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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거울 속에서 마주한 분리된 현실, 그 잔혹 동화<바비> 거울 속에서 마주한 분리된 현실, 그 잔혹 동화

Posted at 2016. 2. 1. 08:00 | Posted in [메밀꽃 이는 세상]


 

 

- 바비(Barbie), 이상우, 2012

 


01. 2016년의 첫 낙서를 시작하며

바비.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이 이름을 들이밀며 과연 이 영화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인터넷에 이름을 검색해보니 역시나, 연예인의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혹시 이 영화에 대해 검색을 좀 해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영화 바비’로 검색해보기를 추천한다.

 

이번에는 변명 아닌 변명을 덧붙여본다. 2015년 첫 낙서를 시작할 때 나름대로 낙서의 규칙을 정하고 시작했다. 달리 거창한 것은 아니었으나 ‘갓 개봉한 따끈한 영화들을 그대로 전달해주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웬걸, 사람의 삶은 영 녹록치 않은 것이었다. 점점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많아졌다. 2015년에 약속했던 규칙은 점차 깨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필자의 상태 역시 점점 깨지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응원을 해주었던 에디터들에게 감사와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 어쨌든 2015년의 규칙은 깨진 채로 새로운 2016년이 시작되었다.

 

이제 필자는 첫 낙서를 시작하며 2016년의 새로운 낙서 규칙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일단 고집부리며 끌어왔던 영화 영역에만 치중했던 낙서의 벽을 좀 허물 예정이다. (사실 필자의 취미는 여러 문화 활동에 걸쳐져 있어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그동안 꽤 있긴 했다.) 물론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문화 활동은 영화이므로 여전히 비중은 좀 높겠지만 많은 실험적 시도를 거칠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다.(사실 2015년 낙서도 역시 실험적이긴 했다.) 두 번째로는 ‘갓 개봉’에 너무 심취하지 않으려고 한다. 갓 개봉! 이 단어에 묶여 내뱉지 못했던 많은 낙서들을 올해는 좀 더 용감하게 공개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Light라는 이름에 맞는 좀 더 가벼운 낙서들로 채워보고자 한다.

 


02. 영화 <바비>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영화 <바비>는 제42회 지포니국제영화제(유럽 최대의 국제청소년영화제로 손꼽히는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고,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젼’부분 초청 화제작이다. 사실 이 부분은 포스터를 확인한 후에나 알 수 있는 내용이고, 이 영화가 가장 주목받은 이유에는 김새론-김아론 자매가 영화에서도 자매로 등장한다는 사실에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김새론-김아론-김예론 자매는 한국판 패닝 자매로 불리며 일찍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아직 어린 두 동생이 김새론의 연기를 따라오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동생들의 정형화되지 않은 연기는 꽤 주목해볼만 하다. 연기분야에서는 아직 한국판 패닝 자매가 따로 없는 만큼, 이들이 앞으로도 크게 성장해 한국의 패닝 자매가 될 가능성도 열려있다고 볼 수 있겠다.

 

 

03. <바비> 거울 속의 욕망을 비추다
영화 자체를 현실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라고 생각했을 때 영화 안에서는 거울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거울’이 존재한다. 영화 안에서는 거울이나 창문, 문의 이미지가 유독 많이 나타나는데, 여기에 비춰지는 인물, 창 밖에서 인물을 비추는 카메라의 위치는 거울이나 창문의 이미지와 겹쳐져 분리된 이미지를 형성한다.

 

왼쪽부터 동생 순자, 아버지 망우, 언니 순영 세 가족의 단란한 모습.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얼굴은 순영과 순자의 얼굴이다. 순자의 얼굴은 화장대에서부터 이미 거울의 이미지에 등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바비 인형이 되고 싶어서 화장을 하고, 꾸미는 순자의 모습은 순진한 아이에서 점차 멀어진다. 아이에 머물러 있는 언니 순영과 점차 변해가는 동생 순자의 얼굴은 거울을 기점으로 점차 달라지고, 그들의 운명 역시 갈린다. 그들이 자매라는 점 또한 거울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킨다. 아이로서, 하나의 존재 같아 보이던 자매는 미국 입양을 기점으로 점차 멀어지며 분리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들의 서로 다른 욕망과 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입장 또한 분리와 투사를 반복한다. 이 반복되는 장면 속에서 관객은 어느 순간 영화를 현실의 어느 이야기로 착각하게 된다. 완벽한 거울 속의 이야기의 시작인 것이다.

