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선 참패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요즘 초상집 분위기를 넘어 난장판의 지경에 처해있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선 의원들이 서로 간의 패배 책임을 놓고 공방을 계속 벌이며 지켜보는 국민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지난 5월 8일 새정치연합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주승용 의원이 친노 패권주의를 운운하며 문재인 대표체제에 패배의 책임을 돌리자, 이에 정청래 의원은 ‘사퇴 공갈’ 발언으로 맞받아쳤고 격분한 주 의원은 사퇴 선언을 하며 문재인 대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릴 박차고 나갔었다. 이런 와중에도 그 자리에서 유승희 최고위원은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 파악 대신 새정치연합 한심스런 처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데 일조했다. 이를 지켜 본 시민들은 한 편의 ‘붕숭아학당’을 본 기분이라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비꼬아 표현하기도 했다.

 

ⓒ아이엠피터

 

재보선 참패 후 문재인 대표를 향한 비판의 화살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당대표로서 선거의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아무리 야권의 열세였던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패했다 할지라도 박빙의 결과가 아닌 완전히 수세로 밀리는 결과가 나왔다면 지도부의 공천과 선거전략 상의 미진함이 큰 원인이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 내에서 벌어지는 비판의 정도는 현실적인 대안과 성찰의 요구가 뒷받침된 비판이 아닌, 오로지 국민들이 체감할 수도, 실체를 파악할 수도 없는 패권주의에 입각한 무조건적인 사퇴론만 외쳐대고 있는 실정이다.

 

ⓒ연합뉴스

 

과연 이번 재보선의 참패가 문재인 대표와 친노 패권주의의 탓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친노 패권주의가 있기나 한 걸까? 각 계파들이 실체도 궁금한 친노 패권을 들먹이며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크나큰 의문이 든다. 얼마 전, 김한길 전 공동대표가 그간의 침묵을 깨고 문재인 대표에게 ‘호남 외면’과 ‘친노 패권’을 거론하며 적극적으로 사퇴를 종용했다. 그런데 김한길 전 대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번 되돌아보자. 2013년 당대표 당선, 2014년 새정치연합 합당 이후 당 강령의 개정을 강행하며 ‘민주정부 10년’과 ‘광주 5.18 민주화운동(처음에 빠졌다가 이후 반발에 다시 삽입했다)’, 그리고 ‘경제민주화’, ‘반값등록금’ 등의 주요 항목을 삭제한 바람에 민주당(현 새정치)의 노선과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었고 이에 호남 지역뿐 아니라 본래 지지자들의 전국의 민심마저 저버리며 들끓게 만들었었다. 또 새정치연합으로 급작스러운 창당(또는 합당) 이후 작년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 당시 안철수 공동대표 계파와의 지분 나눠먹기식의 무리한 전략공천으로 인한 당내 파동을 일으켰고, 무려 텃밭이었던 전남 순천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에게 승리를 빼앗기는 지경까지 이르게 한 과오가 있는 자가 바로 김한길 전 대표이다. 결국 이번 재보선을 앞두고 천정배 전 장관이 탈당하여 무소속 후보로 나와 승리하게 된 것도 안철수 전 대표 측 사람으로 분류되었던 당시 권은희 경정을 천정배 전 장관 대신에 전략공천 한 과오의 연장선 때문이라 볼 수 있다.

 

4.29 재보선 때에도 마찬가지다. 호남과 당내 동교동계를 대표하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선거에 패한 이후 나서지 않다가 문재인 대표와의 선거에서 벌인 공방의 악감정 때문인지 광주 서구을 선거에조차 뚜렷하게 지원유세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앞서 말한 김한길 전 대표, 안철수 전 대표 등 비노계 인사들은 아예 선거유세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선당후사’란 말이 있다.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하기보다 당을 먼저 생각하다”란 뜻이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결집하는 새누리당과 다르게, 새정치연합은 항상 선거 전에 계파들 간의 분열하는 모습만 국민들에게 내보이며 실망감을 안겨줘 왔다. 정당은 일반 이익집단과 달리 자신들의 이익만을 ‘표출’하는 집단이 아닌, 외부의 여러 사람들의 이익을 ‘집약’하는 집단이다. 지금처럼 국민을 대표하는 정당의 인사들이 국민들의 바람을 귀 기울여 정책으로 보답하지 않고, 개개인이 정당이란 특성을 악용하여 정치적인 생존을 꾀하는 모습만을 계속적으로 보여준다면 그 정당의 미래는 없다.
        

