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정리를 마지막으로 한 건 약 2개월 전이다. 전공서적은 전공서적끼리, 소설책은 소설책끼리 그리고 수업관련 프린트는 프린트끼리 정리하여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다. 휴학을 하고나선 책상에 앉아있을 일이 없었고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지냈다. 특히 여름인 요샌, 잠도 내 방이 아닌 거실에서 요와 이불을 덮고 잤기 때문에 난 내 방을 정리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문득, 가방을 챙겨서 나오려는데, 책상 위가 심하게 더럽혀진 것을 발견했다. 알라딘에서 사온 책들이 나선계단처럼 빙그르르 돌아가며 쌓여있었고, 작은 책장 위에는 지폐를 쓰고 남은 잔돈과 영수증들이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었다. 침대위에는, 전날 입었던 셔츠와 바지 그리고 잘 때 입었던 반바지 두어 개가 널브러져 있었다. 언제 이렇게 엉망이 된 거지? 나는 다시 방 정리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질서를 잃는다. 책상 위의 풍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꼬인 줄처럼 점점 어지럽혀 진다. 아버지가 피는 담배에서 나온 담배연기는 처음엔 담배 끝에서 일직선으로 나오다가 이내 공기 중에 흩뿌려진다. 수업시간의 학생들은 줄맞춰진 책걸상에 얌전히 앉아있지만 시간이 흘러 쉬는 시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르르 밖으로 뛰쳐나가고 순식간에 교실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북적거린다.

 

과학에선, 이렇게 무질서한 척도를 ‘엔트로피’라고 부른다. 열역학 제 2법칙에 따르면, 모든 변화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내 방은 점점 더러워지고, 담배연기는 레이저처럼 일직선으로 나오지 않는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럼, 방을 청소하면 엔트로피가 낮아지는 것이 아니냐. 하지만 이것은 틀린 말이다. 엔트로피를 생각할 때 우리는 ‘책상’만 보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것을 생각해야한다. 방을 치울 때는, 당연히 책이나 동전에 발이 달린 것이 아니므로, 사람이나 로봇청소기가 그 일을 해야만 한다. 그 당사자가 ‘나’라면, 나는 방을 치울 때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일을 한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간에 사용하게 된다. 방 청소를 끝내면 나는 허기를 느끼고 몸에선 열이 나며 땀이 난다. 방은 깨끗해 졌지만 거기에 들어난 도구나 도구를 사용한 사용자의 엔트로피가 늘어난다. ‘방’의 상태만 놓고 보면 무질서도가 줄어들었을지는 몰라도 다른 주변의 무질서도가 늘어난다. 그리고 예외 없이, 주변의 늘어난 무질서도가 방에서 줄어든 무질서도보다 항상 크다.

 

나는 문득, 이런 무질서도의 증가가 이렇게 ‘과학적’인 측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오늘 들었다. 지하철 공익광고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광고에선 부자父子가 등장했다. 지하철이 도착 한 뒤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타려는 아버지를 일곱 살의 아들이 제지한다. ‘내리는 사람 먼저에요.’라고 말한 아이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머리를 긁적인다. 에스컬레이터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들과 손을 맞잡고 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또 한 소리를 듣는다. ‘다른 한 손은 안전띠에 올려놓아야죠.’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엔 우린 모두 안전 지킴이였다. 횡단보도가 빨간불일 땐 절대로 길을 건너지 않았으며 횡단보도를 건널 땐 꼭 한 쪽 손을 높이 들었다. 쓰레기에 관한 건 또 어떤가. 길바닥에 버리는 일 없이 휴지통에 넣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단횡단은 기본이요 길거리엔 태우다 만 담배꽁초와 과자봉지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쓰레기들이 길에 즐비하다. 사람 역시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수록 이 엔트로피-무질서도-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그 ‘질서’를 가르쳐주는 예절교육이나 도덕교육이 정말로 힘든 것 같다.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우주의 현상인데 그것을 역행하는 것을 의도하니 말이다. 애초에 ‘예절’이나 ‘도덕’같은 건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닌가. 동물들은 충실하게 자신들의 무질서도를 증가시켜나가는 데 비하여 사람들은 ‘사회’에 속해있으니 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나의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있다. 새로 산 키보드의 내구성은 점점 떨어져가고 모니터에선 계속해서 가장 혼란한 상태의 에너지인 열을 발산하고 있다. 나는 사회에 속해있지만 사람 역시 이런 과학적 법칙에 예외 없이 따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역시 ‘우주적 존재’라는 것을 느낀다. 얼마 전 방영했었던 과학다큐 ‘코스모스’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별을 이루고 있는 원자와 사람을 이루고 있는 원자는 그 구성이 같다, 라고. 그래서 우리는 별을 품고 있는 우주의 원리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 사진출처: http://oheim.egloos.com/v/3548186

