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홍보를 배우면 여러 분야를 마주합니다. 마케팅, 행동심리, 수사학 등을 넓고 얇게(?)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는 정치 커뮤니케이션도 포함됩니다. 쉽게 얘기해서 선거 광고랑 정치 이미지 같은 것들 말이죠. 이번 글부터 한동안 정치 광고가 어떻게 대중에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볼까 합니다. 첫 글로 ‘네거티브’로 소재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최근에 많이 쓰이는 기법이기도 하면서, 여러분들도 많이 아실 것 같아서 꼽아보았습니다.

 

# 1964년

 

'못살겠다. 갈아보자' - 간결한 네거티브와 메시지가 응축되어있습니다.[사진 : 제3대 대선 민주당 포스터]

 

 

직역하면 "부정적"이라는 의미죠. 어떤 건지는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거나 비꼬아서 말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거 맞습니다. 지금도 토론이나 유세에서 종종 상대 후보를 비난하는 것이 네거티브지만, 그런 기회가 없던 시절은 위의 사진과 같이 오직 선거 포스터와 문구를 통해서 네거티브를 진행하였습니다.

 

역대급 네거티브 사례는 미국 대선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1964년 미국은 대선을 앞둔 상태였습니다. 전해에 있었던 쿠바 미사일 위기와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로 어수선한 시국이었습니다. 당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 후보는 강경한 정책을 내세웠고, 핵무기에 대한 언급이 잦던 시기였습니다. 민주당은 이런 시의성을 활용하여 대선 광고를 만들고 9월 7일 딱 한 차례 방송으로 송출합니다.



 

Vote for president Johnson on November 3. The stakes are too high for you to stay home.

11월 3일, 존슨 대통령에게 투표하십시오. 집에 있기에는 이 위험은 너무나 큽니다. 

 (1964, Lyndon B. Johnson presidential campaign)

 

 

 

광고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의 잠재된 공포를 내면 밖으로 끄집어서 보여준 것입니다. 민주당은 국민이 무엇을 겁먹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공화당이 가진 이미지를 단숨에 부정적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도 결과는 민주당은 61.1% 압승을 얻을 수 있었고, 후보였던 린든 존슨 또한 대통령직을 이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네거티브가 선거의 판도를 바꾼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 1988년

 

네거티브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입니다. 선거 판도를 확실히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선거 이후에도 정치인이 가진 이미지도 영향을 줍니다. 제가 가진 전공서에서 정의한 네거티브의 효과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  부정적 이미지는 대중이 생각하던 기존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데에 큰 영향을 준다.

*  처음 유권자에게 각인된 부정적 이미지는 긍정적 이미지에 비해 쉽게 바뀌지 않는다.

 

1988년 미국에서는 조지 H. W. 부시와 마이클 듀카키스가 대선에서 맞붙었습니다. 민주당의 듀카키스는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성공적인 이력을 바탕으로 당선이 유력한 인물이었는데요. 하지만 부시의 참모였던 리 애트워터가 제시한 네거티브 광고로 역시 판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Revolving door' - 부시는 듀카키스의 죄수주말휴가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였습니다.

 

 

듀카키스가 주지사 시절 시행한 죄수 주말 휴가제도는 의외로 성공을 거둔 정책이었습니다. 치안도 상당히 좋았고, 살인 사건도 전국 최저였습니다. 그러나 이 정책을 공화당에서 교묘히 이용하여 듀카키스를 치안과 행정에 안일한 사람으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유권자에겐 머나먼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일상과 직결되는 주제였으니 효과는 더욱 강력했습니다. 이 외에도 안보와 경제에 관한 지속된 네거티브 공세에 결국 듀카키스는 낙선하고 맙니다.

