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머니’라는 존재가 된 뒤, 뉴욕 현대미술관에 가게 됐을 때, 그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그림 한 점이 눈에 띄었다. 그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희망Ⅱ”라는 작품이었다. 나는 처음에 그 그림을 보고 임신한 여성 아래에 여러 명의 여성이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자들이 울고 있어요”라고 같이 간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이 “이 여자들은 행복하게 잠들었는데?‘라고 반문해서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여성들은 임신한 여성 아래에서 아주 편히 잠들어 있었다.

 

사진 : 구스타프 클림트 ”희망Ⅱ“,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아이를 낳기 전, 내가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은 클림트의 그녀와 같았다. 그러나 아이를 갖고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의 그림 속 여인들이 울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고단하고 괴로운 과정을 거쳤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내 주위를 떠돌던 모성 신화에 대한 과장과 거짓을 마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출산으로 인해 축 늘어진 피부를 붙잡고 3시간에 한 번씩 먹여달라 울어대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그 사이사이 기저귀를 갈아달라 울어대는 아이에게 기저귀를 갈아주고 그 사이사이 토하고 아무 이유도 없이 우는 아이를 달래며 한 생명을 생존시키는 데는 나의 인내심과 체력이 ‘모성’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 시절 나에게 모성에 대해 누가 물었다면 24시간 동안 잠을 잘 수 없는 고문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아이가 조금 커서 어린이집에 가고 내가 일을 하기 위해 사회로 나왔을 때, 나는 내 존재가 지워진 채 살아야 하는 것에 괴로움을 느꼈다. 돈벌이를 하는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이외의 시간 중 내 시간은 없었다. 그 시간은 온전히 아이의 양육에 쓰였다. 주말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이를 낳고 난 후, 누가 내 존재를 지워버렸는지에 대해 항상 궁금해했다.

 

이러한 나의 물음에 에이드리언 리치는 답했다. ‘모성’은 가부장제를 지속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가부장적 일신론은 단순히 신의 형벌을 바꾸어 놓은 것만이 아니었다. 여자의 신성을 앗아갔고 어머니로서 또는 신성한 아버지의 딸로서만 존재하게 했다. (중략) 남성이 자신의 아이들을 알려면 그 아이들의 생산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야만 했다. 다시 말해 아이들의 어머니를 독점적으로 소유해야한다는 뜻이다. (중략) 가부장적 남성은 ‘그의’ 아내를 임신시키고 ‘그의’ 자식을 낳도록 했다.” 에이드리언 리치(20180, <<더 이상 어머니는 없다>>, 평민사, p.134-135

 

이렇게 우리는 자신의 육체를 빼앗긴 존재가 되었다. 앵겔스의 말대로 가부장제 하에서 남편은 부르주아이고 아내와 아이들은 프롤레타리아였다. 그렇기에 리치는 “여성들이 자신의 육체를 다시 소유하게 되면 인간 사회에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이”(p.327)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세상에서는 여성이 선택에 의해 아이들을 낳고 여성의 사고(思考) 그 자체가 변모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괴로웠던 그 순간에도 뱃 속의 아이와 소통하고, 출산 후 아이와 첫 대면을 하고 내가 해주는 행위로 인해 아이가 방끗 웃을 때면 즐거웠다. 나는 이러한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겐 내가 가부장제에 순응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에 매번 절망을 느낀다. 가부장제를 타파하기 위해 모성이라는 것을 무조건 부정하고 배척해야 하는 것인가는 고민해볼 문제다. 왜냐하면 지금의 모성은 남성에 의해 변형된 남성을 위한 모성이지 진짜 모성은 따로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치의 말대로 가부장제가 타파된 이후, 그동안 삭제되었던 진짜 모성이 드러나길 바란다. 임신 출산이라는 여자의 고유 능력에서의 역할을 제대로 인정받고, 그 후 양육 과정에서 “아버지가 자녀 양육과 보육의 일부를 공유한다고 해서 그를 칭송하고 감사히 여기는 일이 더 이상 없”(p.243)는 사회를 꿈꾼다. 그렇게 되면 클림트의 그림 속 여성들이 행복하게 잠자고 있는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선명하게 뜨고 병원에 가서 임신 사실을 확인했다.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펄쩍 뛰며 좋아하기 보단 걱정이 앞섰다. “. 나 이제 뭐해야하지?”

