른들로부터 들어오면서 컸던 나는 긴장해서 잔뜩 어깨에 힘주고 눈을 굴리며 주변을 살피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해가며 살아왔다. 가만히 보면 모든 사회생활의 무서운 이야기에는 “혼자” 살아가기에 더 힘들고 지치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모든 것에 ‘혼자’ 맞섰던 분들이 무진장 겁을 주고 “세상살이는 말이야. 경쟁해서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 말이야” 라고 한다. 나는 혼자 잘 살아가는 삶의 태도와 방향만 보고 들어왔지. 어디서도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이나 협력해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잘 듣지 못하고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 자본주의 경제 속에서 자본의 법칙에 따라 잉여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동력을 취급하고, 그 안에서 사람을 마치 하나의 부품처럼 취급받는다. 그런 취급에 익숙해서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부가가치를 많이 낼 수 있는 요소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살아가는 경제체제와 사회구조가 개개인들에게 혹독한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고 혼자서 살아남는 이야기만 전해져 올 뿐이었다. 정녕 냉혹한 경제와 사회 속에서 홀로 버텨 살아남는 것만이 답일까?


‘느영나영’ 우리가 협력해서 함께 나은 삶이 가능하고 좀더 인간적으로 운영되는 경제인 사람 중심 경제를 형성한다면, 회색의 어두운 현실이라는 잔혹한 세상동화를 핑크빛 행복한 해피엔딩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사람중심 경제를 꿈꾸며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적경제(Social Economy: SE)를 형성해가면서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려 노력하는 사람들과 조직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봐도 ‘좋아보여 잘지내나봐” 라고 말할 수 있는 함께 사는 세상, 사람중심 경제의 구성원이 되길 바라고 응원합니다. ‘느영나영’ 함께 사는 세상인 사회적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씩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너 요즘 잘지내_느영나영


# 사람중심 경제_느영나영 함께 사는 세상


# 좋아보여 잘지내나봐_느영나영

 


*이 글을 읽을 시 유의사항*


필자는 엄청난 학식과 경험이 없다는 점에 유의하고, 동네 한량으로 바라보는 세상이야기와 사회적경제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만약 독자님들이 잘못된 정보와 마음에 안드는 의견을 올린다고 이야기해주면 지속적 대화로 함께 풀어가시면 됩니다. 무엇보다 가끔 까칠하고 단정적인 어조나 사투리, 이상한 개그와 비유는 지극히 개인적 취향임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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