ⓒ뉴스핌

 

현재 당내 각 계파 인사들의 너도나도 문재인 대표 흔들기는 절대 바람직하지 못 하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묻기 이전에 본인들 스스로가 선거를 위해, 당을 위해 무엇을 해왔는지 자성하는 태도가 당위적으로도, 순서로 봐도 옳다. 내가 본 문재인 대표는 그랬다. 선거 때만 되면 계파의 입장에 관계없이, 큰 선거든 작은 선거든, 강한 후보든 약한 후보든, 그 후보가 ‘친노’든 아니든 간에 그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전국 각지의 힘을 보태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선거 지원 유세를 다녔다. 선거철만 되면 지원유세자로 빠짐없이 언론에 노출된 사람도 문재인 대표였다. ‘친노’ 계파만 위하는 수장이라고, 당내 분열의 원인이라고 힐난하는 이들의 말이 맞았다면 저런 ‘헌신과 노력’의 행보를 보였을까. 지금 위기의 새정치연합을 재정비하고, 당의 발전과 국민들의 바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헌신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면 그에 가장 알맞은 인물은 바로 문재인 대표라 생각한다. 그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현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이처럼 청렴하며, 약자를 위해 살아온 인물이 또 있을까 싶다. 문재인 대표는 이럴 때일수록 주변의 ‘흔들기’에 주저하면 안 된다. 수많은 당원과 국민들의 지지를 얻은 덕분에 당선된 한 공당의 대표의 신분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좌절 말고, 자신의 뜻을 통해 당의 개혁을 이끌어나가는 강단 있는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

 

새정치, 이제 그만 싸워라. 지지자들은 계속되는 참패보다 싸우는 모습에 실망감을 느끼고 지쳐서 아예 정치에 관심을 끊고 외면할 수도 있다. 이 같은 비극도 없을 것이며, 또 이런 비극 자체가 생기는 걸 원치 않으리라 믿는다. 새정치연합의 개개인과 각 계파들은 정치 야욕을 던져버리고 앞으로 당의 환골탈태와 혁신을 위해 자기희생을 감내하고서라도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전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지지하려는 사람은 결코 소수에 불과하다. 보기에 불쌍할 정도로 기울어져있는 정치지형과 절망 수준의 진보 정당 및 단체를 향한 이념적 탄압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마땅한 대안 정당이 없기 때문에 지지해줄 뿐이다. 이제라도 치열하게 성찰하여 국민들의 바람에 귀 기울이고 그에 걸맞은 결과물을 보여주며 민심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것이 곧 정치인이 남을 비판할 자격을 얻는 조건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자격은 어디에도 없다. 정치는 결국에 대다수 국민을 상대로 하는 마케팅이고 세일즈다. 정치인은 영업사원의 정신으로 손님이라 볼 수 있는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발 벗고 누비며 경청하고 소통하고 그들의 고통을 정책을 통해 보듬어주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런 한심스런 상황에서도 내년 총선에서 과연 새정치연합이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하는, ‘울며 겨자먹기’의 심정으로 희망고문을 당해야 한단 현실은 기대감보단 절망감을 더 느끼게 만든다.

