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at

[91 jan.feb 2015] 에브게니 모로조프, <데이터 센터를 사회화하자!> - ①[91 jan.feb 2015] 에브게니 모로조프, <데이터 센터를 사회화하자!> - ①

Posted at 2015.03.16 07:30 | Posted in [New Left Review]

* <뉴 레프트 리뷰>는 1960년 영국에서 창간되어 격월로 발간되는 잡지입니다. 이따금 한국어로 번역되어 단행본(도서출판 길)으로 출간되긴 하지만, 영어판 잡지에 기고된 글을 선별적으로만 다루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BIG HIP>에선 <뉴 레프트 리뷰>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글들을 최대한 번역해서 수록할 예정입니다.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에, 분명 오역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걸 발견하신 분이라면, 제게 훈수를 두셔도 좋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여기서 공동 번역 작업을 제안하고 있는 셈입니다.

 

 

 

에브게니 모로조프[각주:1]

 

데이터 센터들을 사회화하자!

 

냉전 이후post-Cold War 동유럽의 정치학 기초 교육으로부터, 실리콘 밸리의 속사포patter 비평을 경유하여, 인터넷과 신자유주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회역사적 논쟁들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작업은 어떠한 다른 기술 비평가와 달리 독특한 경로를 좇는다. 이 혁명을 양산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벨라루스Belarus의 민스크Minsk 지역에 있는, 50년대 후반 새로이 탄광 마을로 설립된 솔리고르스크Soligorsk라 불리는 지역에서 1984년에 태어났다. 거의 모든 노동력은 외부에서 유입되었고, 거기에 국가적 특성은 거의 없었다. 친가는 러시아 북부에서 왔고, 모스크바Moscow 근처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70년대에 우크라이나에서 광산학 학위를 취득한 뒤 (솔리고르스크에) 왔다. 그 도시는 포타시움potassium을 채굴하여 세계 시장에서 매우 잘 팔리는 비료를 생산하는 거대 국영 기업 하나가 꽉 잡고 있다. 그 기업은 여전히 벨라루스에서 가장 이윤이 높은 기업이다. 조부모님에서부터 삼촌, 고모들까지 온 가족은 그 회사에서 일했다. 내가 일곱 살이었을 때 소련USSR이 해체되었고, 솔리고르스크 같이 작은 도시에서 살면서 많은 문제들을 겪었지만, 소련의 붕괴와 우리 가족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내가 열 살 때 권력을 잡은 루카셴코Lukashenko 대통령 치하에서 벨라루스는 공식적으로는 두 개의 국어를 인정하였지만, 러시아어가 지배적인 언어였고, 솔리고르스키에서 자라는 것은 그저 러시아의 한 지방에서 자라는 것과 같았다. 우리는 민스크보다 모스크바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훨씬 많이 접했다. 초기에 벨라루스의 텔레비전은 없었다. 국내 미디어는 별로 힘이 없었고, 그래서 우리가 보는 신문들과 집에서 보는 대다수의 TV 프로그램들은 러시아로부터 온 것이었다.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에 사는 사람들은 아마 내가 솔리고르스크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큰 단절cut off를 느꼈을 것이다. 후에 루카셴코는 만약 도시에서 미디어의 흐름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독립 국가로서 벨라루스의 존립을 입증할 능력을 상실하고, 벨라루스가 단지 친 러시아 국가밖에 되지 못할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러시아 프로그램을 하루에 서너 시간으로 제한하고 몇몇 지역 뉴스와 벨라루스의 프로그램을 섞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 같은 이들은 위성방송 수신 안테나를 사서 러시아 TV를 계속 봤는데, 특별히 루카셴코의 정치를 불신해서라기 보다는, 지역 방송이 너무 지루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당신은 벨라루스를 떠나게 되었나? 

