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입니다. 다들 잘 지내시나요?

한 사람 한 사람 

막걸리 한 잔 가득 부으며

안부도 묻고 그래야 하는데,

여의치 않나봅니다.


우리가 참 많은 길을 달려왔습니다.

글 쓰는 게 좋다고 모여서

1년이나 달려왔네요.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어디어디에 올라갔다고

눈물 날만치 기뻤던 그런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참으로 행복했고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군대를 갑니다.

2년 동안 있을 것 같습니다.


잠시나마 제가 없는 여기의

앞날을 생각해야합니다.


걱정이 많습니다.

어떤 방향이 맞는지

고민이, 걱정이 생깁니다.

저도 그렇지만,

여러분도 같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에디터가 함부로 독단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권위의 압력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BIG HIP을 만든 취지, 즉 협동조합의 틀을 벗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에디터의 권위는 

보다 나은 방향을 위해 힘을 발현하는 것이지

개인의 의사를 힘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지금도,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의 상황은

썩 좋은 상태는 아닙니다.

예전만큼의 글이 많이 올라오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취업과 대학원에 

재학하거나 앞둔 상태입니다.

다들 생업의 영향권에 곧 직면할 것이라는 거죠.


하지만 바빠진다고 해도

한 달에 한 번 글은 쓸 수 있을 겁니다.

현재도 달마다 3~5편은 올라갑니다..


어디까지나 여기는 생업이 아니기에

글을 쓰는 건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조합원 여러분,

이제 여러분 한분 한분께

BIG HIP의 앞날을 물어봅니다.

조합원 각자의 생각과 거취를 물어봅니다.


자신의 거취를 말씀하셔도 좋지만

우리가 계속 나갈 것인지, 이제 멈출 것인지. 

모든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래서 토론을 제안합니다.

듣고 싶습니다.

3줄 만이라도 좋습니다. 솔직하면 됩니다.

앞으로 할 수 있다고 쓰셔도 좋고,

이제는 지쳤다고 말하셔도 좋습니다.


조합원 모두 자신의 카테고리에

의견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3월 30일 23시까지 

의견 개진을 요청합니다.

이는 모든 조합원 의무입니다.


부디 한 사람이라도 

의무를 져버리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이후 시스템의 향방을 결정하겠습니다.



에디터 이권훈 올림



(p. s : 4.18 월요일 공군으로 입대합니다. 입대전이든 나중에 휴가로 나오면 꼭 뵙겠습니다.)





공산 진영 붕괴 이후, 자유 시장 경제는 현재 대안이 없는 보편적 경제 규칙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올바른 시장 경제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의문을 품고 바람직한 비판을 끊임없이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현실에서 과연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고 있는가? 둘째, 자유 경쟁이 항상 시장 경제에 도움이 되는가? 셋째, ‘사회적 신뢰의 부족은 자유 시장 경제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가?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시장 장기 균형이 현실에서 개인의 자유를 항상 보장하는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자유로운 경쟁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반면 재화는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항상 더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었다. 따라서 누구에게 얼마만큼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규칙이 필요했고 가격에 의한 교환 방식을 고안했다. 그런데 보통 수요와 공급은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쟁은 불가피했다. 문제는 외부 개입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특권이 부여되고 이들의 독점으로 자유로운 경쟁이 방해받아 시장 기능이 왜곡되는 것이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독점이야말로 개인의 창의성과 노력에 따라 시장 요소가 분배되는 시장 질서를 깨뜨리고 나아가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했다. 물론 또 다른 자유주의자 하이에크는 기업이 얻는 최적의 효용은 독점에 다다르기 이전에 달성되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시장 독점은 드물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불균형적 기업 구조와 유통 구조를 볼 때 독점에 가까운 독과점의 양상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비경쟁적인 독과점의 결과는 결국 상품 다원주의의 훼손이다. 공정하지 못한 지점에서 출발한 무한정한 자유 경쟁은 결국 독과점적 시장 구조의 출현을 막지 못할 것이며 이는 역으로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


소 곱창이 비싼 이유

도축 직후 곱창 1kg당 가격은 4천원이지만 전국 소 곱창 유통의 40%를 담당하는 중도매인조합이 도매업자들에게 kg1~15천원에 팔면서 음식점 판매가는 200g25천원선까지 치솟는다. 게다가 나머지 60%의 물량도 15개 안팎의 특정 도매업체들이 독점 공급하고 있다. 도축되는 즉시 도매가가 자유경쟁 가격체계로 전환되는 쇠고기 시장과 달리 곱창은 쉽게 상하기 때문에 빨리 인수해 줄 중개인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15년이 넘도록 중도매인조합이 주도하는 곱창 유통 독점 체계가 지속되었다. 이처럼 독과점으로 점철된 유통 구조의 복잡함은 가격을 왜곡하여 소비자의 후생을 줄인다.

(출처: SBS뉴스)


때로는 무한 자유 경쟁이 시장 경제 규칙을 무시하는 명분이 되기도 한다. 독점이 배제된 자유 경쟁도 어찌되었든 시장 논리에 따라 결과적으로 선도 세력을 등장시킬 것이며 현실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생산왜곡, 담합 등 비경쟁적 요소에 근거한 편법과 불법을 자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기심에 근거한 자유 경쟁이 역설적으로 후발 주자들의 자유로운 도전을 막기 위한 사다리 걷어차기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욕심에 적정함이 없는 이유는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필요 이상의 욕구를 만들어내는 상상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개인의 부나 기업의 경제적 성과는 어디까지나 상대적 기준이다. 따라서 다른 경쟁자보다 항상 더 많이 취하려 하고 만족이란 것을 모른다.


일례로 기타 선진국에 비해 미국의 높은 범죄율 추세는 끝없는 경쟁과 사회적 성공을 강조하는 아메리칸 드림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에 대한 갈망은 낙오된 개인에 대해 패배자라는 사회적 낙인을 부여한다. 아메리칸 드림에서 말하는 성공이란 최종점이 없기 때문에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미국에서 이는 개인에게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따라서 정당한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장땡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확산시키고 이는 곧 범죄율의 증가로 이어진다. 법치 질서에 대한 도전은 패자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고 이러한 사회적 불신은 시장 경제의 원활한 작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총기의 공공장소 휴대가능 법안(open carry)이 통과된 미국 텍사스 주

미국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개인이 스스로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개인의 총기 소유를 정당화했지만 방어의 수단은 쉽사리 공격의 수단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총의 비대칭적 파괴력은 이미 총기 공격을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 공격자에게 똑같이 반격을 가할 수 있는 대칭적 상황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본인이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언제든 남보다 방아쇠를 먼저 당기는 것이 곧 최선의 방어가 된다. 이는 대화로 해결하기보다 내가 먼저 쏘지 않는다면 나는 당할 수밖에 없다는 극도의 사회적 불신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신뢰의 부족이 총기 범죄로 이어지고 범죄의 증가가 다시 불신을 초래하게 되는 악순환은 미국 사회가 치러야 할 사회경제적 비용을 증가시켜 역설적으로 안전에 대한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http://www.motherjones.com/politics/2014/06/guns-target-open-carry-texas-women-corpus-christi)

 

이처럼 신뢰가 결여된 시장경제는 불확실성의 증대를 초래하여 각종 경제적, 사회적 범죄, 환경오염 등 여러 가지 외부 불경제 효과를 야기한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재화를 교환하는 행위에는 서로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이전에 상호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시장 경제에서 시장 변수는 시장에 의해 작동한다고들 하지만 현실에서 가격, 공급량, 수요성향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의지와 행동이다. 따라서 올바른 시장 경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이기심과 상호간에 사회적 신뢰가 수반되어야 한다. 만약 어떤 독점 기업이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일부러 과소공급을 한다거나 공급자가 상품의 질을 속이고 소비자에게 적정 가격 이상으로 판매하면 어떻게 될까? 시장은 장기적으로 신뢰를 잃을 것이다. 신뢰의 실추는 여러모로 시장 경제에 손해를 끼친다. 소비자들이 구매를 꺼려 초과공급 발생과 이에 따른 실업이 초래된다든가, 공급자가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홍보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는 등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뢰의 회복을 위해서는 시장 주체들의 투명한 운영과 서로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틀, 윤리 의식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 결국 자유 시장 경제의 신뢰 구축을 위해 우리는 정치와 사회의 영역에도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실업은 소비할 자유를 제한한다.”