 

졌다. 그야말로 뼈아프게 졌다. 최근 논란인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야권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권 정당들은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4곳 모두에서 모두 참패했다. 선거를 앞두고 야권은 내심 자신했을 것이다. 새누리당 소속 몇몇 중진 의원들을 비롯해 지역단체장, 심지어 현직 총리와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름까지 리스트에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갔다. 대표적인 새정치연합 텃밭이었던 ‘광주(서구을)’는 물론, 지난 27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야권 세력이 승리했고 불과 얼마 전까지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이 있던 서울 ‘관악을’에서마저 패배했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그 귀추에 여야의 이목은 더욱 집중됐었다. 바로 내년에 있을 총선의 결과를 미리 가늠해볼 ‘바로미터’ 역할의 선거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고 제1야당이라는 새정치연합, 그리고 정의당을 비롯한 군소정당들의 존폐 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http://www.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sq=29103&m_no=2&sec=7

 

새정치연합이 내세운 선거 구호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정권심판론’이었다. 선거 직전에 터진 ‘성완종 리스트’에 기대를 걸었지만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표를 행사하는 데 있어 냉담했다. 더구나 새누리당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주류언론들의 노무현 정권과 연관 짓는 물 흐리기 전략으로 기사 면을 도배하는 통에 대다수 국민들은 사건의 심각성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애초에 이번 재보궐선거는 시작 전에 정치 구도상 야권에 불리했다. 헌법재판소의 무리한 통진당 해산판결로 인해 치러지게 됐고, 이미 야권을 향해 ‘종북’이라는 근거 없는 낙인을 찍는 여론이 형성된 이상 중간층의 민심은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는 부당한 정당해산판결에 반대하여 야권이 한 마음으로 ‘前 통진당’ 후보들에게 양보하고 연대하여 다시금 후보로 나서게 해주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었다. 통진당의 해산판결은 곧 야권 전체의 위기를 몰고 올 수 있을 만큼의 무서운 사건이기 때문에 그 부당함에 정면돌파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거에 도의란 물론 중요한 요소이지만 도의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없는 노릇일 테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확신 없는 희망을 갖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안타까운 이유들을 극복하길 바라는 심정에서라도 야권이 더더욱 승리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제1야당이란, 야권의 큰형님을 자처하는 새정치연합은 이번 선거에서도 무능력한 형님의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아무리 4곳에 불과한 ‘미니’ 선거였지만 정권심판론을 외치는 것뿐만이 아닌 정책과 비전 있는 선거를 내심 기대했었다. 예전과 달리 국민들은 이제 선거를 임하는 데 있어 더 신중해지고 성숙했다. 결코 ‘못 살겠다, 갈아보자’와 같은 추상적인 구호만 외치는 선거 전략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오늘날 유권자는 이념과 정당에 상관없이 진정 자신의 삶을 더 희망적으로 바꾸어 줄 수 있는 정책을 내놓는 후보를 지지한다.

 

오마이뉴스 고정미

 

결국 이번 선거에서 정권심판론은 ‘야당심판론’이란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새정치연합의 그동안의 오만함과 무능함을 국민들이 오히려 심판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나 야권 텃밭인 호남의 결과는 그 민심의 심각성을 더욱 또렷이 보여준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오히려 총선이 아닌 재보궐선거에서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이 다행일 수 있다. 총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개선의 여지가 주어진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에서다. (물론 야권 분열이 참패의 원인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몇몇 야당 관계자와 지지자들의 입장을 보면 답답하고 화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다음 제20대 총선이 1년도 채 안 남았다. 그래서 지금 야권들에게 4.30 재보선 성적표를 들여다보면서 더욱 ‘처절히 절망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야만 자신을 더욱 되돌아보고, 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치열한 전략과 정책을 세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 총선은 야권 진영의 운명을 가를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 이듬해엔 대선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사활을 걸고 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2010년 국민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획기적인 정책들이 펼쳐지는 지방선거를 경험했고, 아직도 잊히지 않을 만큼의 강한 인상을 느꼈었다. 이제는 야권 세력들에게 그 저력이 아직 남아있음을 국민들께 다시금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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