 

내 사촌은 네덜란드로 떠나기 전에, 운 좋게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학사 학위를 딸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나도 나라 밖에서 뭔가 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걸게 되었다. 나는 미국 고등학교에서 일 년을 보내고 싶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차순위는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의 국경 근처에 있는, 불가리아Bulgaria의 블라고에브그라드Blagoevgrad라 불리는 작은 도시에서 공산주의 지도자들을 키우기 위한 학교였던 자리에, 소로스Soros와 미국국제개발처USAID, 그리고 아마 몇몇 정부 부처의 재정적 지원으로 90년대 초에 설립된 아메리칸 대학American University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그곳은 솔리고르스키처럼 인구 7만명의 작은 도시였다. 그곳은 구소련 블록 혹은 그 인접국(불기라이,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몽골리아 등)에서 학생들이 넘어온 특이하고 가난한 곳이었다. 나를 포함하여, 대다수는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내가 2001년 도착했을 땐 코소보 사태 직후였던 터라, 대학에서는 민족적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4년을 보냈고, 구소련에 대하여 벨라루스에서보다 훨씬 많이 배웠다.


무엇을 공부했나?

 

대학의 강령은 지역의 더 나은 지도자들, 시민 사회나 정부에서 정치 경력political careers을 쌓을 준비가 된 동창생들을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몇몇은 그렇게 됐지만, 졸업자들은 대부분 컨설팅이나, 감사auditing 또는 회계 법인에 취직했다. 나는 경영학과 경제학 복수학위 취득했다. 초기에는 투자 은행에 취직하려는 야망을 가졌다. 그 야망으로부터 나를 구해낸 것은  전 세계의 모든 거래들이 이루어지는(그래서 만약 증권매매업자들이 ‘O’를 ‘I’로 잘못 타이핑했다면, 그 실수를 잡아내야 한다.) 본머스Bournemouth에 위치한 JP 모건Morgan에서의 10주간의 인턴십이었다. 나는 왜 그들이 그 과정을 자동화하지 않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투자은행은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가리아에서 졸업한 뒤 무엇을 했나?

 

역시 (이 경우에는 교양liberal arts 교육에 사로잡힌 미국의 자선가 개인에 의한) 미국 자본으로 설립되어, 지금은 바드 컬리지Bard College의 일부분인, 작은 규모의 유러피언 컬리지 오브 리버럴 아츠the European College of Liberal Arts에서 일 년간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학위 과정은 아니었지만, 전액을 지불하면 일 년간 바람직한 인문학 과정을 밟을 수 있었다. 내가 끝마친 프로그램은 세 명의 사상가들(프로이트Freud, 맑스Marx, 그리고 푸코Foucault를 연이어)에 초점을 맞췄다. 아홉 달 동안 우리는 매우 광범위하게 읽었다. 소설에 있어서 루카치Lukács , 제임슨Jameson, 노버트 엘리아스Norbert Elias, 수많은 2차 자료들secondary literature 등. 매우 지적인 자극을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나는 투자 은행에서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았던 만큼, 학자 또한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러한 공부가 대부분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돌이켜보면 그런 공부를 했다는 것이 기쁘지만.

 

당신은 어떻게 투자 은행가에서 뉴 미디어 작가로 전환하게 되었나?

 