주변 친구 중에 임신한 친구도 없었고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국내 최대 임신출산육아 정보 카페라는 곳에 가입해서 이것저것 읽기 시작했다. 성별을 알고 싶어서 각도를 재서 짐작해보는 각도법이야기부터 이게 가진통인가요? 진진통인가요?’라는 글까지 처음 듣는 단어가 넘쳐났다.


△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책은 매우 다양하다.(본인촬영)

인터넷에 게재된 글이다 보니 믿을만하기도 하고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책을 사서 모으기 시작했다. 책도 저자마다 다 다른 입장을 보였는데 출산에 대해 이야기 할 땐 한결같이 같은 주장을 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는 임신부가 선택한 방법으로 출산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허나 출산의 과정은 임신부 혼자 고스란히 이겨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반드시 임신부의 입장을 존중해야합니다.”

 

사실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원하는 출산 방법이 있었다. 바로 수중분만이다. 사람들은 내가 수중분만을 한다하면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그렇구나라고 생각한다. 허나 나는 나를 위해서 그 분만법을 선택했다. 물을 워낙 좋아해서 아이를 가졌을 때도 온천 태교를 했고 아이를 갖기 전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목욕탕에 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좋아하는 물에서 아이를 낳으면 긴장감도 덜하고 편히 낳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중분만을 알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과학 선생님이 출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셨는데 뮤지컬 배우 최정원씨의 출산 과정이 담겨있었다. 어떤 고통인지는 몰라도 진통이 오자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물에서 아이를 낳아 바로 안아 올리는 장면이 당시 14살의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뒤로 나는 반드시 수중분만을 하겠다고 떠들었고 그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나는 출산 예정일을 열흘 앞두었을 때까지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산부인과에 다녔다. 가깝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수중분만을 한다며 인터넷 홈페이지에 써놨기에 간 것이다. 산부인과는 수중분만 외에도 그네분만 등의 특수분만을 한다며 인터넷에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달이 다 돼가도록 담당 선생님이 나의 분만 방법을 묻지 않으셨다. 왜 묻지 않으실까 궁금해서 8개월차에 접어들 때 선생님한테 여쭤봤다.

 

, 수중분만 하고 싶은데요.” 그 말 한 마디에 선생님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리곤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요즘 엄마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물에 들어가서 애 낳는다고 더 쉽게 낳을 거 같아요? 아이를 낳는 건 아플 거 다 아프고 낳아야 하는거에요. 쓸데없는 정보가 요즘 너무 많아서 탈이에요. 수중분만 할 생각은 접으세요.”

 

남편과 나는 담당 선생님한테 왜 혼났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분명 각종 출산 관련 책에서는 산모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는데 수중분만을 원한다는 이유로 왜 혼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병원을 바꿔야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수중분만을 못해서 뿐만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담당 선생님이 나에게 겁을 줬기 때문이다.

 

태반이 많이 밑으로 내려왔어요. 진통 오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전치태반이라는 말씀인가요?

전치태반은 아니에요.”

그럼 정상범위에서 얼마나 내려갔나요?”

정상범위에 있어요.”

 

이게 무슨 소린지 병원에 갈 때마다 알 수가 없었다. 태반이 많이 밑에 있는데 정상범위 안에 있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설상가상으로 막달에 접어들자 담당 선생님은 제왕절개 이야기를 시작했다. 태반이 밑에 있어서 진통 왔을 때 정상 분만이 어려울 수 있으니까 그 날 상황 봐서 응급으로 수술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병원에 갈 때마다 들었다. 응급으로 수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태반이 밑에 있다는데 그 밑에 있다는 것이 정상 범위 안에 있다는 이상한 소리에 나는 반발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엄마도 우리 친척 언니들도 그리고 우리 할머니도 모두 애를 쉽게 낳다며 출산의 기쁨만 얘기해줬는데 병원에 갈 때마다 혼나고 겁을 먹으니 도무지 그 산부인과에서 담당 선생님과 함께 아이를 낳을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예정일을 일주일가량 남기고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산부인과로 병원을 옮겼다. 태반 검사를 다시 했는데 정상범위에 잘 있었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나는 진통이 올 때 태아의 심박수가 떨어지는 바람에 수중분만이 가능한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수중분만을 못했다. 그렇게 자연분만으로 첫째를 낳았다. 코앞에서 원하는 분만을 못했지만 응급상황없이 그리고 원하는 대로 무통주사도 맞지 않고 자연분만을 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 수중분만실의 모습. (본인촬영)