시장의 자율적 조정 능력을 맹신한 고전학파는 생산된 것은 결국 모두 재화 소비와 생산요소 투자(ex: 노동 고용)에 지출되기 때문에 비자발적 실업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1930년대 대공황 시대의 공급 과잉과 대량 실업 사태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에 J.M.케인즈는 수요가 공급을 충족하는 시장 조정 과정에서 외부 시차나 경로 이탈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때로는 사회의 수요가 시장의 생산물을 전부 소비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이러한 유효수요의 부족이 나타날 때 기업의 고용 감소, 비자발적 실업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실업에 따른 소비 능력의 감소는 공급 과잉 현상을 해소하지 못할 뿐 더러, 가계 구성원에게는 자유의 제한을 의미한다. 이에 케인즈는 국가 주도의 사회 복지 제도 구축과 고용 증대를 통해 소비자의 유효 수요 능력을 제고시켜야 장기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 더 가디언)

 

대부분의 시장경제주의자들은 외부개입 없이도 장기에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시장청산(market clearing)과 이자율, 고용, 산출량 등이 최적의 균형을 회복한다는 장기 균형’(long-run equilibrium)을 신뢰한다. 하지만 장기 균형으로 가는 과정은 현실에서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사회 문제도 분명 존재한다. 가령, 경기진작을 위해 중앙은행이 확장적 통화 정책을 시행하면 통화량의 증가로 이자율이 하락하고 이는 투자의 증가를 가져와 총수요 및 총소득 증가를 불러온다. 하지만 통화정책의 외부시차는 매우 길어서 이론과 달리 현실에서 그 효과는 한참 뒤에야 나타난다. 이 기간 동안 은행의 신용할당 기준에 의해 차입이 거부된 개인과 기업들은 결국 경기 진작 효과가 나타날 때 까지 버티지 못하고 파산하거나 도산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확장적 통화 정책의 성과와는 별개로 사회가 막대한 구제 비용을 감수해야함을 의미한다. 설령 시장의 장기 균형이 제대로 나타난다 해도 케인즈가 장기가 오기 전에 우리는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re all dead.)라고 말했듯이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 과정은 매우 더디다. 장기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시장독점, 공급과잉, 대량실업, 유효수요의 감소, 가족해체, 범죄율의 증가 순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악영향은 개인이 누릴 자유의 질적 수준을 떨어뜨릴 것임이 분명하다.


대출받을 수 있는 능력은 곧 경제적 부를 대변한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통화량을 증대하는 정책은 여러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통화량 증가로 발생한 신용이 곧바로 전체 국민소득의 증가와 후생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은행은 중앙은행으로부터 제공받은 신용을 경제주체에게 할당하는 기준으로 개인의 재무 상태에 따른 상환 가능성을 따지기 때문에 정작 차입이 필요한 저소득층은 은행에서 신용을 융통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들의 불안정한 고용상태나 담보의 부재는 오히려 신용대출을 받는데 있어서 낙인 효과가 될 뿐이다.

(출처: 연합뉴스)

 

자유 시장 경제가 일부의 자유만을 충족시켜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유는 단순히 억압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개인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ex: 최저임금제, 기초생활수급, 실업급여) 물론, 자유 시장 경제의 자율성을 부정하고자 함이 아니다. 단지 공정한 규칙에 의한 경쟁의 선순환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 개입 뿐 아니라, 기업운영의 투명성 재고, 시민사회의 시장 정책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시장 주체에 의해 동의된 시장 규칙은 분명 정당성을 얻을 것이다. 또한, 공정한 시장 규칙의 적용으로 인해 신뢰가 회복될 것이다. 사회적 신뢰와 배려를 통한 정책은 시장의 장기 균형으로 수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시장 소외 집단에 대한 안전망을 제공해줄 뿐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경쟁에 다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패자부활전이 될 것이다


* 영화 <파리의 한국남자> 리뷰입니다.

* 다른 블로그에 실었던 글을 다듬어 올렸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행방불명된 아내를 찾아다니는 남자가 있다. 조금 이상한 질문. 그는 무엇 때문에그녀를 찾아 헤매는 걸까?

<파리의 한국남자>가 던지는 질문이다. 놀랍지만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일단 조금 다른 식으로 질문을 반복해보자. 이번엔 당신에게 묻는다. 왜 당신은 그()와 사는가? 사랑해서? 계약한 관계니까? 도의적인 책임 때문에? 감성, 이성, 도덕. ‘납득할만한 대답들이 주를 이룬다. 소위 대중적인 영화들도 마찬가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인물에게 감정이입하고, 눈물 흘린다.

 

하지만 <파리의 한국남자>는 이 모든 상식적인 대답에서부터 자유롭다. 달리 말하면, 불편하고 불쾌하다. 판타지와 현실을 넘나들고, 맥락의 끝마다 탈맥락적 과잉으로 치솟는다. 영화가 끝났는데 아무도 울지도, 웃지도, 심지어 욕을 하지도 않는다. 실소(失笑). 허탈한 웃음이 영화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 영화가 결코 잘 만들어진작품은 아니다. 다만 나는 영화의 불편함을 단순한 실패로만 치부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이 영화(의 불편함)에 대한 짧은 변론을 남기려는 까닭이다.

 

<파리의 한국남자>가 불편한 것은 위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상식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 비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관계에 대한 상식을 거부한다. 관계는 무엇인가? 관계는 너와 내가 함께 맺는 것이다. 관계는 상호적이며, 쌍방 간의 완성된 어떤 합의. 너와 나의 것이 곧 관계이며, 관계로서 너와 나는 우리가 된다. 이것이 상식으로서 관계다.

 

이제 관계에 대한 영화의 문맥을 살펴보자. 하지만 이는 관계에 대한 영화, 혹은 전수일 감독만의 유별난 해석이 아니다. “섹스는 없다.” 자크 라캉의 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섹스를 풀어 써볼 필요가 있다. “성관계는 없다.” 여기서 방점은 관계에 찍혀야 한다. 그러므로 다시. “관계는 없다.”

 

라캉에 따르면, 섹스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아니다. 섹스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각각의 환상 속에서 철저히 고립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섹스는 자위와 다르지 않다. 이해가 잘 안 된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성적 매력,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남자의 입장에서) 가슴, 엉덩이, S라인 등이다. 육체의 일부. 결코 여성의 육체 전체가 아니다. 사실 누군가의 벗은 몸을 그대로보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이른바 부분대상objet a’. 우리는 대상 전체를 욕망하는 것 같지만, 대상 전체를 압도하는 부분대상을 (무의식적으로) 욕망한다. 그러니까 대상에 대한 욕망은 곧 대상에 대한 판타지인 것이다.

 

논의를 확장해보자. 관계란 무엇인가? 관계는, 상식과 달리 너와 나의 어긋남이다. 너와 나 사이에서 벌어지는 끊임없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어린왕자>에서 여우의 말은 그럴듯한 낭만이 아니라, 실재에 대한 냉철한 탐구다. 우리는 길들임길들여짐의 관계다. , 지배/피지배의 관계다. 하지만 이는 중층적이다. 너와 나 각각에 별개로 성립한다. 나의 입장에서 나는 너를 지배하지만, 너의 입장에서 나는 너에게 지배당한다. 나는 너의 지배자고 너는 나의 지배자다.

 

그러니까 관계는 곧 판타지인 것이다. 우리는 판타지다. 우리란 없다. 우리라고 여겨지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위에서 말했든 너와 나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차라리 너의 것과 나의 것의 어긋남이다. 너의 판타지와 나의 판타지의 충돌이다. 나의 우리와 너의 우리는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상호(조재현)는 거지꼴을 하고서 왜 그렇게도 연화(팽지인)를 찾아 헤매는가? 상호에게 아내는 무엇이었는가? 이에 대한 영화의 답은 탈맥락적 현상, 그리고 판타지에 있다. 상호는 연화를 찾아다니다 만난 창(미콴락)과 매춘을 시도한다. 그 지점에서 상호의 의도는 의심받는다. 그녀는 아내를 찾기 위해 매춘부 사이를 전전하는가, 아니면 매춘부 사이를 전전하기 위해 아내를 찾아 헤매는가?

 

다음은 또 어떤가.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시퀀스. 상호가 환락가를 지난다. 술집 마담쯤 되는 여자가 여러 나라의 여자들이 있다며 상호를 유혹한다. (프레임 밖에 있지만 짐작건대) 꿈쩍 않고 길을 가던 상호는 한국 여자도 있다는 말에 발길을 돌린다. 그는 매춘의 대가로 연화와의 결혼반지를 건넨다. 먼저 방에 들어가 자고 있는 상호에게 한 여성이 들어와 섹스를 한다얼굴이 프레임 위에 잘린 매춘부는 상호에게 반지를 돌려준다. 이 시퀀스가 상호의 판타지이며, 동시에 상호에게 매춘행위를 했던 여자가 연화였다고 짐작할 만한 대목이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관계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뒤흔든다. 매춘부로서 연화, 매춘 행위로서 사랑에 대한 상호의 판타지야 말로 연화와 상호의 관계이며, 상호에게 연화가 의미하는 바이며, 상호가 미친 듯이 연화를 찾아다니는 이유라고 말이다




광화문 현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가 2013년부터 궁궐을 조사하면서부터다. 궁궐의 문제점에 대해 책을 집필하는데 그 당시 필자는 사진을 찍고 자료를 정리하는 역할을 했다. 책에 넣을 광화문 현판 사진을 찍기 위해 광화문을 찾았을 때였다. 카메라를 들어 올린 순간 렌즈 속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아. 또 금이 갔구나.

