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잘 보이려고 쩔쩔매는 사람은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좋은 사람보다는 ‘잘 보이려는 사람’으로 기억되기 쉽다. 그리고 썩 매력적이지도, 진정성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어렵다. 그저그런 사람으로 잊혀지기 마련이다.

 

친하지 않아 어색하거나 혹은 너무 소중해서 조심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조심스러웠고, 잘하려고만 했고, 그래서 서로간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 모든 조심스러움은 상대방에게 편한함을 주기 힘들다. 그래서 결국 나라는 사람이 진정 누구인가를 보여줄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은 조금씩 착한 사람으로 비춰져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착하다는 말은 진정 칭찬인 걸까. 상대방에게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맞춰주는 것이 정답인 걸까. 상대방과의 관계는 중요한 것이다.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적당한 배려는 필요하다. 그러나 먼저 나라는 사람이 존재해야 배려 또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배제된 배려는 그저 감정의 소모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지는 게 먼저다. 화가 날 땐 화를 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마음에 이미 ‘화’가 나있음에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배출하지 못하고 억누르는 것은 좋은 해결방안이 아니다. 착하다는 말을 듣기위해 자신의 감정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나 자신이 정말 화가 나지 않은 건지, 화를 낼 용기가 없는 건지 생각해 봐야한다.

 

거짓말 하는 것만이 사람을 속이는 게 아니다. 자신을 포장하는 행위도 나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나 자신의 어느 부분을 숨기는 행동이다. 숨기려고 하는 것을 가장 잘 보이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잘 포장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상대방은 그것을 부자연스럽다고 느끼게 된다.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 ‘어쩌면 호감을 살 수 있을 까’, ‘내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면 사랑받지 못하지 않을까’ 이러한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생각들이 삶을 가로막고 있다. 사실 자신을 적당히 포장하는 것은 쉽다. 나인채로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더 어렵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자신의 감정들을 남의 기분에 맞춰 적당히 흘려보내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착한 척, 괜찮은 척 시간을 보내다 보면 상대방은 ‘쟤는 이런 거 신경 안 쓰니까. 괜찮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지나친다. 자신의 마음을 곪아가고 있는데 상대방은 아무 일 없는 줄로만 까맣게 모르게 되는 것이다. 말하지 않는 자신의 감정을 굳이 집요하게 알아줄 사람은 없다. 말을 꺼내야만 자신의 감정 또한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고, 착한 게 중요한 것처럼 배우고 자란다. 그러나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와 상황에 따른 배려’ 만이 존재하면 된다. 착한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그저 착하다는 말을 들으며 남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자기 위안을 얻는 것이다. ‘착함’은 용기 없는 사람이 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속에서 화를 삭히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나의 감정이다. 표현만이 진정한 자기 위안이 된다.

 

몇 년 전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난 착한 게 아니라 나빠질 용기가 없는 거지.’ 라고. 그때 난 이렇게 생각했다. 그 ‘나쁨’ 이 화낼 때 화내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주저 없이 말하는 것이라면 ‘나쁜 너도 나는 좋다’ 였다. 서로가 마음에 조용히 화를 담아두면 조용히 멀어진다. 그 보다는 관계의 갈등이 있더라도 그것이 건강한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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