 

# 2002년

 

우리나라에선 2002년 민주당 국민 참여 경선에서도 이를 활용한 일이 있었습니다. 경선에서 대세론의 적임자를 자처하던 이인제 후보는 선거 초반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나 2위였던 노무현 후보가 표차를 좁히며 바짝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인제 후보 측에서는 네거티브로 승부수를 던집니다. 당시 이인제 후보는 노무현 후보를 향해, ‘언론 국유화’ 발언과 장인의 ‘빨치산’ 이력을 토대로 공격하였습니다. 이 이슈는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는 치명적인 공격이었습니다. 사실의 여부를 떠나, 한번 씌워진 프레임은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낙인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2002, 노무현 후보 연설 중 발췌)

 

 

네거티브 공세 앞에서, 일차적인 대응은 즉각적이고 단호한 반박입니다.  '현재진행형'  의혹이 공격이 들어온다면, 타이밍 또한 중요합니다. 아무리 반박을 하더라도 제 때에, 확실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무마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네거티브 선거전에서 실패한 이유 또한 타이밍과 단호함을 놓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후보는 제기된 공격을 타이밍에 맞게 단호하게 부정하였습니다.

 

 노무현 후보의 발언은 묘수이자 승부수였습니다. 장인의 과거 이력에 대해  ‘감정적’ 호소지만 조목조목 반박하였습니다. 사실 이미 일어난 과거의 사건에 대한 통상적인 대응은 사과를 하거나 이슈를 감추고 후보의 좋은 이력들을 어필하였을 것입니다. 이는 후보가 잘못해서 사과하라는 게 아니라, 이미지 회복 전략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수사학에서 유명한 학자 케네스 버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의론]이라는 책을 썼는데, 재밌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정인이 어떤 불미스러운 사건이나 불쾌한 감정이 발생하여 대중의 기대에 어긋나는 상황을 죄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죄를 사하는 것, 다시 말해 인물이 명성을 회복하는 일은 사건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것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희생양을 두고, 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라는 것입니다.

 

여러모로 저 연설은 편한 선택을 버리고, 어렵지만 가장 확실한 선택이었습니다. 위험 부담이 따르고, 단어 하나만 어긋나도 자칫 대중들에게 명분 없는 선동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위험부담이 있음에도 묘수를 던졌다는 것은 놀라운 선택이었습니다. 후보의 인간적인 부분이 잘 전달이 되었고, 결국은 성공적인 설득이 되었습니다.

 

# 현재

 

사상 유례가 없는 셀프 네거티브 (네거티브 당사자가 대안없이 스스로 언급하는 것은 금기이자 자충수입니다)

 

네거티브는 위력적입니다. 그리고 깔끔한 무기입니다. 네거티브는 보통 출처는 기억하지 않고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하고 또 와전되니까 말이죠. 내 손에 피를 안 묻히고도 상대를 위기에 몰아넣는 좋은 전략인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툭하면 네거티브를 씁니다. 그러나 사실 대중들은 네거티브를 싫어합니다. 당장은 상대 정치인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유권자 모두에게 정치 자체에 대한 회의감과 불신이 생기고 맙니다.

 

문제 있는 사람도 저렇게 후보가 되는데, 정치판은 어떻겠어? 그 나물에 그 밥이지.’ 같은 생각들이 만연하게 됩니다. 단기간적으로는 투표율 저하가 일어날 것이고, 정치인 전반에 대해서 불신과 회의감만 남게 될 것입니다.

 


 

4.13 총선이 코앞이다. ·야 가릴 것 없이 각 정당들은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예비후보 공천 심사, 그리고 앞 다투어 외부인사 영입 추진 등 총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24일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하나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다음 20대 국회의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현행 54석에서 47석으로 줄인다는 골자였다. 당장에 합의한 두 정당 이외에 비례대표로 원내 진출을 희망하던 소수정당들의 눈앞에 빨간불이 켜졌다.