 

 

 

△ 사진출처 : 본인촬영

 

이 사실을 언론에 알렸더니 곧 기사화 됐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우리 국민들은 매우 분노했다. 현판에 금이 조금 갔다고 국민들은 왜 분노한 것일까? 그것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광화문의 현판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곳을 광화문 광장으로 보는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주요 외신 특파원들이 한국의 소식을 이야기할 때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이는 광화문대로를 선택해 방송하곤 한다. 한국을 소개할 때 세계인이 인식하는 장소가 바로 광화문 앞 대로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당당히 서 있는 광화문. 광화문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현판에 금이 갔다는 사실이 우리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을 것이다.

 

사실 이 날 광화문 현판을 촬영하러 간 것은 현판에 금이 간 것을 담아오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현재 광화문 현판색은 흰 바탕에 검은색인데 원래는 검은 바탕에 흰색 또는 금색 글씨가 아닌지 조사하기 위해 간 것이다. 이 의문은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가 박정희 대통령이 쓴 현판은 검은 바탕에 흰 글씨인데 왜 지금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일까 호기심을 갖으며 시작됐다.

 

 


△ 사진출처 : 한겨레(당시 현판은 검은 바탕에 흰 글씨였다.)

 

광화문 현판 복원에 대한 의문은 혜문 대표뿐만 아니라 이순우 선생이 제기하기도 했던 사실이다. 조선시대 4대 궁궐로 일컬어지는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의 정문인 돈화문, 홍화문, 흥화문 현판은 모두 검은 바탕에 흰 글씨를 갖고 있는데 왜 광화문만 흰 바탕에 검은 글씨인 것일까? 또, 조선고적도보를 보면 현판부분이 어두워 보이는데 왜 문화재청은 흰 바탕에 검은 글씨가 맞다고 복원한 것일까?

 

 


△ 사진출처 : 문화재청 보도자료

 

문제가 제기되자 문화재청은 2014년 6월 자문회의를 열었다. 자문회의 결과 ‘바탕색보다 글씨 부분이 더 검고, 이음부가 바탕색보다 어둡게 나타나 흰색 바탕의 검은색 글씨임을 재차 확인’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바탕색보다 글씨부분이 더 검으면 바탕은 흰색이라니 문화재청이 공개한 동경대 소장 유리원판 사진을 보고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흰색 바탕의 검은 글씨로 써진 경복궁 영추문과 수원화성의 팔달문 사진은 왜 그렇게 선명하게 흰색 바탕이 사진에 잡힌 것일까?

 

 


△ 사진출처 : 조선고적도보(왼쪽 경복궁 영추문, 오른쪽 수원화성 팔달문.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가 또렷하게 보인다.) 

 

이해 할 수 없었지만 문화재청이 내린 결론에 반박할 사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 때부터 광화문 사진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 사진출처 : 조선박람회기념사진첩

 

 

 


△ 사진출처 : 강홍빈(2015),『코넬대학교 도서관 소장 윌러드 스트레이트의 서울 사진』, 서울 : 서울역사박물관 조사연구과

 

 

 

△ 사진출처 : 부산박물관(2009),『사진엽서로보는근대풍경4관광』, 서울 : 민속원

 

많은 옛 사진에서 광화문 현판이 검은색으로 보이는데 왜 문화재청만 아니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정도의 사진으로는 문화재청이 검은 바탕이 맞다고 얘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생각날 때마다 광화문, Gwanghwamun, Gwanghwamun Gate, Gyeongbokgung , Palace Gate 등등 각종 방법으로 자료 찾기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SNS를 하다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페이스북 친구인 이대로 선생님께서 공유하신 글에서 광화문 사진을 발견한 것이다. 너무 놀라서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정확한 출처 확인이었다. 조작된 사진이 아닌지 최종 확인이 필요했다. 아무리 찾아도 출처가 나오지 않아 답답해하고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혜문 대표가 찾아냈다.

사진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소장한 사진으로 1893년 9월 이전에 서울에서 촬영된 사진이라고 적혀있었다. 검은 바탕에 흰색인지 금색인지 알 수 없지만 바탕보다 분명히 밝은 광화문 글자가 확대하지 않아도 보였다.   

 

△ 사진출처 :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사실 이 문제가 제기된 2014년 MBC 취재 결과 많은 전문가들이 광화문 현판의 바탕색은 흰색일리 없다고 말했다며 인터뷰를 내보냈었다.


당시 기사(MBC, “흰색 바탕에 검은 글씨..복원된 광화문 현판 '색깔' 논란”, 2014년5월31일, 박철현 기자)에서는

 “문화재청은 또 일본 도쿄대가 보관중인 일제 시대 광화문 현판 사진도 확인했다고 해명했는데, 정작 확인 작업을 맡았다는 연구자들 얘기는 다릅니다.
◀ 백성욱/세종대 전산정보원장 ▶
"동경 것(도쿄대 소장 사진)은 저희가 정확한 건 알 수가 없습니다.무슨 색이다...이런 건 저희 작업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국내에 남아있는 1910년대 광화문 사진을 분석한 전문가는 현판이 적어도 흰색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 김용환/중앙대 사진학과 교수 ▶
"사진이 조작되지 않았다면 현판은 (바탕이) 흰색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렇게 봅니다."라고 보도했다.

 

 

초점이 또렷한 광화문 현판 사진이 나왔다. 이제 문화재청이 다시 답할 때가 왔다.
광화문 현판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인가? 검은 바탕에 흰색 또는 금색 글씨인가? 




2016년 2월 22일 오전 9시 57분. 약속시간을 3분 남겨두고 도시샤 중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정문 앞에 있는 경비원의 안내에 따라 ‘立志館’이라 써진 건물로 들어가니 흰색 마스크를 한 선생님이 대기실로 안내해줬다. 일본인의 초상화 여러 점 걸려있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니 오늘 우리를 안내해줄 소노다 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과 간단하게 인사한 후 중학교 건물을 나와 5분 정도를 걸어 도시샤 초등학교 건너편에 있는 표본관으로 이동했다. 표본관 문은 5m는 돼 보이는 매우 긴 철제문으로 끼익 소리를 내며 우리를 맞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학창시절 과학실에서나 보던 상자 속에 별에 별 동물 박제가 들어 있었다.
가장 먼저 들어간 일행이 문 바로 앞에 있는 유리 상자를 보며 “타조다!”라고 외쳤다.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간 필자는 실내화를 신기 위해 허리 숙여 오른쪽 신발 정리함에 손을 뻗었다. 그 때였다. 신발장에서 10걸음 떨어져 있는 유리 상자 속에 낯익은 꼬리와 뒷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조선 호랑이였다.

 

 
△ 조선호랑이의 뒷다리와 꼬리(좌), 조선 호랑이와 새끼 호랑이(우)(사진출처 : 본인촬영)

박제된 호랑이 앞으로 가자마자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가 절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소노다 선생님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한국에서는 호랑이를 산신령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재 남한에서 볼 수 없다며 절을 한 이유를 설명했다.
나무로 된 틀과 유리 너머로 겨우 보이는 호랑이를 담기 위해 바삐 움직이자 문을 열고 편히 봐도 된다는 선생님의 말이 들렸다. 유리문을 열자 더 생생하게 조선 호랑이가 눈으로 들어왔다. ‘조선’에서 왔다고 쓰여 있는 큰 호랑이 앞에 어디에서 왔는지 정확하게 기재돼있지 않은 새끼 호랑이가 가엽게 보였다.

 

 

△ 1917년 함경도 신창에서 조선 호랑이 두 마리를 포획한 야마모토(가운데 서있는 사람).

사진속의 호랑이중 한 마리는 자신의 모교인 도지샤 대학(좌측 호랑이)에 기증하고,

다른 한마리는 호랑이는 당시 일본 황태자에게 기증했다고 한다. (사진출처 : 정호기)

도시샤 중학교에서 관리 중인 호랑이 박제는 일명 ‘야마모토 정호군’이 잡아온 호랑이다.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1917년 11월에서 12월까지 약 한 달 동안 조선에서 한국 호랑이를 사냥했다. 그들은 조선총독부의 ‘해수구제(害獸驅除: 해로운 동물을 퇴치하는 사업)’를 표면에 내세워 호랑이 사냥을 했다. 사냥 팀을 8개로 조직하여 함경남북도와 강원도 금강산, 전라남도 등에서 사냥을 벌였던 그는 어떤 생각으로 호랑이 사냥에 나선 것일까.