그리고 2년이 흘렀다. 둘째를 낳기 위해 다시 집에서 1시간 떨어진 병원을 향했고 이번엔 원하는 수중분만을 했다. 은은한 조명에 잔잔히 깔리는 음악.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니 부력 때문인지 내 몸이 살짝 떠올랐다. 남편이 내 뒤에서 허벅지를 잡아 힘을 줄 때마다 같이 당겨주니 세배로 더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임신부의 3대 굴욕 중 하나인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고 난 뒤 입원실에 가자마자 온천을 한 듯 나른한 느낌이었다. 그리곤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온 몸을 감쌌다. 수중분만의 효과도 있었겠지만 원하는 대로 마음 편히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만약에 병원을 바꾸지 않았으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진통이 오는 정신없는 상황에서 태반이 밑에 있다는 담당 선생님의 말만 듣고 제왕절개를 하지 않았을까. 그 병원, 그 선생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난다. 수중분만 하겠다는 그 날, 나는 도대체 왜 혼난 것일까.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의 생일과 시간은 담당 선생님의 수술 스케쥴에 의해 결정된다는 우수개소리가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제왕절개 분만비율은 15%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35~40%로 매우 높은 상황이다. 제왕절개 분만이 의료 기관 및 관계자의 영리추구에 의해 시행돼서는 안 된다는 가톨릭 의료기관 의학윤리지침서도 있다한다. 돌이켜보니 혹시 정상범위에 있지만 태반이 밑에 있어서 응급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담당 선생님의 말의 숨은 뜻이 느껴지는 것 같다. 혹시 담당 선생님은 나를 생명을 걸고 아이를 출산하는 산모라고 생각하기 보단 그저 한 명의 ATM 기기로 본 것이 아닐까.



유난히 덥게 느껴졌던 이번 여름. 출산예정일 전 날까지 출근했던 만삭의 임산부. 출산 전에 회사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느냐 너무 바빠서 출산 가방을 출산 예정일 밤 11시에 쌌다. 그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경악한다. “애가 언제 나올 줄 알고 그랬습니까?” 

작은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모든 준비는 산후조리원에서 한다는 생각으로 겁도 없이 엄마가 될 준비를 대충하고 있었다. 출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생각도 안 해봤다. 돈이 없어서 애를 천천히 낳겠다는 친구들의 말에 ‘에이~ 애는 낳기만 하면 또 어떻게 해결 되지 않나?’하는 생각도 했다. 

나는 산후조리를 2달 만에 끝내고 회사로 복귀해야했기 때문에 내 몸에 좋다는 소리가 들리면 돈을 썼다. 아이가 50일이 지난 지금, 통장에 그득했던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출산비용을 얼마나 썼는가? 


<<출산 한 달 전부터 출산 후 50일까지 소모비용>>


1. 병원비용 : 자연분만, 2박 3일 입원 55만원(방이 없어서 제일 큰 방을 사용했으니 자연분만 후 출산 비용이 더 줄어들 수 있음) 
(- 국민건강보험에서 130만원이나 내줘서 55만원이 나왔다는 걸 영수증을 받아보고 알았다.)

2. 산후조리원 : 2주 조리 270만원 + 조리원 마사지 144만원

3. 한약 : 22만원 * 3번 = 66만원

4. 제대혈 보관비용 : 270만원

5. 스튜디오 계약 : 50일까지 45만원 (돌까지 조금씩 나눠내는 형식)

6. 집으로 오는 산후도우미 한 달 : 175만원

7. 아이 용품 구입 : 젖병, 젖병세정제, 소독 집게, 온도계, 면봉, 코뻥, 속싸개, 겉싸개, 옷, 보온병, 아기이불, 아기침대, 아기흔들의자 등등 약 200만원