 

 

시와 도의 경계에서

 

 

경기도와 서울시를 넘나드는 빨간 버스를 탈 때면 정신이 몽롱해진다. 내가 지금 시로 진입하고 있는지 도를 향해 가는지 궁금할 때쯤이면 전방을 주시한다. 안녕히 가십시오. 어서 오세요. 유난히 친절한 문구로 말미암아 다시금 목적지를 상기한다. 목적지는 정해졌고. 어디 보자. 이제 뭘 하지. 몽롱해진 나의 의식은 운전자를 향한다. 운전자는 나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특유의 선글라스를 쓴 채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간결한 최소 동작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는 그의 운전법을 언젠가 꼭 배우고 싶다.
 
상행선과 하행선의 갈림길에서 어김없이 운전기사는 반대쪽 방향에서 나타난 같은 번호의 광역버스를 보고 손을 흔든다. 저 인사법은 무엇인가. 잡념이 시작된다. 인사하는 대상은 마주보고 오는 버스일까 아니면 버스 운전사일까. 당연히 버스 운전사일 거라고 멋대로 단정한다. 그렇다면 저 운전기사를 알기 때문에 인사를 하는 걸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또는 정말 우연히도 마주보게 된 운전수의 얼굴이 자신이 오랫동안 못 본 친구여서 인사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회사의 방침이 같은 회사 버스이면 무조건 손 인사를 하도록 한 건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열려 있다.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어떤 이유로 손을 흔든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저 인사는 너무 건성이지 않은가. 그저 손을 흔들고 마는 저 인사는 간결하기 그지없다. 오랜만에 본 친구라면 경적이라도 울리고 싶은 게 운전수의 본심 아닐까. 아니지. 그랬다간 뼈도 못 추릴 정도로 대형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운전수의 프로의식을 높이 사야겠다. 그런데 왜 하필 오른손인가. 단순히 오른손잡이라서?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에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기어를 조종하기 때문에 오른손으로 인사한 건가. 아직까지 왼손으로 인사하는 기사를 본 적이 없으니 이건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을 것 같다. 근데 운전을 하다가 한 손을 놓는다는 건 조금은 위험한 짓 아닐까. 사고는 순간의 찰나에 일어나는 건데. 다시 생각해보니 운전수는 프로는 아닌 것 같다.

 

그냥 목례나 눈인사만 하면 어떨까. 그건 너무 인간적이지 못한가. 인간적인 것과 프로 같은 것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어려운 문제다. 버스 기사가 아니기에 쉬이 답을 내릴 수 없다. 그런데 잠깐 저쪽에서 오는 운전수도 선글라스를 끼지 않았을까? 그리고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순간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그래 이건 회사 탓이다. 회사가 인사하도록 규정해버린 것이다. 지금 당장 버스 운전수가 인사를 하다가 사고가 난다면 이건 운전수 탓이 아니라 회사 탓이다. 쓸 데 없는 규정 때문에 사고 가능성을 높이다니 너무하지 않은가.

 

혼자만의 상상을 즐기며 미소를 짓다가 흠칫 놀란다. 밖에는 소나기가 내리고 있다. 우산도 없는데 꼼짝없이 비 맞게 생겼네. 이제 곧 버스에서 내리려고 일어서는데 버스 기사가 친절히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한다. 나도 덩달아 “감사합니다”하고 내린다. 그런데 가만 비가 오는데 저 분은 왜 선글라스를 끼고 있을까. 세상에는 궁금한 일들이 참 많다. 버스 운전사가 선글라스 끼게 한 것도 회사의 지시사항이었을까. 뭔가 그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쉽게 단정하지 못하겠다. 일단 비를 피한 후 생각해보자.

 

사진출처: 엔하위키 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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