 

 

<ⓒ레디앙>

 

 

현재 19대 국회의 총 의원수는 300명이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이 156, 더불어민주당이 116석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의석 중 두 정당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져보면 무려 약93%나 된다. 반면에 소수 진보정당들 중 정의당만 그나마 5석을 갖고 있으며, 그 외 노동당과 녹색당은 단 한 석도 없는 원외정당 신세다. 이 중 정의당은 새누리, 더민주와 함께 원내정당 위치임에도 원내 교섭단체 자격 기준인 의원수 20명에 미달이라 교섭권이 없기 때문에 보수양당으로부터 무시 받는 처지에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복수정당제, 즉 다당제를 추구하고 있다지만, 현실적으로 양당체제와 다름없는 정당구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역주의와 인물, 계파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정치문화에서 소수정당으로서 원내에 진출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특정 정당의 과반의 의원 구성에 따른 다수당의 횡포를 미리 막고, 소수정당의 원내진출을 도모하고자 마련한 장치가 바로 비례대표제다. 현행 비례대표제는 총선에서 3% 이상의 정당지지율을 얻어야만 그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1순위인 사람에게 비례대표 의원직을 부여한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지역구에서 의원을 5명 이상 당선시켜야 지역구 의석 비율에 따라 비례대표직을 배분받게 된다.

 

그런데 현행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에게 불친절하단 점 외에 또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사표'의 가능성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수정당의 경우 지역구에서 승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실정이다. 일단 새누리와 더민주 양당의 견고한 경쟁구도 속에서 지지도가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정당과 후보 개인의 열악한 재정상황으로 막대한 선거자금을 조달하기란 더욱더 힘들다. 때문에 결국 소수정당의 입장에서 비례대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당장에 지지율도 3% 받기 힘든 마당에 정당득표율 3%를 얻으려 한다는 것 역시 큰 벽에 부딪치게 돼있다(3%가 당장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투표자 수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된다). 다시 말해 정당득표에서 어느 정당이 최종적으로 3%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할 시 던져진 그 표들은 전부 사표, 즉 '죽은 표'가 된다. 어느 한 유권자가 소신껏 소수 정당에 투표 하고 싶어도 만약 3%가 넘지 않으면 나의 표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을까란 두려움 때문에 선뜻 투표하지 못 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렇듯 소수정당은 도저히 살아남기 위한 돌파구가 없는 정치선거제도 현실에 놓여있다.

 

지난 2015년 초 국회는 선거구획정 관련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별 인구 차이에 따른 투표가치 불평등 문제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함께 거론된 제시안이 바로 비례대표제에 대한 개혁 작업이었다. 선관위는 이에 연동형비례대표제 방안을 처음 제시했고,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적 소수정당들이 주도적으로 이를 주장해오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현행 비례대표제가 단순히 정해진 비례대표 전체 의석수(현행 54)에서 득표율을 따져 비례대표를 배분했었다면, 그와 다르게 총 300석의 의석에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고스란히 비례대표직을 배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는 절대적으로 소수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기 유리한 제도로 여겨진다. 혹여나 지역구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을지라도 현행 의석수를 전제하에 정당득표율을 단 0.5%만 기록해도 1명 이상의 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최근의 전국선거였던 2014년 지방선거에서 소수정당들의 각 정당득표율을 보자면 정의당은 3.52%, 노동당은 1.25%, 녹색당은 0.84%. 현행 비례제도로 계산하면 유일하게 정의당만이 고작 1석을 얻을 수 있는 초라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때의 각 정당득표율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입해보면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은 각각 무려 10, 3, 2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겨우겨우 정당득표율 3% 이상을 얻어야 비례 의원 1명을 얻을 수 있던 것에 반하여 얼마나 놀라운 효과이자 결과인지 눈여겨보게 된다. 

 

 

 

