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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또 다른 암살, 네 가지 대상을 겨누며<암살> 또 다른 암살, 네 가지 대상을 겨누며

Posted at 2015. 8. 19. 14:12 | Posted in [메밀꽃 이는 세상]



 



* 첫 번째 암살 대상 : <암살> 디지털 스포일러


매체에서 계속해서 언급하던 영화 <암살>을 드디어 감상했다. 많은 사람들의 말처럼 재미있었다. 그리고 하필 본 날이 광복 70주년의 광복절이어서 작품 그 이상으로 의미 있게 느껴졌다. 여러모로 애국심이 끓어오르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고, 배우진 역시 화려했다. 무엇보다 독립군 여자 저격수인 안옥윤에 눈이 갔다. 전지현이라는 배우가 여자 저격수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기에 영화 내내 그녀의 행적에 눈이 갔다. 같은 여자가 봐도 결혼식장 씬은 아름다우면서도 멋졌다. 색의 대비가 명확한 장면으로 구성되었던 것처럼, 안옥윤 자리에 전지현이 있어야 할 당위성은 명확해보였다. 나머지 배우 역시 말할 것도 없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감초 같은 역할과 대사는 필자를 139분 동안 홀린 사람처럼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총 평을 먼저 언급하자면 필자의 의견은 ‘아쉽다.’에 가깝다. 일단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예고편은 물론이거니와 뉴스, 네티즌의 평가 등등을 접하며 이미 영화가 너무 익숙해져 정작 본 영화에서는 영화 본연의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인터넷의 발달은 분명 이점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필자는 이런 디지털 스포일러를 당할 때마다 인터넷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개인적으로 정말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전에는 감상평이나 원작을 전혀 참고하지 않는 것을 감상 원칙으로 삼고 있는데, <암살>을 보기 전에는 이 원칙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웠다. 뉴스, 인터넷 할 것 없이 <암살>의 열기로 들썩거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암살>에서 많은 장면들을 알고 있거나 예상할 수 있었고, 딱 그만큼 재미없었다. <암살> 디지털 스포일러를 암살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300불이면 뭐든 다 해준다는 그 남자에게 의뢰하고 싶다. 현재 환율로 300불은 35만 2,380원(15.08.16 기준), 이 돈으로 스포일러를 없앨 수 있다면야 투자할 만한 가격 아닐까. 도와줘요, 하와이 피스톨!



문득 영화관에서 영화를 처음 감상했던 때가 생각났다. 무려 15년 전 이야기다. 가족 대부분이 집을 비운 더운 여름 오후였고, 필자는 퇴근한 아버지와 함께 지금은 사라져버린 모 영화관으로 향했다. 당시에 고소하고 짭짤하던 팝콘의 맛보다 더 강렬했던 것은 시선을 끌어당기던 <반지의 제왕>의 예측할 수 없는 장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지의 제왕>에 대한 특별한 정보가 없었던 필자는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 장면을 상상했고, 예상치 못한 방향의 전개에 흥분하기도 하며 온 몸으로 영화를 즐겼다. 솔직히 3D, 4D가 넘쳐나는 지금보다 그 당시에 감상한 영화가 더 생생했던 것 같다. <암살>에서도 이 정신적인 3D, 4D를 즐길 여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더 생생하고 즐거운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 두 번째 암살 대상 : 비슷한 영화 스타일과 굳어진 흥행 공식



아쉬운 느낌을 보탰던 것은 또 있다. 영화에서 전반적으로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많이 느껴졌던 것이다. 물론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암살’이라는 주제는 많이 등장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만 하기에는 너무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장면들이 많았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가져오는 이유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물들이 아주 낯익다는 것이다. 감초 역할로 종종 등장하는 배우 오달수는 물론이고, 하정우-전지현-이정재의 구도는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 그리고 이 구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도둑들>과 <베를린>이 생각난다. 확인해보니 이 두 영화 중 <도둑들>과 <암살>의 감독(최동훈)은 동일인물이다. 또 다른 작품인 <베를린>의 감독은 현재 인기리에 상영 중인 <베테랑>의 감독 류승완이다.