나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네덜란드 대사와 결혼하여 불가리아로 온 뒤, 블라고에브그라드에서 강의를 했던 영국-네덜란드 전쟁Anglo-Dutch war[각주:2] 기자reporter 에르노트 판 린덴Aernout Van Lynden이었다. 캠퍼스의 문화 수준은 낮았지만, 그는 우리에게 <뉴욕 리뷰 오브 북스The New York Review of Books>와 <파이낸셜 타임즈FT>를 매일 읽게 독려한 진정한 지식인이었다. 기본적으로 멀리 인적이 끊긴 블라고에브그라드에 사는 이들이 그러한 책들을 읽을 리 만무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단지 경력에 초점을 맞췄다. 내가 장문으로 된 저널리즘을 읽고, 영어로 쓰는 것을 열심히 연습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덕이었다. 동시에, 컬리지의 마지막 학년 즈음 나는 블로깅blogging(단지 현상으로서 블로깅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 도구로서)을 특집 보도하는 기사들이 갑작스레 쏟아지는 것에 주목했다. 하워드 딘Howard Dean이 민주당 후보로 참여한,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와중이었다. 소규모 모금의 수평적 배치와 블로깅,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선거에 자금을 대는 견고한 단체와 그것을 장악하고 있는sway 주류 미디어를 우회할 수 있게 됐다.’는 해방적 수사로 그의 캠페인은 점철됐다. 대략 비슷한 시기였는데 2004년 후반, 나는 (러시아어로 의사소통하는 세계에서 매우 유명한 블로깅 플랫폼)라이브저널LiveJournal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우크라이나Ukraine의 오렌지 혁명Orange Revolution에서 같은 도구의 사용에 대한 흥분의 물결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뭔가 흥미로운 게 있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에서는 미디어와 기금모금에 대한 접근을 민주화하는 것에 대한 담론이 있었고, 이미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결과를 볼 수 있으며, 조지아Georgia나 세르비아Serbia에서는 더 일렀다. 미국의 지원 아래서 세르비아에 대항하는 ‘오트포르!Otpor!’[각주:3]의 활동가들은 컴퓨터 게임을 함으로써 시위를 조직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밝힌 바 있다. 컴퓨터 게임, 문자메시지, 블로깅 등. 이러한 단어들이 나의 뇌리에 스쳤다. 이 기술들에 대한 내 흥미는 높아졌다. 다음 해, 나는 하워드 딘 국면moment의 주요 전문가들이 쓴, <블로그!Blog!>라 불리는 편집본edited collection을 집어 들었다. 아마 나는 중요한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유럽에서 내가 속한 집단보다 한 발 일찍 깨달았던 것 같다.

 

정치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게 그 시점이었나?

 

아니다. 더 일렀다. 2003년쯤 베를린에서 하계학교를 다닐 때, 듣도보도 못한 <아크지Akzia>[각주:4]라는 신문에 자유 투고하며, 언론계에 몸담은 러시아 학생을 만났고, 그녀는 내게 편집장을 소개시켜줬다. 아크지는 러시아 카페나 진보적인 사람hipsters과 지식인들이 머무는 장소에 무료로 분배되었고, 온라인에서 꽤나 활동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단지 오락용이나 문화적 출판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이들보다 좀 더 급진적인 러시아의 청년 혹은 다른 활동가들에 대한 정치적 기사를 연재했다. 그들은 내게 칼럼을 제안했고, 그게 내가 언론계에 몸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나는 영어로 쓰기 오래 전부터 러시아어로 쓰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에 대해서 쓴 건 아니었다. 나의 칼럼은 코스모폴리탄cosmopolit라고 이름 붙여졌으며, 전 세계적 이슈(미국 선거, 브라질의 시민 저널리즘과 모바일 기술, 온라인 출판과 저작권, 건축, 하여간)를 다뤘다. 그 당시 나는 러시아 정치에 그다지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 나날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찬양을 주입하던 불가리아의 아메리칸 대학을 나왔던 것을 고려해봤을 때, 만약 내가 러시아 정치에 경도되어 있었다면, 아마 푸틴Putin의 대안으로서 친(親) 호도르코프스키Khodorkovsky[각주:5] 쪽으로 기울지 않았을까. 부분적으로는 나의 사정(당시 나는 언젠가 벨라루스가 EU에 가입할 수 있으리라 믿을 만큼 여전히 순진했다.)으로 인해, 외국의 정책 이슈를 다룰 때면  러시아와 이러저러한 말다툼을 벌이는 몰도바Moldova나 조지아 같은 작은 국가들과 동질감을 가졌다.

 

 

<원문> (p.45-48)

 

evgeny morozov


SOCIALIZE
THE DATA CENTRES!

 

Your work traces a distinctive path—unlike that of any other technology critic—from a grounding in the politics of post-Cold War Eastern Europe, via critique of Silicon Valley patter, to socio-historical debates around the relations between the Internet and neoliberalism. What was the background that produced this evolution?


