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 낙관론에 대한 선두적인 우상파괴자(에브게니 모조로프)가 벨라루스에서의 학창시절에서부터, 불가리에서의 수학을 거쳐 중앙 유럽에서의 NGO 활동과 미국에서 『넷 딜루전』The Net Delusion의 저자로서 명성을 쌓기까지의 편력을 이야기한다. 평등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정보 인프라에 필요한 변화에 대한 급진적인 관점을 담았다.

 


[91 jan.feb 2015] 에브게니 모로조프, <데이터 센터를 사회화하자!> - ①
[91 jan.feb 2015] 에브게니 모로조프, <데이터 센터를 사회화하자!> - ②
[91 jan.feb 2015] 에브게니 모로조프, <데이터 센터를 사회화하자!> - ③
[91 jan.feb 2015] 에브게니 모로조프, <데이터 센터를 사회화하자!> - ④

 

 

 

 


당신은 구글에 대한 유럽의 저항이 단지 새로운 기업에 대한 기존 기업의 반대라며 묵살한다. 그럼에도, 이 사실은 모든 신자유주의 소들이 밤에는 똑같이 검다는 이유로 당신이 사람들에게 단념하고 좇으라고 말하는, 미국이라는 불가항력 앞에 깔린 길 위 현실에 존재하는 조약돌(걸리적거리는 정도의 장애물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듯 – 옮긴이)이 아닌가?  

 

유럽식 구글을 개시해야 한다는 지역 정치가들의 지속적인 요구, 그리고 베를린이나 브뤼셀에서부터 나오는 다른 제안들 대다수는 길을 잘못 들었거나 섣부르다. 유럽식 구글은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 오늘날 구글은 검색 기업 그 이상이다. 구글은 핸드폰 운영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곧 다른 스마트 기기, 브라우저, 이메일 시스템, 그리고 심지어는 꽤 많은 케이블과 광대역 인프라의 운영체계를 관리하게 될 것이다. 이런 활동들을 넘나드는 것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유발한다. 아무리 대학에 12억 달러를 쏟아 붇고 구글을 능가할 만한 더 나은 검색 알고리즘을 개발하라고 요구할지라도 그것을 복제할 수는 없는 법이다. 도전자들이 구글과 똑같은 기초적인 유저 데이터를 소유하게 되지 않는 한, 구글은 지배적인 위치에 남아 있을 것이다. 개선된 알고리즘으로는 충분치 않다.   

 

유럽이 타당성을 유지하려면, 데이터와 그것을 생산하는 인프라(센서, 핸드폰 등)가 갈수록 경제 활동의 핵심 영역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구글의 진입을 허용하고 몇몇 무료 서비스의 대가로 이 모든 것을 움켜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만약 유럽이 진정 심각했다면, 데이터의 판매를 엄금하는 별개의 법적 체제를 수립했어야 했고, 이후 보다 작은 기업에게 그런 식으로 보호된 데이터 위에서 (검색에서부터 이메일에 이르기 까지) 해결책을 고안하도록 해야 했다.

 

『넷 딜루전』 이후 당신의 정치적 진전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음, 원래 나는 스스로를 실용적 영역의 중심에 서있으며, 다소간 사회 민주주의적 관점을 지녔다고 간주했다. 그러한 방향은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던 종류의 질문들이 확장되어가는 과정 중에 재설정되었다. 그래서 5년 전쯤의 내가 페이스북과 구글과 같은 부류를 규제할 수 있는 더 낫고 효과적인 방식을 찾는 데 만족했었더라면, 오늘날의 나는 그러한 활동에 시간을 그다지 많이 투자하지 않는다. 대신에 나는 인프라와 그것을 통해 운영되는 모든 데이터를 누가 운영하고 소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더 이상 이러한 모든 서비스가 시장에 의해 조달되고 단지 사후에 규제되어야 한다는 걸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그것을 두서없고 유물론적인 관점 양측 에서 쓰는 것은 도전이다─의 역사에 대한 나의 계보학적 연구의 과정에서 나는 적잖은 시간을 실리콘 밸리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 지를 이해하려는 데 투자했다. 실리콘 밸리 그 자체를 어떤 더 광범위의 역사적 내러티브─생산과 소비에 있어서의 변화, 국가 형태에 있어서의 변화, 감시 능력의 변화와 미군의 요구에 대한─ 위에 위치시키지 않으면, 어떤 그럴 듯한 이야기도 전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선 맑시스트의 역사 기록학[각주:1]으로부터 배울 점들이 많다. 특히 ‘인터넷’의 기존 역사 대부분이 자본과 제국에 대한 의문은 등한시 한 채, 관념적인 엉뚱함ideational irrelevance에 빠져있을 상황에서 말이다.