 

때문에 영화 <바비>는 불편하다. 인물들의 욕망과 질투가 뒤엉켜 너무 현실적인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장 주요한 욕망으로는 역시 순자와 순영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순영은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반면에 순자는 언니와는 정반대로 욕심도 많고, 바비 인형을 동경하며, 바비를 닮기 위해 노력한다. 삐뚤어진 순자의 욕망은 순자를 점점 변하게 만든다. 아이의 가식, 생각보다 매칭이 잘 되지 않았다.

 

어느새 두 자매 앞에 바비라는 미국 소녀가 끼어들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바비의 아버지 스티브와는 달리 바비는 처음부터 순영에게 순수한 호감을 가진다. 바비는 순영을 입양하기를 바라지만, 입양의 이유가 동생을 치료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아버지의 입양에 대해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 순영에 대한 호감보다는 동생의 생존에 대한 욕망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했다.

 

스티브에게 펩시콜라를 내미는 순자.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욕망과 비슷한 어른들의 욕망도 등장한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버지 망우는 순영을, 이익이 되는 일은 뭐든지 하는 망태는 순자를, 바비의 아버지 스티브는 바비를 거울의 이미지처럼 그대로 투사, 발전시킨 인물형이다. 망우는 순영처럼 가족의 행복을 욕망하고, 어떻게 해서든 두 딸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망태는 자신의 돈벌이 수단으로 조카를 이용한다.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그에게 언어와 장애로 인한 소통의 부재는 기회로 작용한다. 스티브 역시 자신의 또 다른 딸을 위해 다른 아버지의 딸을 빼앗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인물들은 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분리되고, 엉키기를 반복한다. 제 3자인 관객은 이 모든 인물들의 뒤엉킨 욕망의 방향을 스크린이라는 거울을 통해 지켜본다. 불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이미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벌어지는 많은 이기적인 사건들을 많이 알고 있지 않은가.

 


04. 분리되는 가족 <바비>

 

순영과 바비. 그 사이엔 역시나 거울이 있다.


<바비>에서는 또한 분리되는 가족의 모습이 등장한다. 순영과 바비의 가족은 비슷한 가족 구성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가족들에서 가장 먼저 분리되는 것은 여성상의 모습이다. 어머니의 존재는 부재하고, 어린 장녀가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한다. 어린 소녀인 장녀가 맡은 어머니의 위치는 주변 어른들에 의해 자꾸만 위협 당한다. 결국 불완전해진 어머니의 자리는 가정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가족들의 삐뚤어진 욕망을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한다.

 

많이 들어본 이야기라고 생각된다면, 이미 우리나라의 드라마의 전개를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고전소설인 <장화홍련전>부터, 최근 드라마까지 저런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 너무 많다. 그래서인지 불편하면서도 익숙했다. 결과까지도 예측 가능할 정도로.

 

순영과 순자를 안고 신이 난 아버지 망우.

 

<바비>에서 등장한 인물상의 분리 역시 모든 가족이 결국 해체되게 만들 것이다. 순영의 집에서는 그것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순자가 미국으로 떠나고, 직접적으로 기존 가족 구성원이 분리되기 때문이다. 또한 순영이 가족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망태가 한 짓을 알게 되면 그 역시도 가족 구성원이라는 연결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바비의 가족 또한 그와 같을 것이다. 아버지의 진실을 알게 된 바비는 정서적으로 아버지와 멀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바비가 싫어하는 순자의 심장을 이식받게 될 슈는 바비에게 새로운 이질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결국 바비의 가족 또한 해체되게 될 것은 어찌 보면 자명한 사실이다.

 

이 해체를 막기 위해서 가족 구성원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어머니의 위치를 가진 소녀들은 갖가지 노력을 한다. 순영은 타이름의 방식을 포함해 간접적으로 저항을 하고, 바비는 아버지에 직접적으로 저항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소녀들은 이내 순응하고 만다. 불완전한 어머니의 위치는 오히려 가족을 더 위태롭게 만들 뿐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소녀들은 순응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해체로 이어진다. 결국 이들의 가정이 분리되지 않을 방법이란 애초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필자는 영화가 매력적이라고 생각 이유 중 ‘삶과의 밀착성’을 가장 큰 요소로 생각해왔다. 물론 여기에서 지칭하는 ‘밀착성’은 필자에게 즐거운 유희의 측면에서 작용하는 것이었으나 이번 영화에서는 좀 경우가 달랐다. 현실을 직시하는 하나의 창, 거울에서 불쾌한 밀착성을 발견한 것이다. 가족의 해체, 불법 입양. 불쾌하게도 우리 현실의 모습인 것은 분명하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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