I was born in 1984, in the Minsk region of Belarus, in a new mining town called Soligorsk, founded in the late fifties. More or less the whole labour force was brought in from outside, and there’s little sense of national belonging. My father’s family came from the north of Russia; my mother, who was born near Moscow, arrived in the seventies with a degree in mining from Ukraine. The town is dominated by one huge state-owned enterprise that mines potassium and produces fertilizers which sell very well on the world market: it’s still the most profitable company in Belarus. My entire family worked for it, from grandparents to uncles and aunts. The ussr dissolved when I was seven, and while there may have been all sorts of problems with living in a small city like Soligorsk, they were not linked to the ussr’s disappearance. Under Lukashenko, who came to power when I was ten, Belarus was officially bilingual, but Russian was the dominant language, and growing up in Soligorsk felt just like being in a province of Russia. We were much more connected to events in Moscow than in Minsk. Initially there was no Belarusian television; the national media were not very strong, so the newspapers we got, and most of the tv programmes we watched at home, were Russian. People in Kaliningrad probably felt more cut off than I did in Soligorsk. Later, Lukashenko realized that if he didn’t control the flow of media in the country, he could lose the ability to make a case for Belarus to exist as an independent state, however pro-Russian. So he started limiting Russian programming to three or four hours a day, and mixing in some local news and Belarusian programming. But then people like my parents bought satellite dishes and continued watching Russian tv, not particularly because they mistrusted Lukashenko’s politics, but because the local stuff was so boring.

 

How did you come to leave Belarus?


My cousin was lucky enough to have studied for her bachelor’s degree in St Petersburg, before moving to Holland. So there was an expectation in my family that I might be able to do something outside the country. I wanted to spend a year in a high school in the us, but that didn’t work out. The next best thing was to go to the American University in Bulgaria, which had been set up in the early nineties with Soros and usaid—and maybe some State Department—money, in a former school for communist leaders in a small town called Blagoevgrad, near the border with Macedonia and Greece. Like Soligorsk it’s a small town, of 70,000 people; an odd, poor place, where a lot of the students came from the former Soviet bloc or adjacent countries: Bulgaria, Romania, Yugoslavia, Georgia, Armenia, Azerbaijan, Mongolia. Many, like myself, were on scholarships. There was a lot of ethnic tension on the campus when I arrived, in 2001, soon after the Kosovo conflict. I spent four years there, and learnt far more about the former Soviet Union than I ever did in Belarus.


What were you studying?


The mission statement of the university was to educate the future leaders of the region, its alumni set for political careers in government or civil society. Some did that, but its graduates mostly found themselves working in business—in consulting, auditing or accounting firms. I ended up double-majoring in business administration and economics. My initial ambition was to work in an investment bank. What saved me from that was a ten-week internship at JP Morgan in Bournemouth, of all places, making sure all the trades went through; so if any of the traders mistyped ‘0’ as ‘1’, you would have to catch it. I never understood why they couldn’t just automate the process. I realized investment banking was probably not for me.


What did you do after graduating in Bulgaria?


I decided to take a year out at the European College of Liberal Arts, a small outfit, now part of Bard College, that was also set up with American money—in this case by a private us philanthropist obsessed with liberal arts education. It wasn’t a degree programme, but you could do a proper humanities course there for a year, with all expenses paid. The programme I ended up on focused on three thinkers: Freud, Marx and Foucault, in succession. For nine months we read very widely; Lukács on the novel, Jameson, Norbert Elias, a lot of secondary literature. It was a very intellectually stimulating programme. But while I knew I didn’t want to do investment banking, I also didn’t want to be an academic. So I thought most of this study was useless. In retrospect, of course, I’m glad I did it.

 

How did you get from investment banking to writing on new media?