굳이 영화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다면 아마 모르고 넘어갔을 것 같다. 그만큼 연상된 영화들이 차별화된 자체 영화스타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각 영화의 시대상, 줄거리 등을 제외하고 영화만의 차별화된 스타일은 무엇이 있었는지 필자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공통점은 몇 가지 이야기할 수 있다. 세 영화 모두 화려한 액션과 장면이 긴장을 이끌고, 감초 배우의 대사는 간간히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며 분위기를 이완시킨다. 자연스러운 반전은 관객을 별로 놀라게 하지 않는다. 다음 장면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또한 죽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던 인물의 대부분은 죽고, 소수만이 살아남아 다음 일을 도모한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영화들이라서 그런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흐름이 너무 비슷해 보인다.


사실 최근 상영하는 한국 영화들을 보면 이 같은 느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특정 타겟이 있는 컨셉형 영화이거나 화려한 액션 영화다. 두 가지 공식을 벗어난 영화는 대체적으로 손익 분기점을 넘기지 못하고, 극장에서 소리 없이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사와 배급사는 잘 팔릴만한 영화를 찾고, 감독 역시 잘 팔릴만한 영화 제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악순환은 계속된다. 팔릴만한 영화는 보통 잘 팔렸던 영화와 비슷하게 제작되고, ‘잘 팔리는 영화’는 마치 수학 공식처럼 굳어진다. 위에서 언급했던 세 영화 역시 ‘잘 팔리는 영화’의 공식에 맞춰 충실하게 내용을 풀어낸 것처럼 보인다. 물론 굳어진 공식 자체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화에서 관객이 호응할 만한 공식은 이제 어느 정도 나와 있고, 그 익숙함이 주는 재미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학이 암기 과목이 아니듯, 영화 역시 공식의 반복 나열에 지나서는 안 된다. 공식을 토대로 응용이 가능해야 한다. 다른 영화와의 차별성은 분명 그 응용 과정에서 드러난다.


평균을 유지한다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우리나라 관객의 수준은 계속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관객이 수준이 우리나라 영화 수준의 평균을 훌쩍 넘어설 것이다.(사실 지금도 약간 넘어선 것 같다.) 2015년도 상반기의 흥행작이 주로 웰메이드 외화였다는 사실과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흥행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한국영화는 흥행성을 버릴 순 없을지라도 차별성은 꼭 챙겨 가야 한다. 동시에 이 문제는 제작 및 배급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관객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관객이 있어야 더 다양한 영화도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세 번째 암살 대상 : 기존의 여성 독립운동가상



<암살>은 볼거리가 많은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평했듯이 필자 역시 이 영화가 볼거리가 많은 영화라는 것에 동의한다. 특히 여자 저격수가 대장이자 히로인인 까닭에 전지현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유독 볼거리가 많았다. 독립군 부대를 나오며 어둠 속에서 일본군을 저격하는 장면이나 까페 미라보에서 커피를 처음 마시며 하와이 피스톨을 만나는 장면, 깨진 안경을 다시 맞추기 위해 백화점에 등장하는 장면 등. 특히 잠깐 나온 백화점은 많은 블로거들도 언급할 만큼 꽤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였다.