 

2013년 여름 혹은 가을에 나는 점증하는 개인 데이터의 상품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모든 것은 실래콘 밸리─스마트 침대, 스마트 차, 그리고 스마트한 모든 것─에 의해 중개되는 하나 혹은 다른 방식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깨어있는 상태로 (또한, 짐작건대 자고 있을 때에도) 보내는 모든 순간들을 포착해서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데이터 포트폴리오를 관장curate하는 데이터 사업가로 초대된다. 분석적으로 봤을 때, 모든 것에 대한 데이터화는 일상의 금융화라는 광범위한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나는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멈출 수 있을지 등의 의문들에 대한 답변이 기술보다는 정치에 더 밀접하다는 것이 어떻게 명백해질지를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다. 또한 내가 아무리 대안적 정책을 계속해서 제안할지라도, 구조적인 이유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란 것도 깨달았다. 유럽이 실리콘밸리를 대체할 만한 프로젝트들을 형성하는 데 그렇게도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유럽의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단지 그로 인해 발생할 개입들─미국 기업에 대한 의존 줄이기, 경쟁력이나 기업가 정신을 기본으로 하지 않는 창업initiatives을 장려하기, 시민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인프라에 투자할 자본 모으기─이 현재 신자유주의적 유럽이 견지하는 입장과 명백히 대치되기 때문이다. 브뤼셀에서 거대 기술 기업들을 대표하는 로비스트들이 그러한 논쟁을 주도하는 상황은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다른 말로 하면, 유렵이 ‘인터넷’을 다루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이 아니라 유럽을 역사화하는historicizing Europe 편이 훨씬 낫다. 한때 나는 가장 기초적인, 심지어는 피상적인 수준─예를 들어, 유럽의 반독점 및 경쟁촉진 법antitrust and competition law의 진화, 혹은 ‘사회적 혁신’이라는 순진한 이름 하에서 제3의 길[각주:2]과 뜻을 같이 했던 다양한 아이디어의 보급을 살핌으로써─에서 몇몇 작업을 수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스스로의 사회민주주의적인 안주함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넷이 모든 것으로 퍼지는 것과, 거대하고 중앙 집중적인 데이터수집의 정치적 함의는 무엇인가?

 

기술 기업들은 모든 종류의 정치적 어젠다를 법령화 할 수 있으며, 지금 당장이라도 그 우세한 어젠다는, 추방된 이민자나, 부채를 변제하지 못할 것 같은 빈민들을 구별해낼 수 있는 중앙 집중적 데이터를 이용함으로써 신자유주의와 긴축austerity[각주:3]을 강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적절한 제도적─이로써 내가 의미하는 것은, 정치적─설립에 있어서 거대한 긍정적 잠재력을 내포한다고 믿는다. 당신이 내 활동의 일부를 관찰한 뒤 내게 그것에 대해 제안하거나 예견할 때, 만약 나의 다른 활동 또한 관찰다면 서비스가 훨씬 더 나을 것이라 가정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구글이 나의 웹 검색, 이메일, 위치를 관찰한다는 사실은 이 카테고리들 각각에 대하여, 만약 그들 중 단 하나만을 관찰했을 때에 비해 훨씬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이러한 논리를 견지하면 궁극적인 결론에 도달했을 때, 200개의 다양한 정보 서비스 공급자─규모 효과scale effect(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로 이해하면 될 듯 – 옮긴이)로 이용자들은 편리해지므로, 당신은 단 하나의 공급자를 원한다─를 원하지 않으리란 것은 명백하다. 물론, 중요한 문제는 공급자가 사적 자본주의 기업이어야 하는지, 혹은 정보국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운 데이터 공유 협약에 도달할 수 있는, 연합되어 공적으로 운영되는 서비스들의 집합이어야 하는지다.