8. 기저귀 한 달에 15만원, 분유 한 달에 10만원 

출산 준비부터 출산 후 출근하기 직전까지 계산해보면 1250만원이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출산 후 빠른 시일 내에 복직하기 위해서 아낌없이 돈을 썼다. 제대혈을 보관하지 안겠다고 했다하더라도 또 아이의 성장 앨범을 찍지 않겠다고 결심했다하더라도 천만원 가까운 비용이 출산 시에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최소 비용으로 아이를 출산할 수도 있다. 출산 후 조리원에 가지 않고 산후도우미도 부르지 않으며 한약 등도 먹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본다고 하면 280만원의 비용이 소모된다고 볼 수 있다. 
에이~ 적게 들여서 280만원만 쓰고 애 낳을 수 있는데 천만 원씩 써서 애 낳는 건 너무 사치 아니야?라고 하는 이들이 있을까 하여 말하고 싶다. “현실에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필자는 앞서 말했듯이 아주 작은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작은 단체의 경우엔 출산 휴가 및 육아 휴직 때 대체 인력을 부르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필자가 일하고 있는 문화재 환수 분야는 매우 희귀한 직종이기에(심지어 문화재환수운동가라는 직업은 직업으로 쳐주지 않는다.) 대체 인력을 구하기 힘들다. 필자가 애를 낳고 온 사이 회사는 정말로 멈춰버렸다. 정말로 멈췄기에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다가 회사 행사에 참여하려고 조리원을 뛰쳐나와 일하고 돌아간 적도 있는데 그 날 밤부터 엄청난 젖몸살에 시달려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뛰쳐나가기만 했는가, 노트북을 들고 조리원 침대 위에서 급한 일을 처리하곤 했다.



이렇게 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말로 회사가 멈췄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최대한 빨리 회사로 복직하길 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산후조리원과 산후도우미를 부르고 한약을 먹으며 몸을 회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 결과 32일 만에 회사에 복귀하여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 한 달 쉬지 말고 돈을 적게 들여 출산 한 후 3달은 쉬고 일 나가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빠른 복귀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출산 후 산모의 몸 상태는 모든 뼈가 열려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예전엔 대가족 제도에서 산모와 아기가 보호받았기 때문에 조리원이나 산후도우미가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친정 엄마가 와서 붙어있지 않는 이상 산모를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남편도 아침 7~8시에 나가서 저녁 7시~10시 사이에 오지 않는가.)


뼈가 모두 열려있는 산모가 남편을 출근시키고 3시간에 한 번 먹여야 하는 아이를, 왜 우는지도 모른 채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아이가 울지 않을 때까지 안고 있어야 하는 아이를 볼 수 있을까. 돈 많이 드니까, 최소비용을 들여 애를 낳고 그런 상태로 아이를 보라하면 누가 애를 많이 낳겠는가. 


아이를 낳고 빠르게 회복하여 한 달여 만에 회사에 복직하기까지 나라에서 해준 것은 병원비 지원 130만원이었다. (임신기간 사용한 고운맘카드 비용 50만원도 있으나 이 칼럼은 출산 한 달 전부터 아이 낳고나서 50일을 계산했기에 제외했다.) 문제는 둘째다. 첫째는 어떻게 어떻게 낳았지만 이 비용을 또 부담하고 애를 낳으라는 건 무리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워킹맘의정보창고” http://cafe.naver.com/ggworkingmom/35301


  저출산시대에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것이 많다하여 아이를 낳기 전에 출산장려금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런데 이거 웬걸. 첫째는 지원대상에서 찾아볼 수 없고 둘째 역시 없다.(성남시 제외) 셋째는 낳아야 출산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하면 경제적 부담을 이기고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최소비용으로 낳으면 되지 않냐 우기면 과연 최소비용으로 아이를 낳은 뒤 둘째, 셋째도 낳을 마음이 생길까.


  아이를 낳아보니 국가가 이것을 지원해주면 애를 좀 더 낳겠다 싶은 것이 생겼다. 바로 “산후조리원과 산후도우미 지원”이다. “산후조리원 2주 + 산후도우미 4주”를 국가가 지원해준다면 나는 둘째를 낳고 다시 직장으로 복귀할 생각이 있다. 6주의 시간이면 산모의 몸이 많이 회복된 상태이고 매일매일 빽빽 울던 아이도 안정을 찾고 조금은 잘 자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 시기를 지나면 산모가 혼자 아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6주의 시간동안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크다. 그렇기에 이것을 국가가 지원해주면 나는 애를 더 낳을 생각이 있다. 

 

  조리원에서 만난 친구들도 그 전부터 알고 있던 친구들도 모두 아이를 낳기 전에 사직서를 냈다한다. 내년 초에 결혼하는 가장 친한 친구는 출산비용 부담에 아이 낳는 계획을 미뤘다한다.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 진짜 필요한 시기에 산모를 지원해주는 정책은 언제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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