전지현을 중심으로 한 여성 독립운동가의 존재 또한 볼거리를 넘어 생각할거리다. <암살> 이전까지의 독립운동가는 주로 남성으로 표현되었고, 여성 독립운동가의 존재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소 수동적인 여성으로 등장했다. 독립군의 식사와 바느질을 맡아 하거나 심부름, 혹은 정보원 역할을 하는 등 일부분을 담당할 뿐이었다. 그들의 직업은 주로 술집 마담이거나 술집 아가씨(혹은 기생)였으며, 전통적인 밥 짓는 여성상 혹은 남성을 홀려 정보를 빼내는 여성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필자 역시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일단 매체를 통해서 접해본 적이 없었고, 여성 독립운동가의 존재는 늘 수면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살>에서는 대장인 안옥윤이 등장하고, 친일파인 강인국의 아내이자 안옥윤의 어머니인 여성 독립운동가 안성심이 등장한다.(그러고 보니 안성심으로 등장한 배우 진경은 영화 <베테랑>에도 출연한 인물이다.) 안성심의 존재는 초반부에 반짝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꽤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친일파인 강인국 앞에서 그녀는 담배를 피우며 독립군을 숨겨줬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밝힌다. 또한 신고를 하겠다는 남편을 협박하기까지 한다. 그 뿐인가? 독립운동가의 도주로까지 자연스럽게 확보하기도 한다. 아주 담력이 큰 여성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안성심 역시 기존의 여성 독립운동가의 수동적인 모습에서 완벽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적극적인 모습으로 여성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남편을 벗어나자마자 죽음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옥윤은 안성심에서 더 나아간 여성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안옥윤은 4발의 총알로 4명의 일본군을 맞추는 명사수로 등장한다. 그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임무를 받아 그녀는 당당히 대장격을 맡기까지 한다. 작전을 세우는 데에도 거침이 없다. 기존의 여성 독립운동가였다면 다른 남성 독립운동가의 작전을 수용하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였겠지만 안옥윤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아가 작전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다른 멤버인 황덕삼과 속사포가 초반에 망설이거나 생계형 독립운동을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적극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여성 독립운동가인 안옥윤을 부각시키기 위해 초반부에 굳이 남성 독립운동가로서의 속사포와 황덕삼을 낮춘 것은 아쉽다. 물론 그들은 영화 내에서 감초 같은 역할이므로 콩트 같은 상황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두 남성 독립운동가를 희화화해 상대적으로 높인 안옥윤의 여성 독립가로서의 입지는 다른 인물과의 관계에서 다시 내려가고 만다. 하와이 피스톨과 염석진 옆에서의 안옥윤을 보라. 그녀가 변장한 상태라는 것을 감안해도 존재감은 한층 작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독립운동가인 안옥윤의 입지가 기존과 비교했을 때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거짓 고백 앞에서 흔들리다 결국 아버지를 쏘지 못하는 안옥윤의 모습을 보라. 결국 강인국을 처단한 것은 하와이 피스톤이다. 치렁거리는 드레스를 입고 부케총을 쏘는 모습은 또 어떤가. 강렬한 색채의 효과와 예술적인 장면은 분명 좋았지만, 이번에도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남성 독립운동가의 몫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여성 독립운동가인 안옥윤의 위치가 부각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 아쉽다. 그래도 안옥윤이라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등장과 기존의 여성 독립운동가상에서 더 발전했다는 점에는 큰 의의를 두고 싶다.




* 네 번째 암살대상 : 안옥윤과 미츠코 사이에 선 나, 혹은 누군가


필자는 <암살>를 보고 나서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대해 여전히 모르는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하필 70주년 광복절에 이 영화를 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쌍둥이인 안옥윤과 미츠코라는 인물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일란성 쌍둥이인 안옥윤-미츠코 자매는 얼굴만 같을 뿐, 그 외의 공통점은 없다. 그런데 문득 그 둘에게서 필자 스스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얼굴 이야기는 아니다. 우선 다음 대사를 살펴보자.

 

“알려줘야지…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있었다고.”(안옥윤)

“나도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 좋아해. 그런데 넌 안했으면 좋겠어. 경성에선 다 이렇게 살아.”(미츠코)


여성 독립운동가인 안옥윤과 친일파 아버지를 둔 부르주아 여성 미츠코는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반된 입장차를 보인다. 그러나 닮은 외모 때문인지 두 사람이 한 사람 안에 있는 각각의 인격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한 두려움에도 계속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안옥윤과 독립운동을 지지하지만 동생은 안했으면 좋겠다는 미츠코. 사실 크게 보면 두 사람은 외모만큼이나 비슷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락한 방향을 꿈꾼다. 필자 역시도 마찬가지다. 불편한 역사는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문득 안옥윤과 미츠코 사이에서 필자는 어디쯤에 있을지 궁금해진다.



광복 70주년, 대기업의 건물에서는 태극기가 나부끼고 TV에서는 관련 다큐가 수시로 방영되고 있다. 사실 그래서 광복 70주년에도 달가운 마음보다 슬픈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유로 사실 역사를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필자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진다. 게다가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당위성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에 한층 더 부끄러워졌다. <암살>의 후반부는 그런 필자,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겨냥하고 있는 것만 같다. 바로 김원봉의 대사였다.


“잊혀지겠죠? 미안합니다.”


잊음의 주체가 타인이 아닌 필자 스스로였다는 사실이 그래서 새삼스럽게 더 두려워졌다. 지금 잊혀져가는 역사는 얼마나 많은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필자에게는 가장 아픈 역사인 위안부 문제는 또 어떤가. 필자나 그 누군가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문제라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고, 그것이 점차 현실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 김원봉의 재조명과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 일본인의 존재 역시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나 필자는 안옥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기에 위 글에서는 생략했음을 밝힌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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