 

대중교통은 때로 손님을 하나도 태우지 않는 기차도 운행되는 현재의 엄격한 체계에 비해, 만약 어디서 사람들을 태워야 할지에 대한 예측분석 등으로 모든 사람들의 위치에 근거하여 조정될 수 있다면 훨씬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그건 단지 비용을 절감해줄 뿐만 아니라, 환경 친화적인 인프라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나는 모든 이가 전자 팔찌(범죄와는 전혀 상관없다 – 옮긴이)착용을 의무화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록 그러한 장비들은 주(州) 차원─국제적일 필요는 없다─에서 작동되어야겠지만, 나는 그런 장비들을 감시하는 데에 반대하지 않는다. 당신이 비(非)-신자유주의적 체제가 21세기에 어떻게 작동할 수 있으며 환경과 기술 모두에 여전히 건설적일 수 있는지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런 종류의 문제를 붙들어야 한다. 그 문제를 회피할 방법은 없다. 당신은 단지 어떤 회사가 공급할 수 있는 서비스들보단, 우리의 공동체 생활을 위한 전반적인 정보 인프라에 대해 생각하고 계획을 짜야 할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괜찮아, 우리가 사기업들이 그렇게 하도록 규제할게.”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타당하지 않다. 지금 이 시점에 구글을 규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떠올리기란 매우 어렵다. 그들에게, 구글을 규제하는 것은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좋다, 구글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자.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룰 수 없다. 그 순간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붙들 힘과 자원을 갖지 못한다. 유럽에는 필수적인 대안적 비전을 발전시켜나갈 정치적 의사가 없다. 상황은 바뀔지도 모른다. 내년에 포데모스Podemos[각주:4]와 시리자Syriza[각주:5]가 선거에 승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까?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비-신자유주의적이지만 기술친화적인 세계의 유토피아적인utopian 비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당신이 성립하리라 예상하는 상대적으로 양호한benign 중앙 집중적 ‘빅 데이터’ 배치를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적 찬양을 늘어놓지 않는 정부가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민간 기업들이 이러한 것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하기 위해선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또한 내기에 응하여, “우리는 개인들의 프라이버시를 믿기 때문에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이 감시받게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데이터에 대한 모든 요청사항들을 되돌리는 강력한 법적 체계를 갖출 것이다.”라고 말하는 정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인프라를 좀먹는 너무 과도한 율법주의로 역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좀 까다롭다. 문제는 어떻게 실제적으로 시민들을 위한, 심지어는 검색 엔진의 경쟁에도 호의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강력한 기업들이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주로 알고리즘이 아니라 데이터 때문이었고, 그 힘을 억제할 유일한 방법은 그 데이터를 완전히 시장의  영역에서 빼와서 어떤 회사도 그것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데이터는 시민들에게 생길 것이고, 다양한 사회적 층위에서 소유될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를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은 일종의 라이센스비를 지불해야 하고, 정보 전체가 아니라 오로지 정보의 특성attributes에 접근 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의 저량(貯量)이 결국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기업 저장고로 끝나지 않고 성장하도록 허가할 법사회적 체제를 이해하지 않고선,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걸 이해한다면, 모든 종류의 사회적 실험이 가능해질 것이다. 충분한 데이터로 당신은 개별 소비자─지역 사회, 지역, 도시의 차원에서─라는 지평선 너머에서 계획을 시작할 수 있다. 그것만이 집중화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데이터의 법적 위치를 바꾸지 않는 한, 성공할 수 없다.

 

 

 

 