일본에 갔을 때 사람들이 ‘이번엔 왜 일본에 왔냐’고 물었다. 조선 호랑이 박제를 보러 왔다고 대답하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했다. ‘가토 기요마사의 호랑이 사냥 이야기를 아십니까?’
임진왜란 당시 한양에 입성했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일본에서는 그의 조선 호랑이 사냥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에서 임진왜란에 대해 배울 때 하나의 챕터로 ‘가토 기요마사의 조선 호랑이 사냥’이 나온다고 한다.

 

그 내용은 죠잔기담(常山紀談)에 나오는데, 가토 기요마사가 아끼던 시동 고즈키 사젠(上月左膳)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자, 그 복수로 호랑이를 사냥한다는 내용이었다.

야마모토 다다사부로(2014), 『정호기』, 서울 : 에이도스, p.22

 


일본에는 호랑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호랑이를 사냥한다는 것은 조선을 점령했다는 상징이었을 것이고 일본에서 유명했던 가토 기요마사 이야기처럼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도 그 상징을 잡아 보려한 것이 아닐까.

어떤 이는 말한다. 조선 초기부터 계속해서 호랑이 포획정책이 이어졌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멸절됐다는 것은 일제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1936년 경성사범학교의 생물 교사인 우에다 츠네카즈가 쓴 글을 보면 답이 나온다.

 

“옛날 조선에는 호랑이가 매우 많았고 어딜 가나 사람과 가축에 피해를 주는 동물로, 호랑이를 죽여서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은 지방 관사의 중요한 행정업무 중 하나였다. 지금은 그 수가 매우 적어 북쪽 오지가 아닌 한, 어느 산야를 돌아다녀도 호랑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며 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는 피해를 방지하자는 목적 외에, 고가의 모피와 뼈를 얻기 위해 연이어 호랑이를 잡았기 때문이다. 뼈는 약재가 되고 모피와 거의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한다. 깔개로 쓰는 호랑이 모피는 엄청난 고가여서 경성에서는 한 장에 시가로 1,000엔에서 15,000엔이나 한다.
지금은 호랑이가 자주 나오는 곳이 함경북도 백두산 자락의 무산과 회령 사이라 하지만, 그곳조차도 작년(1935년)에는 겨우 다섯 마리만 포획했다고 들었다. 이런 상태라면 가까운 장래에 조선의 호랑이는 멸종할 것이 확실하다.

야마모토 다다사부로(2014), 『정호기』, 서울 : 에이도스, p.46-47

 

또 다른 이는 호랑이를 쏜 것은 조선인 포수였다고 말한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할 때 일본이 주장하는 논리와 조선 호랑이가 멸절된 것을 조선인의 과실로 주장하는 논리가 어쩜 이렇게 닮아 있을까.
일본 제국주의가 포수를 고용하여 멸절시킬 의도로 사냥했기 때문에 호랑이가 멸절된 것이지 단지 조선인 포수가 호랑이를 쐈다고 호랑이가 멸절된 것인가. 그렇다면 조선 초기부터 호랑이 조선인이 호랑이 사냥을 했을 텐데 왜 그 땐 멸절하지 않은 것인가. 같은 시기 조선의 사슴과 조선의 표범 등 다른 동물들이 멸절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도시샤 중학교를 나오기 전, 백두대간 수목원 같은 기관에 호랑이 박제를 기증해주기를 요청한다며 문화재제자리찾기에서 준비한 요청서를 전달하고 왔다. 요청서를 받은 소노다 선생님은 일행이 학교를 떠나자마자 도시샤 학교법인 이사장실로 전달했다 한다.
이 사실은 국내 언론보다 일본 언론에서 더 많이 다뤘고 이슈가 됐는데 댓글이 4천개 이상 달린 기사도 눈에 보였다. 일본인들은 호랑이를 줘야한다, 말아야 한다 등으로 의견이 갈리고 있었다.
올해는 야마모토 정호군이 호랑이를 잡아간 지 99년이 되는 해이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호랑이가 잡혀간 지 100주년이 되는 해에 도시샤에 있는 호랑이 박제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올해부터 호랑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야마모토가 잡아간 호랑이는 도시샤에 있는 것 말고도 한 마리가 더 있는데 당시 황태자에게 기증했다 한다. 현재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이 호랑이의 행방을 추적중이다.)

 

 

△(왼쪽부터) 도시샤 표본관 소장 조선 호랑이,

교토의 오타니 고등학교에 보관돼 있다가 2005년 재일한인역사자료관에 기증된 조선 호랑이,

도쿄과학박물관 소장 호랑이(사진출처 : 본인촬영)

 

지난 2월 22일부터 3일간 조선호랑이의 행방을 추적하기위해 일본 교토와 도쿄에 있는 호랑이들을 조사했다. 박제라고 해도 호랑이 옆에 서면 어찌나 무섭던지 나중에 집에 와서 보니 호랑이와 같은 찍은 사진에 잔뜩 겁을 먹은 필자의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필자 옆에 너무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호랑이의 표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 망령은 조선의 무엇을 앗아간 것일까.



진보는 은폐하고 보수는 외면했던 개성공단의 진실

추재훈

도대체 왜 개성공단이 평화를 위한 안전장치란 말인가? 애초에 적지(敵地) 한가운데 협력적 공단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오늘날 개성공단 존폐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개성공단이 기획된 의도가 상당부분 숨겨져 있기 때문에 유발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성공단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다. 하지만 개성공단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다는 명제 자체는 너무나도 불충분하며, 그 숨겨진 의도를 알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개성공단과 평화 혹은 안정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론적·현실적 구상과 근거들이 숨어있다. 이를테면 전략적 요충지인 개성에서의 북한군 후퇴, 개성공단을 근거로 하는 한반도 국제경제지구의 가능성 확대 등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고, 그래서 꼭꼭 숨겨질 수밖에 없었던 개성공단의 성격이 있다. 신자유주의다.


개성공단이 극도의 우파 자본주의적 기획의 결과였음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개성공단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개성공단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다. 이 때의 전략은 단순히 군사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햇볕정책이라는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정책의 산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좌파·우파와 진보·보수라는 이념적 구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이 좌우와 보혁에 대한 왜곡과 몰이해가 만연한 사회기 때문인 탓도 있다.


▲ 정부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지난 11일 오전 경기도 파주 경의선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들이 차량에 물품을 싣고 복귀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분단체제, 좌-우, 보-혁의 왜곡


개성공단을 이야기하기 전에 좌우와 보혁에 대해 간단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오늘날 좌파-우파, 진보-보수의 틀은 복잡하다. 그러나 핵심은 간단하다. 먼저, 좌파-우파는 결코 민주주의와 관련된 구분이 아니며, 경제적 지향성과 관련된 구분이다. 우파는 사익 중심의 자본주의를, 좌파는 공익 중심의 사회주의를 지향한다(여기에서 말하는 사회주의는 레닌이 기획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소수 경제기득권의 횡포를 방지하고자 하는 사회주의 본연의 이념이다. 북한을 결코 사회주의국가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진보와 보수의 경우, 진보는 보다 개혁적인 사람들, 보수는 보다 현상유지적인 사람들의 집합이다. 진보와 보수가 일률적으로 추구하는 이념이란 없으며 시대에 따라 변한다. 카이사르 시절 로마에서는 공화주의자들이 보수, 왕정주의자들이 진보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런데 근대 이후의 세계는 영미식 자본주의 체제가 지배적이므로, 우파는 자연스럽게 보수로 귀결되었다. 마찬가지로 좌파와 진보 또한 연관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말 공산권이 붕괴하며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런 사실에 입각한 채로 개성공단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 개성공단은 우파적 이념의 발현이다. 개성공단의 근본적인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대한민국의 자본으로 북한에 공단을 짓고, 여기에서 나오는 이익을 남북이 나누어갖는 것이다. 북한은 노동력만 투입하고 인건비를 벌어들이며, 나머지 이익은 한국 기업이 갖는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신자유주의 다국적 기업의 돈 놓고 돈 먹기 전략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원리다.