<‘6대 선거권역중앙선거관리위원회>

또 다른 방안으로 권역별비례대표제가 거론된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주장하는 것으로서 먼저 특정 권역별로 선거구를 나눈 다음, 국회의원 정수인 300명을 기준으로 해당 권역의 인구비례에 따라 각 권역별로 지역구 의원수와 비례대표 의원수를 더해놓은 할당된 총 의원 수를 배정한다. 그리하여 특정 정당의 득표율 결과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는 제도다. 여기서 할당된 의원 수는 지역구 : 비례대표 = 2 : 1’의 비율이다. 예를 들어 서울(인구비례 약 20%)을 기준으로 인구비례를 하면 300명 의원정수 중 60명의 의원을 선출할 수 있다. 지역구 대비 비례대표 의원 비율을 2:1로 한다면 지역구 의원 총 40, 비례대표 의원 총 20명이 된다. 여기서 만약 어떤 정당이 서울 권역에서 20명이 당선되고, 40%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한다면, 원래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받을 24명의 비례 당선자 중 지역구 당선자 수(20)를 뺀 나머지 4명만 비례대표직을 배분받게 되어 총 24(지역구20+비례4)의 의원을 얻어가는 방식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면 연동형보단 미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소수 정당에게 역시나 기회를 줄 수 있고, 또 호남에서 새누리당이, 반대로 영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얻는 등 지역구도를 완화하는 데 도움 될 것이라 선관위 역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여·야의 협상 파행 소식에 정의화 국회의장까지 나서 선거구획정 및 비례대표확대 합의 촉구의 성명을 냈지만, 소수정당 야당의 득세가 실현될 것이 두려워서인지 새누리당은 그마저 무시한 채 전면 반대하고 나섰다. 자신들의 과반 의석수가 깨질 것이 우려되니 반대한다는 노골적인 언사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개혁하기 좋아하면서 정작 개혁당하기는 싫어하는 그 얄팍한 속내가 드러나보인다이렇게 정치 혁신을 뻔뻔히 거부할 수 있는 건 한국 정치사에서 이어져온 지역주의정치, 정당정치의 과두제, 제왕적 대통령제 등의 고질적인 폐단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점차 민주주의와 자유가 우리 생활과 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함에 따라 다원화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들은 점차 계층별, 분야별로 각기 추구하는 바가 다양해지며 정치권력이 자신들의 더 나은 삶을 대변해주고 책임져주길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주류 정치세력들은 국민들의 삶보다는 위선과 권모술수의 정치로써 기득권 수호와 정권 획득에만 혈안이었다. 그게 다였다. 전보다 다양하고 세분화된 가치를 충족해주고, 또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정당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만의를 배제한 정치는 정치적 무관심층을 생산했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넘어 전사회적인 신뢰와 연대를 깨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례대표 확대를 위한 각 정당과 시민사회, 국회의원의 기자회견 모습 비례대표제포럼>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정진후 정의당 원내대표, 박원석 정의당 의원 정의당 트위터>

연동형(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은 그래서 필요하다. 비례대표제도 개혁은 먼저 보수양당의 독과점 체제가 쌓아놓은 정치적 진입장벽을 허물고, 사표가 줄며 비례성이 높아지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여러 소수정당들이 원내에 진입하여 정책으로써 경쟁하는 정치, 다양한 계급과 계층,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의 환경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이로써 정당정치의 활성화가 예견되는 바, 소수정당들의 주요 가치인 '탈핵', '노동', '복지', '실질적 민주주의', '평등', '평화', '생태', '인권' 등이 개개인의 정당 참여로써 조금 더 실현 가능해질 것이다. 연동형(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의 꽉 막혔던 숨통을 트게 해주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앞서 말했듯이 새누리와 더민주, 보수양당은 비례대표제 개혁과 선거구획정의 합의 파행인 와중에 현행 비례대표 의원수를 줄이고 결국 본인들에게 유리한 지역구 의원수를 늘리는 게리맨더링을 저지르고야말았다. 여기서, 더민주는 도대체 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또, 새누리는 직접 말만 안 했을 뿐, '지역주의를 좀먹으며 기생할 것'이라 공공연한 다짐을 한 셈과 진배없다. 이 밀실야합은 거대 보수양당이 정치문화 전반을 혼탁하게 만들고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만 수호하려했다는, 유권자들의 비판을 결코 면치 못 할 것이다. 아마도 현대정치사에도 길이 남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엔 경제민주화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당정치, 선거제도의 민주화 또한 간절히 필요하다. 연동형(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개혁하는 정치혁신은 '숨통이 트이는 정당정치', '숨통이 트이는 사회'로 변화하는 움직임에 크나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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