당신은 기본적인 선택이 ‘빅 데이터’ 세계의 두 형태─하나는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민간 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다른 하나는 국가와 같은 기구에 의해 운영되는─사이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 시스템이 국가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데이터의 위치를 변화시킬 법률을 통과시켜야 하며, 그것을 집핼할 국가 필요하다. 확실히 그렇지 않다면 국가의 개입은 줄이는 편이 낫다. 나는 모든 이들의 데이터를 빨아들이는, 마치 비밀경찰 같은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공유재commons에 대한 급진 좌파의 언급은 눈여겨볼만 하다. 단지 중앙 집중적으로 계획되고 운영되는 저장소를 기본으로 하지 않을 데이터 저장소, 데이터 소유권, 데이터 공유의 구조를 상세히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시민들에게 소유된다면, 굳이 국가에 의해 운영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단지 두 가지 선택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또 다른 아이디어는 시민들에게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을 넘김으로써, 하지만 기본적인 법적 위치는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구글과 페이스북의 독점을 종식시킬 것이다. 그렇게 개인들에 대한 정보는 그들이 팔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된다. 그건 재런 래니어[각주:6]의 모델이다. 하지만 만약 시민들에게 돈 찍어내는 기계로서 데이터를 건넨다면, 우리는 모두 기업가가 될 것이며, 그로 인해 일상의 금융화는 극단적인 수준까지 확대되어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각, 감정, 사실, 아이디어를 화폐화하려는 강박관념─왜냐하면 그들은 이러한 것들이 분명해진다면, 그들은 개방 시장에서 구매자를 찾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을 심어놓을 것이다. 이건 인간 사회의 풍경을 현재 신자유주의의 주관성보다 훨씬 악화시킬 것이다. 내가 보기엔 오직 세 가지 옵션이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최상의 알고리즘을 보유하고 있고 최선의 예측을 할 수 있다는 등의 근거에 따라, 그들이 모든 것을 중앙 집중화하고 모든 데이터를 모으는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시민들이 그것을 소유하고 팔 수 있게 데이터의 위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 또는 시민들은 그들의 데이터를 소유하지만, 그들 삶에 대한 보다 공동체 차원의 계획을 위해 팔진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이 내가 선호하는 옵션이다. 

 

그럼 당신은 미래는 불가피하게 지금(컴퓨팅 파워의 대규모 집중화와 하나의 독점 또는 과점에 의해 운영되는 데이터)과 같을 뿐이라는 생각을 거부하는가?


최후의 전선(戰線)은 명백하다. 그것은 이 모든 센서, 필터, 프로필과 알고리즘을 관료제와 기업으로부터 해방시켜 시민들과 지역 공동체가 이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만약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경향이 지속된다면, 상상컨대 부자들은 그들의 감각을 배양하고, 언어를 배우고, 예술을 알아가고, 공부하는 데 즐기는 반면, 빈자는 데이터에 따라 처리하는 자동화의 노예(‘노예’라는 표현은 의역임 – 옮긴이)─그 결과, 그들의 모든 시간은 일하는 데 쓰일 것이다─가 될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컴퓨팅의 미래가 아니다. 그것이 어디에 쓰일 수 있느냐가 문제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런 회사들이 그들의 권역을 일상까지 확장해서 심지어 왜 당신이 다른 모델을 원하는지 조차 명확히 할 수 없게 되는 지점에 이르리라 예견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런 기업들에 뿌리를 박고 있는 이러한 기술과 정치를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을 허용하거나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과거 60년대 머레이 북친[각주:7]이 <Post-Scarcity Anarchism>[각주:8]에 실린 그의 에세이에서 언급했던 (우리를 풍요롭게 살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기술이 맡을 거라는 유토피아적 미래를 짐작할 수도 있다.

 

- 끝 -

 

 

<원문 p. 61-66>

 

 

 

socialize the data centres!(evgeny morozov).pdf

 

* <뉴 레프트 리뷰>는 1960년 영국에서 창간되어 격월로 발간되는 잡지입니다. 이따금 한국어로 번역되어 단행본(도서출판 길)으로 출간되긴 하지만, 영어판 잡지에 기고된 글을 선별적으로만 다루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BIG HIP>에선 <뉴 레프트 리뷰>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글들을 최대한 번역해서 수록할 예정입니다.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에, 분명 오역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걸 발견하신 분이라면, 제게 훈수를 두셔도 좋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여기서 공동 번역 작업을 제안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진출처:
http://gizmodo.com/5875571/google-just-made-bing-the-best-search-engine
http://newstrack.ng/technology/33-ict/4774-facebook-rolls-out-video-calls-on-messenger-in-nigeria-norway-oman-us-others
http://setup.nl/content/evgeny-morozov-boat

 