▲ 지난 12일, 개성공단기업협회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진 새누리당(左)과 정의당(右) ⓒ오마이뉴스


개성공단, 극도의 자본주의


따라서 이런 식의 공단이 커지면 커질수록 북한은 얻는 만큼 잃는 것도 커진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쉽사리 건드리지 않았던 것은 개성공단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이 아직까지 북한에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으므로 지금처럼 첨예한 갈등이 벌어졌을 때 개성공단을 버릴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즉, 개성공단은 더 커져야 했다. 가령 지금까지 개성공단에는 총 123개 기업이 입주해있었는데, 만약 1,230개 기업이 있었다면, 혹은 한미의 협조 하에 삼성이 들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남북이 구상한 대로 해주공단, 신의주공단까지 만들어지고, 나아가 함흥공단, 원산공단 등이 만들어져 몇 백만 명의 북한 주민이 한국 기업으로부터 월급을 받았다면?


대한민국 경제가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커졌을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지금 중국의 영향력과 맞먹거나 혹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북한 정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남북경협을 통해 천문학적인 세금을 거둬들이고 여기에 크게 의존할 만큼 대남의존도가 높아졌다면, 그래서 경협 중단이 정권 운영에까지 타격을 입힐 정도가 된다면, 지금처럼 남북경협 중단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무작정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자행할 수 있을까?


우파가 보수와 교집합이 많고 좌파가 진보와 교집합이 많은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왜 햇볕정책과 개성공단이 자칭 보수세력에게 지탄받는가? 그것은 안보지상주의가 만연한 한국의 분단체제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는 우파적 보수성을 지향하는 사람조차도 정치적으로 반공적·안보적 보수성에 매몰되는 분단모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컨대 이것을 북풍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북풍이 향하는 곳은 이른바 좌파 혹은 종북이라고 이름붙여진다. 이곳에는 안보지상주의에 어긋나는 모든 사람들이 뒤섞여있는데, 진정한 의미의 우파도 예외가 아니다. 또한 상당한 국민들은 이를 믿는다. 개성공단은 경제적으로는 철저한 우파적 논리에 따르지만, 분단국의 왜곡된 정치지형 속에서 개성공단이 좌파적이라는 모순적인 비난이 생겨난 것이다.


▲ 개성공단 총계획(左, ⓒ용인시민신문). 계획은 2008년 이후 남북관계 악화와 더불어 중단되었고, 현재는 1단계까지만 진행되었다(右, ⓒ시사저널).


전장에서 시장으로


햇볕정책이 우파 자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게 전부인 것은 아니다. 햇볕정책은 남북의 경제적 협력에서 시작해 정치적 협력까지 이끌어낸다는 목표로 출발했다. 이를 기능주의라고 한다. 기능주의는 “자유로운 교역은 전쟁을 억지한다”는 칸트의 영구평화론이 모태가 되어, 현대 유럽에서 통합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 유럽연합의 근거가 되었다. 즉 기능주의란 단순히 일상적·평면적 신뢰가 아니라 기능적 협력을 통한 관계적·전략적 신뢰의 구축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유럽은 기능주의적 사고에 따라 각종 경제적(기능적) 협력을 펼쳐나가면서 1958년에 유럽경제공동체(ECC)를 만들고, 이를 1967년에 유럽공동체(EC)로 발전시키고, 마침내 1991년 유럽연합(EU)을 출범시킬 수 있었다. 오늘날 유럽은 경제위기에 고전하고 있지만, 위기에 맞서 더욱 전향적인 통합을 위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세계대전 후 어수선했던 유럽이 통합되는 과정을 벤치마킹한 정책이 햇볕정책이며, 그 속에서 설계된 결과물이 개성공단이다.


그런데 남북은 유럽과 크게 두 지점에서 차이점이 있었다. 첫째로 유럽의 전반적 경제격차에 비해 남북 경제격차가 훨씬 심하다는 점, 둘째로 유럽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는 안보협력체가 1949년 먼저 만들어져 있었던 점이었다. 남북 경제격차는 유럽 통합이 진행되던 때 유럽 내부적 격차보다 훨씬 심하므로 한국 자본이 북한에 투입되면 될수록 북한의 경제적 종속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남북의 첨예한 군사적 대립은 경제협력의 심각한 제약이었으며, 따라서 경협은 군사대립을 약화시킬 수 있도록 보다 전향적으로 시도되어야 했다.


▲ 유럽공동체(EC)는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통해 EU(유럽연합)으로 출범했다. ⓒAPF


시장에서 광장으로


대한민국이 햇볕정책 구상을 처음 내놓았을 때 북한이 격렬하게 반대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고민했던 부분도 이 부분이다. 두 정부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지 몰라도, 햇볕정책은 본질적으로 북한 경제의 한국에 대한 예속을 심화시키는 극도의 자본주의 정책으로 발현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두 정부는 햇볕정책이 평화를 위한 정책이 될 수 있도록 경제적 팽창주의로 비춰질 수 있는 언행을 최대한 삼가고, 사회적·문화적 협력을 병행하며 정치·군사적으로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힘썼다.


그 결과 역사, 학문, 예술, 종교, 스포츠 등 수많은 분야에서 남북 협력이 이루어졌고,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을 걷고 있는 최근까지 만월대 공동 발굴 등의 협력을 지속할 수 있었다. 북한은 같은 노동력을 투입했을 때 남북경협보다 북중경협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지만 개성공단을 더 전향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햇볕정책이 자리잡기 시작한 2003년 이후 대남도발은 없었으며, 공교롭게도 햇볕정책이 멈춘 2008년 이후 북한은 대남도발을 자행하기 시작했다(이 지점에서 핵 문제는 분명히 북한의 책임이 크지만, 단순히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니라 항상 동북아시아 및 세계 전체의 문제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의가 바탕이 됐을 때 개성공단이 남북 안정과 평화에 기여한다는 명제는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햇볕정책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이고, 개성공단이 그 결과물이라는 이유로 비판하고자 함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여러 문제점을 야기하는 것은 사실이며 또한 그것이 제도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신자유주의를 통해 최소한의 안정적 남북관계를 일구어낼 가능성은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식의 사고가 불만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우리나라의 왜곡된 정치지형에 의해 개성공단이 이상한 오해의 온상이 된 현실이다.


오늘날 북한문제와 관련해 중국역할론과 중국책임론이 나오는 이유는 중국의 대북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의 대외교역 중 대중교역이 90%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자기 스스로는 아무런 전략적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중국이 북한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에 반해, 지금은 중국이 전유하고 있는 대북영향력을 대한민국이 스스로 갖고자 기획된 것이 햇볕정책이었다. 또한 그 영향력을 최대한 평화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했다. 남북경협이 늘어났다면 우리가 지금과는 달리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남북이 함께 일구어낸 성과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현 정부도 강조하는 신뢰와 평화라는 원칙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개성공단은 결코 헛된 공상이 아니다.




큰 선거들을 앞두고 정당들은 대개 굵직한 캠페인 광고를 집행합니다. 대통령 선거인 경우는 TV나 신문을 통한 광고전이 치열합니다. 후보자의 (밀고 싶은) 이미지를 전국의 유권자에게 알릴 수 있는 최대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입에 감기는 슬로건, 참신한 이미지를 어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기실 저는 대선 광고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회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스마트 기기가 활성화되면서 유권자는 TV 외에도 후보의 정보들을 원하는 만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TV에서 후보자를 치장해도 유권자는 후보의 이면들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TV 광고는 아직 역할이 남아 있습니다. 스마트폰보다 TV가 더 친숙한 장년층 이상의 유권자를 위한 어필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TV 광고는 단방향성,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이미지 중심 매체라는 것입니다. 전국적으로 방송되는 이 매체를 통해서, 유권자들은 30초라는 시간 동안에 광고에 노출됩니다. 유튜브처럼 의견이 형성되고 상호 공유되는 것에 제한이 되기에, 유권자에게 후보자의 존재나 이미지를 알리고 가르치기에 딱 좋은 매체입니다. 한마디로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는 광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고는 대개 후보의 캐릭터와 소통 방식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2012년 대선에서 ‘여자1번 후보’와 ‘남자2번 후보’의 광고들을 단편적으로 비교해볼까 합니다. 대선 TV 광고가 좋은 사례들도 많지만, 굳이 이 해의 두 광고를 뽑은 것은 가장 최근의 대선이기도 하지만, 극명하게 다른 시선을 가진 광고였기 때문입니다. 


