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카피라이터가 추앙받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작가도 아니면서 문장 하나로 돈을 버는 직업, 입에 짝짝 붙는 좋은 카피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가는 그런 사람이라는 인식들이 많았습니다. 저 또한 그런 생각으로 광고홍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데이비드 오길비나 박웅현과 같은 크리에이티브한 광고인이 되겠다는 부푼 꿈으로 다가갔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카피 수업 첫 시간, 교수님이 하셨던 말이 떠오릅니다.

“시 쓰지 마라”


화려한 수식도, 강렬함도 어필할 수 있지만, 그것이 좋은 말일지언정 카피의 본질은 아닙니다. 그건 감상문이나 시(詩)에 가깝겠죠. 씁쓸하게도 카피의 본질, 존재의 이유는 팔리기 위함입니다. 한마디로 상술의 일환인 것입니다. 팔리기 위해 태어났고, 제품을 팔리기 위해 고객의 귓가에다 ‘나를 사셔야 해요’라고 처절하게 외쳐대는 것이 카피라는 것입니다. 막상 이렇게 쓰니 참 씁쓸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팔리지 않는 카피는 광고주도 소비자도 외면하고 말 테니까요. 자본주의 세상에서의 타고난 팔자겠죠.


아파트 광고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 브랜드 광고가 많았습니다. 저마다 브랜드를 고급화하기에 바쁩니다. 소비자의 욕구를 계속 건드는 것이죠. 소비자의 머리에 어느 아파트가 고급화로 인지시키기 위한 각축전이 치열했습니다. 더욱 세련된 모델, 호화로운 아파트의 모습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좀 다른 광고가 등장합니다. 



진심이 짓는다 (e편한세상, 2009)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보자’라는 식의 전개가 마음에 듭니다. 소비자에게 현실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었기 때문에 설득력이 더해집니다. ‘아파트가 유럽의 성도 아니고, 매일 모델같이 우아하게 살 수는 없잖아’라는 주장이 그럴듯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찾은 답은 진심이다”라는 카피로 쐐기를 박습니다.
대단합니다. 모두가 하는 것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판을 내세울 수 있는 결단력. 정말 배우고 싶습니다. 고급을 나타낼 수 있는 표현들은 많은데도, 광고는 이 표현들을 모두 포기했습니다. 그 대신 광고는 아파트에 살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사람들에 대한 속내를 잘 잡아내고 이를 광고로 승화시켰습니다. 문학적 수사나 화려한 표현 없이도 광고는 ‘진심’이라는 단어 하나로 의미와 컨셉, 포지션 모두를 잡아낸 것입니다.


카피를 상술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카피가 비단 광고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카피를 어떻게 팔아야 할지에 대한 전략을 말씀드린 것이죠. 문장 하나로 어느 한 사람의 마음을 건드려 반응을 만들 수 있게 만든다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카피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전하는 편지의 문장, 억지로 써야 하는 반성문, 어느 학교의 논술 답안지 속에도 카피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스치는 일상에서도 숨겨진 카피는 정말 많을 것입니다.



서촌 어느 식당 주인의 카피. 단 세 줄로 식당을 어필했습니다.

이렇게 카피에 대해서 주절주절 썼지만, 저는 아직 카피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실습 때 몇 개 써보지만, 본의 아니게 ‘문학적 감성’만 도드라져 보이게 됩니다. 너무 드러내서도 안 되고, 너무 꾸며도 안 되는 것이 카피입니다. 도저히 범인(凡人)이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교수님이 말씀하신 이 가르침을 떠올려 봅니다. 


‘카피는 그냥 바늘이 아니라, 낚싯바늘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뚫고 끝의 갈고리로 소비자의 지갑을 낚아야 한다.’


작가 반, 장사꾼 반...결국은 글로 장사하는 사람.

카피라이터는 그런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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