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초코파이에 대한 추억이 하나씩은 있을 겁니다. 군대에서 화장실에서 몰래 뜯어먹었다는 일화, 달달한 게 있어야 머리가 돌아간다고 매일 하나씩 물고 다녔던 고3 때 이야기, 헌혈하러 갔다가 초코파이만 먹고 왔다는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한국인의 일상과 매우 가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근데 초코파이 하면 바로 따라붙는 글자가 있습니다. 대부분 정(情)을 떠올리는데요. 다른 유사 브랜드도 많지만, 이미 정(情)이라는 브랜드가 우리 정서에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1979년 신문 지면 초코파이 광고

정(情)을 쓰고 있는 오리온(구_동양제과)은 1974년 한국에 처음 초코파이를 선보였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초코파이의 원조인 셈이죠. 낱개 하나에 ‘50원’으로 선보였는데요. (지하철 요금이 30원, 자장면이 100원 하던 시절이라고 하네요). 그렇게 싸지 않은 가격인데도 매출은 계속 증가했습니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과자라는 것과 동시에 폭신한 식감 덕에 시장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광고도 런칭 당시부터 80년대 후반까지 광고는 별다른 특징에 대한 어필 없이 다소 밋밋한 광고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초코파이로 순항하던 오리온은 돌연 난관에 직면합니다. 당시 제과 경쟁사였던 롯데와 해태가 차례로 ‘초코파이’라는 동일한 이름과 상품을 팔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황한 동양제과는 롯데제과에 상표등록 취소 소송을 제기하였지만, 법원은 "초코파이라는 이름은 빵과자에 마쉬멜로우를 넣고 초콜릿을 바른 과자류를 뜻하는 보통 명칭이다"라고 하여 소를 기각합니다. ‘파이 싸움’에서 허무하게 주도권을 빼앗겨버린 오리온은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초코파이에 정(情)을 넣다

오리온은 시장 분석에 들어갑니다. 모든 경쟁사가 이제 비슷한 초코파이를 내놓을 것이고, 그러면 맛의 차이로 어필하는 건 이제 무의미하겠죠. 그렇다고 초코파이의 새로운 맛을 내놓는 건 치열하게 전개되는 ‘파이 싸움’에서 물러나는 행위일 것입니다. 상품에 대해 차이를 어필하는 것보다, 오리온은 새로운 판을 짜보는 방향으로 노립니다. 초점을 ‘초코파이’가 아니라 ‘초코파이’를 사는 ‘소비자’에 맞춰보기로 합니다. 초코파이를 왜 사는지 의문을 가져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초코파이는 각 과자입니다. 12개 파이가 들어있는 각 과자라는 거죠. 봉지 과자처럼 혼자 한 번에 다 먹으려고 사기보다는 누군가와 나눠 먹는 점이 더 많을 것입니다. 오리온은 이 것에 좀 더 착안합니다. 

‘누군가와 나눠 먹는 것, 과자 이상의 그 따뜻함 오고 가는 것... 어쩌면 사람들은 정(情)을 주고받는 거야. 그래 정(情)이다. 오리온의 초코파이는 정(情)을 주고받자.’ 

초코파이가 가진 상태만으로 강력한 컨셉을 잡아냅니다. 어떤 초코파이든지 ‘다 각에 들어있는 과자’이지만 오리온의 초코파이는 사는 행위에서부터 정(情)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그렇게 오리온은 지금까지도 장수하고 있는 ‘정(情) 캠페인’을 89년부터 제작합니다.



마음을 나눠요(1990, 오리온)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는 CM은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마음을 나누다라는 키 카피로 소비자에게 다가갔습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현대에 들어가면서 점차 잊혀가는 한국인의 정(情)을 브랜드에 집어넣었습니다. 정(情)이라는 한 글자 덕분에 오리온은 경쟁사는 단숨에 제치고, 27년째 장수할 수 있는 브랜드로 굳혀지게 됩니다.


둥근 정이 떴습니다(1999, 오리온)


소비자는 이성적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광고를 볼 때마다 ‘상술’일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판단하지만, 이내 따뜻한 말 한마디에 흔들릴 수 있는 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코파이가 아무리 맛있다고 한들, 차이를 말하지 않으면 소비자에겐 다 똑같은 초코파이가 됩니다. 경쟁사와 차이가 없더라도, 광고는 소비자에게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오리온은 소비자에게 초코파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정(情)을 나눌 수 있다’라는 의미 말입니다. 이런 것을 광고용어로 ‘브랜드 메시지(Brand Message)’라고 합니다. 

브랜드 메시지, 설득의 운명

브랜드 메시지는 ‘소비자가 브랜드를 지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정보나 경험’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브랜드를 연상할 수 있게 하는 모든 것이 ‘브랜드 메시지’라는 것이죠. 간단한 예로 심플하고 혁신적인 아이폰이 히트를 치고 스티븐 잡스가 주목을 받자, 소비자들은 “애플=창의성”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은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어떤 단어나 자극이 소비자에게 주어지면 브랜드가 연상될 수 있는 확고한 연결회로를 만드는 것이 이 브랜드 메시지인 것이죠. 

이제 정(情)이라는 단어는 오리온 초코파이와 이제는 뗄 수 없는 연결회로가 된 것 같습니다. 
20여년 간 이름이나 컨셉을 유지해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만큼 브랜드를 유지해왔다는 건 그만큼 소비자에게 깊이 각인되었다는 방증이 되기도 합니다. 오히려 이런 고급진 컨셉을 바꾸는 게 이상한 일인거죠. 2011년 광고도 이러한 맥락을 잇고 있습니다. 오히려 정(情)이라는 브랜드 메시지를 지구를 잇는 매개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지구와 정을 맺다(2011, 오리온)


여기에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소재로 소비자의 감성을 건드립니다. 이 또한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정(情)을 잇는 매개로 초코파이가 등장합니다. 메시지를 우리만의 정서가 아닌 세계로 확장한 것입니다. 잔잔한 음악과 내레이션이 그 훈훈함을 배가시키는 것 같습니다. 초코파이의 해외진출은 앞서 말한 브랜드 메시지를 강화하는 데 한 몫합니다. 한마디로 정(情)은 어디서나 같다. 이런 식의 메시지로 소비자의 연상을 강화하는 것이죠.

사실 모든 광고주들은 초코파이 같은 광고를 원할 것입니다. 한번만 딱 봐도, 혹은 그 단어가 귀에 스쳐도 우리의 브랜드가 생각나게 하는 광고를 말입니다. 그러나 그건 단박에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동안 소비자를 파악하고, 시대를 관찰해야 비로소 나올 수 있는 산물 그것이 시대를 통찰하는 광고인 것입니다.


(p.s : 초코파이는 소개하고 싶은 광고들이 많았습니다. 김갑수 씨의 정타임도 인상적이었고, ‘말아톤’에서의 영화 PPL도 인상적이었는데요. 기회가 된다면 모아서 한 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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