여자1번_개인에, 개인에 의한, 개인을 위한


준비된 여성 대통령 (2012, 새누리당)

2006년에 있었던 피습사건이 모티브인 것 같습니다. 후보의 인생이야기를 다룬 광고는 많았지만, 특정한 사건을 다루어 어필한 적은 이례적입니다. 사건과 상처를 통한 후보의 깨달음, 생각 등을 어필하고자 하는 것이 광고의 주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상처를 입었던 본인의 네거티브한 상황,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에게 동정심을 유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광고에서 논리정연함보다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더 큰 힘이 나타낼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수반을 꼽는 광고에서 메시지는 배제된 채 일방적으로 감정적 호소만 한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해보이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국가로 접근이 아닌, 후보자 개인으로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어떤 뚜렷한 메시지나 주제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험 많은 선장은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새누리당, 2012)


이 광고에서도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경험 많은 선장’의 이야기를 통해 후보의 오랜 경험으로 위기에 강한 준비된 리더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짧지만 대체로 자기 PR의 성향이 강한 광고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수반으로써의 PR이라고 하기에는 좀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광고든 명확한 소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잘했는지는 알겠지만, 무엇을 잘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의지가 결여되어 있음에도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이제 와서 보니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광고를 보면 후보 개인에 초점을 맞춘 광고입니다. 단순히 개인을 어필하기에는 좋은 광고입니다. 하지만 대선 광고에는 개인보다는 국가를 우선으로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생각하는 국가보다 대통령으로서의 어젠다를 유권자에게 피력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기서 개인을 강조한다는 점은 이미 후보 개인이 곧 국가라는 점으로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유권자가 보는 관점에서 유권자를 위한 광고가 아닌 개인을 위한 광고라는 점에서 과거의 프로파간다와 많이 닮은 모습이 보입니다.


남자2번_참신했지만 전형적인 야당 후보


사람이 먼저다(민주통합당, 2012)


남자2번 후보의 가장 첫 광고인 ‘출정식’ 광고입니다. 여기서 명확히 보이는 점은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는 점이다. ‘평등, 공정, 정의’라는 세 키워드를 들어, 새 시대를 열 것을 말합니다. 얼핏 보면 다소 뻔한 키워드로 보일 수 있습니다. 정의로운 결과, 공정한 과정...누구든지 생각할 수 있는 교과서적인 정치의 이상향입니다. 그럼에도 왜 굳이 이 단어를 말해야 했던 것은, 그렇지 않은 우리 현실임을 방증시키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현실에 젖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잊은 국민에게, 어떤 것이 문제인지를 짚고 대안의 방향을 말하고 싶은 것이죠. 야당이라면 당연히 견지해야 할 포지션이라고 봅니다. 원색적인 비난보다는 더 논리적인 전략이었지만, 유권자에게는 키워드가 다소 ‘뻔하다’는 느낌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남자2번 후보는 제1야당에서 나왔습니다. 당에서는 후보에게 정권 심판이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국민에게 무작정 ‘정권 심판’이라는 슬로건을 외쳤다가는,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딱지가 박힐 것이 뻔합니다. 메시지에는 포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미지도 어느 정도 가꾸고, 유권자가 생각하는 기준과 니즈를 건드려야 메시지를 이해하고 공감의 여부까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남자2번 진영은 그 포장을 국민의 현 실정으로 선택했습니다.


문재인의 이름으로 당신도 출마해주십시오(민주통합당, 2012)


야당의 포지션은 매번 ‘친서민’이었기 때문에, 서민과 청년층을 타겟에 맞춘 광고를 냈습니다. 메시지 자체에도 정당의 기존 당론, 후보의 지론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담겨있습니다만, 다소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애국가입니다. 2012년 유난히도 종북 공격과 사상 검증까지 휩싸여야 했던 후보였기에, 이 애국가가 조금은 절박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남자2번의 모습보다 유권자의 현실을 고스란히 나열하고 있습니다. 지나치는 현실이 문제라고, 그리고 이것을 바꾸겠다는 ‘정권 심판론’이라는 담론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남자2번의 광고는 타겟과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식의 대안이 ‘정권교체’라는 방식이 다소 답정너처럼 보여집니다. 조금 더 다양한 방식과 논리 전개가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사람이 먼저다’라는 카피는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후보와 정당이 말해야 하는 메시지의 정수가 헤드 카피인데, 그 헤드 카피의 자리를 유권자에 내주었다는 것은 마땅히 칭찬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선 광고는 무엇인가



물론 광고의 힘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상품 광고는 잘 팔리게 만들어야 좋은 광고이지만, 대선 광고는 후보를 당선시켜야만 좋은 광고일까요. 글쎄요. 정치 광고에서는 상술과는 별개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저는 도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네거티브 광고를 하는 것도, 좋은 이미지만 보여 주는 것도 정당과 후보의 자유입니다. 흑색선전도 전략의 한 종류니까요. 그러나 허언이나 과장은 대선뿐만 아니라 모든 광고에서는 있어서는 안됩니다. 광고는 소비자와 브랜드간의 상호 신뢰를 전제하에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오래된 브랜드일수록 소비자들의 신뢰는 더 깊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유권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TV에서 보이는 약속과 모습이 거짓이 아니라고 믿고 판단을 할 수 있어야합니다. 광고 속 화려한 수사보다 더 필요한 것은 대중이 믿을 수 있는 신뢰가 아닐는지 생각해봅니다.




 

 

- 바비(Barbie), 이상우, 2012

 


01. 2016년의 첫 낙서를 시작하며

바비.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이 이름을 들이밀며 과연 이 영화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인터넷에 이름을 검색해보니 역시나, 연예인의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혹시 이 영화에 대해 검색을 좀 해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영화 바비’로 검색해보기를 추천한다.

 

이번에는 변명 아닌 변명을 덧붙여본다. 2015년 첫 낙서를 시작할 때 나름대로 낙서의 규칙을 정하고 시작했다. 달리 거창한 것은 아니었으나 ‘갓 개봉한 따끈한 영화들을 그대로 전달해주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웬걸, 사람의 삶은 영 녹록치 않은 것이었다. 점점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아졌다. 2015년에 약속했던 규칙은 점차 깨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필자의 상태 역시 점점 깨지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응원을 해주었던 에디터들에게 감사와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 어쨌든 2015년의 규칙은 깨진 채로 새로운 2016년이 시작되었다.

 

이제 필자는 첫 낙서를 시작하며 2016년의 새로운 낙서 규칙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일단 고집부리며 끌어왔던 영화 영역에만 치중했던 낙서의 벽을 좀 허물 예정이다. (사실 필자의 취미는 여러 문화 활동에 걸쳐져 있어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그동안 꽤 있긴 했다.) 물론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문화 활동은 영화이므로 여전히 비중은 좀 높겠지만 많은 실험적 시도를 거칠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다.(사실 2015년 낙서도 역시 실험적이긴 했다.) 두 번째로는 ‘갓 개봉’에 너무 심취하지 않으려고 한다. 갓 개봉! 이 단어에 묶여 내뱉지 못했던 많은 낙서들을 올해는 좀 더 용감하게 공개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Light라는 이름에 맞는 좀 더 가벼운 낙서들로 채워보고자 한다.

 


02. 영화 <바비>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영화 <바비>는 제42회 지포니국제영화제(유럽 최대의 국제청소년영화제로 손꼽히는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고,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젼’부분 초청 화제작이다. 사실 이 부분은 포스터를 확인한 후에나 알 수 있는 내용이고, 이 영화가 가장 주목받은 이유에는 김새론-김아론 자매가 영화에서도 자매로 등장한다는 사실에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김새론-김아론-김예론 자매는 한국판 패닝 자매로 불리며 일찍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아직 어린 두 동생이 김새론의 연기를 따라오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동생들의 정형화되지 않은 연기는 꽤 주목해볼만 하다. 연기분야에서는 아직 한국판 패닝 자매가 따로 없는 만큼, 이들이 앞으로도 크게 성장해 한국의 패닝 자매가 될 가능성도 열려있다고 볼 수 있겠다.

 

 

03. <바비> 거울 속의 욕망을 비추다
영화 자체를 현실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라고 생각했을 때 영화 안에서는 거울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거울’이 존재한다. 영화 안에서는 거울이나 창문, 문의 이미지가 유독 많이 나타나는데, 여기에 비춰지는 인물, 창 밖에서 인물을 비추는 카메라의 위치는 거울이나 창문의 이미지와 겹쳐져 분리된 이미지를 형성한다.

 

왼쪽부터 동생 순자, 아버지 망우, 언니 순영 세 가족의 단란한 모습.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얼굴은 순영과 순자의 얼굴이다. 순자의 얼굴은 화장대에서부터 이미 거울의 이미지에 등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바비 인형이 되고 싶어서 화장을 하고, 꾸미는 순자의 모습은 순진한 아이에서 점차 멀어진다. 아이에 머물러 있는 언니 순영과 점차 변해가는 동생 순자의 얼굴은 거울을 기점으로 점차 달라지고, 그들의 운명 역시 갈린다. 그들이 자매라는 점 또한 거울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킨다. 아이로서, 하나의 존재 같아 보이던 자매는 미국 입양을 기점으로 점차 멀어지며 분리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들의 서로 다른 욕망과 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입장 또한 분리와 투사를 반복한다. 이 반복되는 장면 속에서 관객은 어느 순간 영화를 현실의 어느 이야기로 착각하게 된다. 완벽한 거울 속의 이야기의 시작인 것이다.