A key influence on me was an Anglo-Dutch war reporter, Aernout Van Lynden, who lectured in Blagoevgrad because he was married to the Dutch ambassador to Bulgaria. The cultural standards on campus were low, but he was a genuine intellectual, who encouraged us to read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and the ft every day. Living in Blagoevgrad—in the middle of nowhere, essentially—those were not at all the kinds of things people read. Most students were just focused on their careers. It was due to him that I started reading long-form journalism and experimenting seriously with writing in English. At the same time, in the last year or so of college I noticed that there was a sudden flow of articles dedicated to blogging—not just blogging as a phenomenon in itself, but as a political tool. This was during the 2004 us presidential election, when Howard Dean was running for the nomination of the Democratic Party. His campaign was marked by the horizontal deployment of micro-fundraising and blogging, and an emancipatory rhetoric—‘finally we can bypass the entrenched institutions that fund elections, and the mainstream media that sway them’. At roughly the same time, in late 2004, I saw the same wave of excitement about the use of these tools in the Orange Revolution in Ukraine, where LiveJournal—a blogging platform that was very popular
in the Russian-speaking world—played a significant role.

So I felt there was something interesting here. In America you had this discourse about the democratization of access to the media and to fundraising, and you could already see results of these changes in Ukraine, and earlier in Georgia and Serbia. Activists in Otpor!, the American-sponsored opposition in Serbia, were reporting that they had learnt how to organize protests by playing computer games. To me, this clicked: the computer games, the text messaging, the blogging . . . My interest in these technologies intensified. The following year, I picked up a book written by leading analysts of the Howard Dean moment, an edited collection called Blog!. I was perhaps a bit ahead of my cohort in Europe in understanding that a major transformation was under way.


At this point you started writing about politics?


No, that came earlier. Around 2003, when I was at a summer school in Berlin, I met a Russian student of journalism who was freelancing for Akzia, a paper I’d never heard of, and she introduced me to the editor. Akzia was distributed free in Russian cafés and places where hipsters and intellectuals hung out, and had a quite active online presence. It wasn’t just an entertainment and culture publication: it featured political pieces about Russian youth and other movements, some more radical than others.
They offered me a column, which is how I started in journalism—I was writing in Russian long before English. But not about Russia: the column was called Kosmopolit and covered a global beat—American elections, citizen journalism and mobile technology in Brazil, online publishing and copyright, architecture, you name it. Back in those days I wasn’t much preoccupied with Russian politics. Had I been, given that I was coming out of the American University in Bulgaria, where we were fed the gospel of neoliberalism on a daily basis, I would have probably inclined toward a Khodorkovsky-like alternative to Putin. On foreign policy
issues, I identified with smaller states like Moldova or Georgia in their various squabbles with Russia, in part because of my background—I was still naive enough to believe that Belarus could one day join the eu.

 

 

 

 

socialize the data centres!(evgeny morozov).pdf

 

 

* 뉴 레프트 리뷰 공식 홈페이지 : http://newleftreview.org/


  1. 에브게니 모로조프Evgeny Morozov: 작가이자, 기술의 정치적, 사회적 함의를 연구하는 벨라루스 출생 연구원이다. 그는 현재 미국의 종합 시사 주간지 <뉴 리퍼블릭>(The New Republic)의 수석 에디터를 맡고 있다. (옮긴이 - 위키피디아) [본문으로]
  2. 영국-네덜란드 전쟁Anglo-Dutch war: 17세기 후반에 있어서의 영국과 네덜란드 양국간의 3차에 걸친 전쟁과 18세기 말엽의 1차례 일어났던 전쟁 (옮긴이 - 위키피디아) [본문으로]
  3. ‘오트포르!Otpor!’: '저항하라!'는 의미의 세르비아어. '오트포르'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6년간 존재했던 세르비아의 정치조직이다.(옮긴이 - 위키피디아) [본문으로]
  4. 아크지Akzia: '행동'이라는 뜻의 러시아어(옮긴이) [본문으로]
  5. 미하일 보리소비치 호도르콥스키(1963년~): 러시아의 기업인으로 옛 러시아 최대의 민간 기업이던 석유 회사 유코스의 회장. 푸틴에 대항하여 야당에 정치자금을 대다 '탈세 및 횡령'혐의로 수감 중, 유코스는 파산했다. 이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호도르코프스키는 강력한 반(反)푸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옮긴이 - 위키피디아) [본문으로]

Name __

Password __

Link (Your Website)

Comment

SECRET | 비밀글로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