 

때문에 영화 <바비>는 불편하다. 인물들의 욕망과 질투가 뒤엉켜 너무 현실적인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장 주요한 욕망으로는 역시 순자와 순영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순영은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반면에 순자는 언니와는 정반대로 욕심도 많고, 바비 인형을 동경하며, 바비를 닮기 위해 노력한다. 삐뚤어진 순자의 욕망은 순자를 점점 변하게 만든다. 아이의 가식, 생각보다 매칭이 잘 되지 않았다.

 

어느새 두 자매 앞에 바비라는 미국 소녀가 끼어들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바비의 아버지 스티브와는 달리 바비는 처음부터 순영에게 순수한 호감을 가진다. 바비는 순영을 입양하기를 바라지만, 입양의 이유가 동생을 치료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아버지의 입양에 대해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 순영에 대한 호감보다는 동생의 생존에 대한 욕망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했다.

 

스티브에게 펩시콜라를 내미는 순자.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욕망과 비슷한 어른들의 욕망도 등장한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버지 망우는 순영을, 이익이 되는 일은 뭐든지 하는 망태는 순자를, 바비의 아버지 스티브는 바비를 거울의 이미지처럼 그대로 투사, 발전시킨 인물형이다. 망우는 순영처럼 가족의 행복을 욕망하고, 어떻게 해서든 두 딸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망태는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조카를 이용한다.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그에게 언어와 장애로 인한 소통의 부재는 기회로 작용한다. 스티브 역시 자신의 또 다른 딸을 위해 다른 아버지의 딸을 빼앗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인물들은 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분리되고, 엉키기를 반복한다. 제 3자인 관객은 이 모든 인물들의 뒤엉킨 욕망의 방향을 스크린이라는 거울을 통해 지켜본다. 불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이미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벌어지는 많은 이기적인 사건들을 많이 알고 있지 않은가.

 


04. 분리되는 가족 <바비>

 

순영과 바비. 그 사이엔 역시나 거울이 있다.


<바비>에서는 또한 분리되는 가족의 모습이 등장한다. 순영과 바비의 가족은 비슷한 가족 구성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가족들에서 가장 먼저 분리되는 것은 여성상의 모습이다. 어머니의 존재는 부재하고, 어린 장녀가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한다. 어린 소녀인 장녀가 맡은 어머니의 위치는 주변 어른들에 의해 자꾸만 위협 당한다. 결국 불완전해진 어머니의 자리는 가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가족들의 삐뚤어진 욕망을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한다.

 

많이 들어본 이야기라고 생각된다면, 이미 우리나라의 드라마의 전개를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고전소설인 <장화홍련전>부터, 최근 드라마까지 저런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 너무 많다. 그래서인지 불편하면서도 익숙했다. 결과까지도 예측 가능할 정도로.

 

순영과 순자를 안고 신이 난 아버지 망우.

 

<바비>에서 등장한 인물상의 분리 역시 모든 가족이 결국 해체되게 만들 것이다. 순영의 집에서는 그것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순자가 미국으로 떠나고, 직접적으로 기존 가족 구성원이 분리되기 때문이다. 또한 순영이 가족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망태가 한 짓을 알게 되면 그 역시도 가족 구성원이라는 연결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바비의 가족 또한 그와 같을 것이다. 아버지의 진실을 알게 된 바비는 정서적으로 아버지와 멀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바비가 싫어하는 순자의 심장을 이식받게 될 슈는 바비에게 새로운 이질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결국 바비의 가족 또한 해체되게 될 것은 어찌 보면 자명한 사실이다.

 

이 해체를 막기 위해서 가족 구성원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어머니의 위치를 가진 소녀들은 갖가지 노력을 한다. 순영은 타이름의 방식을 포함해 간접적으로 저항을 하고, 바비는 아버지에 직접적으로 저항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소녀들은 이내 순응하고 만다. 불완전한 어머니의 위치는 오히려 가족을 더 위태롭게 만들 뿐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소녀들은 순응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해체로 이어진다. 결국 이들의 가정이 분리되지 않을 방법이란 애초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필자는 영화가 매력적이라고 생각 이유 중 ‘삶과의 밀착성’을 가장 큰 요소로 생각해왔다. 물론 여기에서 지칭하는 ‘밀착성’은 필자에게 즐거운 유희의 측면에서 작용하는 것이었으나 이번 영화에서는 좀 경우가 달랐다. 현실을 직시하는 하나의 창, 거울에서 불쾌한 밀착성을 발견한 것이다. 가족의 해체, 불법 입양. 불쾌하게도 우리 현실의 모습인 것은 분명하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4.13 총선이 코앞이다. ·야 가릴 것 없이 각 정당들은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예비후보 공천 심사, 그리고 앞 다투어 외부인사 영입 추진 등 총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24일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하나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다음 20대 국회의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현행 54석에서 47석으로 줄인다는 골자였다. 당장에 합의한 두 정당 이외에 비례대표로 원내 진출을 희망하던 소수정당들의 눈앞에 빨간불이 켜졌다.

 

 

<ⓒ레디앙>

 

 

현재 19대 국회의 총 의원수는 300명이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이 156, 더불어민주당이 116석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의석 중 두 정당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져보면 무려 약93%나 된다. 반면에 소수 진보정당들 중 정의당만 그나마 5석을 갖고 있으며, 그 외 노동당과 녹색당은 단 한 석도 없는 원외정당 신세다. 이 중 정의당은 새누리, 더민주와 함께 원내정당 위치임에도 원내 교섭단체 자격 기준인 의원수 20명에 미달이라 교섭권이 없기 때문에 보수양당으로부터 무시 받는 처지에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복수정당제, 즉 다당제를 추구하고 있다지만, 현실적으로 양당체제와 다름없는 정당구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역주의와 인물, 계파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정치문화에서 소수정당으로서 원내에 진출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특정 정당의 과반의 의원 구성에 따른 다수당의 횡포를 미리 막고, 소수정당의 원내진출을 도모하고자 마련한 장치가 바로 비례대표제다. 현행 비례대표제는 총선에서 3% 이상의 정당지지율을 얻어야만 그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1순위인 사람에게 비례대표 의원직을 부여한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지역구에서 의원을 5명 이상 당선시켜야 지역구 의석 비율에 따라 비례대표직을 배분받게 된다.

 

그런데 현행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에게 불친절하단 점 외에 또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사표'의 가능성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수정당의 경우 지역구에서 승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실정이다. 일단 새누리와 더민주 양당의 견고한 경쟁구도 속에서 지지도가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정당과 후보 개인의 열악한 재정상황으로 막대한 선거자금을 조달하기란 더욱더 힘들다. 때문에 결국 소수정당의 입장에서 비례대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당장에 지지율도 3% 받기 힘든 마당에 정당득표율 3%를 얻으려 한다는 것 역시 큰 벽에 부딪치게 돼있다(3%가 당장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투표자 수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된다). 다시 말해 정당득표에서 어느 정당이 최종적으로 3%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할 시 던져진 그 표들은 전부 사표, 즉 '죽은 표'가 된다. 어느 한 유권자가 소신껏 소수 정당에 투표 하고 싶어도 만약 3%가 넘지 않으면 나의 표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을까란 두려움 때문에 선뜻 투표하지 못 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렇듯 소수정당은 도저히 살아남기 위한 돌파구가 없는 정치선거제도 현실에 놓여있다.

 

지난 2015년 초 국회는 선거구획정 관련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별 인구 차이에 따른 투표가치 불평등 문제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함께 거론된 제시안이 바로 비례대표제에 대한 개혁 작업이었다. 선관위는 이에 연동형비례대표제 방안을 처음 제시했고,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적 소수정당들이 주도적으로 이를 주장해오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현행 비례대표제가 단순히 정해진 비례대표 전체 의석수(현행 54)에서 득표율을 따져 비례대표를 배분했었다면, 그와 다르게 총 300석의 의석에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고스란히 비례대표직을 배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는 절대적으로 소수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기 유리한 제도로 여겨진다. 혹여나 지역구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을지라도 현행 의석수를 전제하에 정당득표율을 단 0.5%만 기록해도 1명 이상의 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최근의 전국선거였던 2014년 지방선거에서 소수정당들의 각 정당득표율을 보자면 정의당은 3.52%, 노동당은 1.25%, 녹색당은 0.84%. 현행 비례제도로 계산하면 유일하게 정의당만이 고작 1석을 얻을 수 있는 초라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때의 각 정당득표율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입해보면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은 각각 무려 10, 3, 2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겨우겨우 정당득표율 3% 이상을 얻어야 비례 의원 1명을 얻을 수 있던 것에 반하여 얼마나 놀라운 효과이자 결과인지 눈여겨보게 된다. 

 

 

 

<‘6대 선거권역중앙선거관리위원회>

또 다른 방안으로 권역별비례대표제가 거론된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주장하는 것으로서 먼저 특정 권역별로 선거구를 나눈 다음, 국회의원 정수인 300명을 기준으로 해당 권역의 인구비례에 따라 각 권역별로 지역구 의원수와 비례대표 의원수를 더해놓은 할당된 총 의원 수를 배정한다. 그리하여 특정 정당의 득표율 결과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는 제도다. 여기서 할당된 의원 수는 지역구 : 비례대표 = 2 : 1’의 비율이다. 예를 들어 서울(인구비례 약 20%)을 기준으로 인구비례를 하면 300명 의원정수 중 60명의 의원을 선출할 수 있다. 지역구 대비 비례대표 의원 비율을 2:1로 한다면 지역구 의원 총 40, 비례대표 의원 총 20명이 된다. 여기서 만약 어떤 정당이 서울 권역에서 20명이 당선되고, 40%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한다면, 원래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받을 24명의 비례 당선자 중 지역구 당선자 수(20)를 뺀 나머지 4명만 비례대표직을 배분받게 되어 총 24(지역구20+비례4)의 의원을 얻어가는 방식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면 연동형보단 미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소수 정당에게 역시나 기회를 줄 수 있고, 또 호남에서 새누리당이, 반대로 영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얻는 등 지역구도를 완화하는 데 도움 될 것이라 선관위 역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여·야의 협상 파행 소식에 정의화 국회의장까지 나서 선거구획정 및 비례대표확대 합의 촉구의 성명을 냈지만, 소수정당 야당의 득세가 실현될 것이 두려워서인지 새누리당은 그마저 무시한 채 전면 반대하고 나섰다. 자신들의 과반 의석수가 깨질 것이 우려되니 반대한다는 노골적인 언사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개혁하기 좋아하면서 정작 개혁당하기는 싫어하는 그 얄팍한 속내가 드러나보인다이렇게 정치 혁신을 뻔뻔히 거부할 수 있는 건 한국 정치사에서 이어져온 지역주의정치, 정당정치의 과두제, 제왕적 대통령제 등의 고질적인 폐단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점차 민주주의와 자유가 우리 생활과 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함에 따라 다원화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들은 점차 계층별, 분야별로 각기 추구하는 바가 다양해지며 정치권력이 자신들의 더 나은 삶을 대변해주고 책임져주길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주류 정치세력들은 국민들의 삶보다는 위선과 권모술수의 정치로써 기득권 수호와 정권 획득에만 혈안이었다. 그게 다였다. 전보다 다양하고 세분화된 가치를 충족해주고, 또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정당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만의를 배제한 정치는 정치적 무관심층을 생산했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넘어 전사회적인 신뢰와 연대를 깨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례대표 확대를 위한 각 정당과 시민사회, 국회의원의 기자회견 모습 비례대표제포럼>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정진후 정의당 원내대표, 박원석 정의당 의원 정의당 트위터>

연동형(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은 그래서 필요하다. 비례대표제도 개혁은 먼저 보수양당의 독과점 체제가 쌓아놓은 정치적 진입장벽을 허물고, 사표가 줄며 비례성이 높아지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여러 소수정당들이 원내에 진입하여 정책으로써 경쟁하는 정치, 다양한 계급과 계층,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의 환경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이로써 정당정치의 활성화가 예견되는 바, 소수정당들의 주요 가치인 '탈핵', '노동', '복지', '실질적 민주주의', '평등', '평화', '생태', '인권' 등이 개개인의 정당 참여로써 조금 더 실현 가능해질 것이다. 연동형(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의 꽉 막혔던 숨통을 트게 해주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앞서 말했듯이 새누리와 더민주, 보수양당은 비례대표제 개혁과 선거구획정의 합의 파행인 와중에 현행 비례대표 의원수를 줄이고 결국 본인들에게 유리한 지역구 의원수를 늘리는 게리맨더링을 저지르고야말았다. 여기서, 더민주는 도대체 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또, 새누리는 직접 말만 안 했을 뿐, '지역주의를 좀먹으며 기생할 것'이라 공공연한 다짐을 한 셈과 진배없다. 이 밀실야합은 거대 보수양당이 정치문화 전반을 혼탁하게 만들고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만 수호하려했다는, 유권자들의 비판을 결코 면치 못 할 것이다. 아마도 현대정치사에도 길이 남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엔 경제민주화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당정치, 선거제도의 민주화 또한 간절히 필요하다. 연동형(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개혁하는 정치혁신은 '숨통이 트이는 정당정치', '숨통이 트이는 사회'로 변화하는 움직임에 크나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마지막회 시청률 19.6%, 역대 케이블 TV 프로그램 사상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세트장이 철거된다. 세트장은 의정부종합운동장 확장 부지에 위치해있다.

사진출처 : 응답하라 1988 홈페이지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의정부에 거주하는 시민으로서 의정부에 응답하라 1988’ 세트장이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뻤다. 왜냐하면 의정부를 대표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가 그동안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의정부시에 대해 물어보면 군사도시또는 경전철 문제(버스보다 느리다거나 적자가 심하다거나 자주 멈춰 선다는 등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밖에 떠오르지 않는 곳이라는 답을 들었다. 그렇기에 응답하라 1988’ 세트장이 의정부의 이미지를 조금 바꿔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다른 시군에 사는 사람들이 세트장도 구경하고 근처에 있는 부대찌개 거리에서 점심도 먹으면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그래서 드라마가 종영하면 세트장에 가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MK스포츠 123일자 기사에 따르면 경기콘텐츠진흥원과 의정부시, CJ E&M등이 해당 세트장의 보존, 활용을 위해 민간 위탁 운영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했으나 결국 부지의 기본적인 사업 계획 등 원천적인 해결이 불가능해 잠정적 철거 결론을 냈다"고 한다.

CJ E&M 측에서 의정부시에 세트장 보존을 위해 10억원의 비용을 지불하라고 요청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세트장이 철거가 확정된 듯 하다.

 

보도된 기사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여 의정부시에 전화해서 관련 사항을 물어보았다. 의정부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세트장이 가건물이기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가 있어서 시민 개방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 말이 사실일까? 그래서 세트장의 모습이 어떤지 직접 찾아가 보았다.

 

직접 찾아가 본 세트장은 겉에서 볼 때는 무슨 건물인지 모를 정도로 커다란 벽에 막혀있었다. 그러나 세트장 안으로 들어간 순간 TV 속에서 만났던 쌍문동 봉황당 골목이 펼쳐졌다. 이미 철거가 시작돼 봉황당 간판은 보이지 않았고 쌍문동 태티서가 나물 다듬고 만두 빚던 평상도 보이지 않았다.

 

 

 

(위쪽 첫번째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철거중인)

택이네 집, 정봉이네집, 선우네집, 봉황당 골목길 계단

사진출처 : 본인촬영

 

현재(2016128)는 소품 철거가 진행 중이며 구정이 지나면 본격 철거에 들어간다.”는 세트장 철거 관리인에게 세트장 안전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더니 정봉이네 집과 같은 곳에 직접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크게 문제가 없다.”고 했다. 덧붙여 시민개방을 할 줄 알았는데 왜 바로 철거하는지 본인도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아고라에서도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의정부 세트장 철거 반대청원이 125일부터 진행 중이다.

(청원 사이트 링크 :  http://m.bbs3.agora.media.daum.net/gaia/do/mobile/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81524&objCate1=1&pageIndex=1)

청원에 참여한 네티즌들은 입장료 내더라도 꼭 가고 싶다, 잠시 동안만이라도 개방해준다면 좋겠다.”라는 입장이다.

세트장 철거에 찬성하는 네티즌들도 있다. 그들은 청원이 시작되자  유지, 관리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더라.’,‘다른 드라마 세트장들도 개방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안와서 철거한만 못했다더라.’라는 의견을 냈다.

세트장 철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청원을 낸 이유는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시민에게 개방할 수 있는 방법을 의정부시가 찾아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88’은 세대 간의 격차를 줄여준 고마운 드라마다. 그렇기에 철거가 결정됐다하지만 날씨가 풀리면 엄마,아빠, 친구들 손을 잡고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의정부시와 CJ E&M이 다시 한 번 노력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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