  1. 맑시스트 혹은 사적유물론자의 역사기록학은 맑시즘에 영향을 받은 역사기록학의 한 유파다. 맑시스트 역사기록학의 주된 교리의 중심에는 역사적인 결과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경제적 제약과 사회 계급이 있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2. 좌ㆍ우의 이념을 초월하는 실용주의적 중도좌파 노선을 일컫는 말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정책 브레인으로 잘 알려진 앤서니 기든스가 논문 <좌우를 넘어서>에서 사회주의의 경직성과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이념 모델로 제시한 데서 출발한다. 앤서니 기든스는 <제3의 길>이란 저서에서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모두 반대하고 '제3의 길'로 불리는 새로운 사회발전 모델을 주창했다. (옮긴이 -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3. 경제학에서, austerity는 정부 예산 적자를 줄이는 정책을 말한다. austerity 정책은 종종 지출 삭감, 증세, 또는 둘의 혼합을 포함한다. austerity는 수익을 지출에 가깝게 맞춤으로써 신용평가기관과 채권자들에게 정부의 재정 원칙을 입증하기 위해 실시되곤 한다. austerity는 또한 정치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추동되거나, 외부 기관에 의해 시행되기도 한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4. ([poˈðemos], 영어로 “할 수 있다”로 번역되는) 포데모스는 2014년 파블로 이글레시아스Pablo Iglesias를 중심으로 창설된 스페인의 좌파 정당이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5. 두문자어로서 Syriza(때로는 SYRIZA로, 그리스어로는 ΣΥΡΙΖΑ, 발음은 [ˈsiɾiza])로 널리 알려진 극좌 연합은 그리스의 좌파 정당이며, 2004년 좌파와 극좌 정당의 연합으로 탄생하였다. 시리자는 그리스 장관을 역임하고 있는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f 당의장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 의회의 최대 다수당이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6. Jaron Lanier Lanier에 대해선, Rob Lucas, ‘Xanadu as Phalanstery’, NLR 86, March-April 2014 참고. [본문으로]
  7. 머레이 북친(1921.1.14. - 2006.7.30.)은 미국의 무정부주의자이자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libertarian socialist로서 작가, 연설가, 역사학자이자 정치이론가였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8. 는 램파트Ramparts 출판사에서 1971년에 출간된, 머레이 북친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북친은 가능한 무정부주의의 형태는 빈곤-이후의 조건 하에서가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의 개요을 서술한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 인터넷 낙관론에 대한 선두적인 우상파괴자(에브게니 모조로프)가 벨라루스에서의 학창시절에서부터, 불가리에서의 수학을 거쳐 중앙 유럽에서의 NGO 활동과 미국에서 『넷 딜루전』The Net Delusion의 저자로서 명성을 쌓기까지의 편력을 이야기한다. 평등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정보 인프라에 필요한 변화에 대한 급진적인 관점을 담았다.

 

[91 jan.feb 2015] 에브게니 모로조프, <데이터 센터를 사회화하자!> - ①
[91 jan.feb 2015] 에브게니 모로조프, <데이터 센터를 사회화하자!> - ②
[91 jan.feb 2015] 에브게니 모로조프, <데이터 센터를 사회화하자!> - ③

 

 


핵심적인 이슈는 이 영역에서 독점화의 정도 혹은 비율이 아닌가? 이 기업들은 전임자들보다 훨씬 크게, 그리고 빠르게 성장해왔다. 자동차나 항공기 산업에서 과점체제의 출현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구글은 겨우 1996년에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구글이나 페이스북같은 기업들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나 네트워크 효과의 본질적인 기능이다.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이용할수록, 그것의 가치는 더 커질 것이며, 각자 2천만 명의 유저를 거느린 채 경쟁하는 다섯 개의 소셜 네트워크가 존재한다는 건 결코 말이 안 된다. 그들 모두가 하나의 플랫폼에 있기를 바랄 것이다. 검색 엔진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구글을 사용할수록, 모든 검색은 어떤 점에선 해당서비스의 개선이자 수선tinkering이기 때문에 구글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글이 다른 도메인으로 확장하는 과정은 매우 빨랐다. 현재 그들은 온도 조절 장치, 자율주행차, 건강 서비스를 제공한다. 심지어 구글과 페이스북은 소위 제3세계 국가들에의 연결도 추진하고 있다. 그들에게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모든 이들이 온라인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데, 추가되는 3, 4십억의 눈알들이 광고비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매우 구체적인 조건 하에서under very specific terms 고객들을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게 한다.

 

빈국의 대부분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온라인에 접속할 것이기 때문에, 페이스북은 이동통신사를 파트너로 삼는다. 유저들은 그들이 접속하고 다운로드 하는 것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만,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것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진 않는다. 페이스북은 무료이고, 다른 모든 것들은 상당한 비용이 든다.─그건 모든 것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 보다는 낫기 때문에 아마 긍정적일 것이다. 결국 다른 모든 서비스들은 페이스북에 게재되어야 하고, 따라서 페이스북은 콘텐츠가 유저들에게 제공되는 병목이자 관문이 된다. 그래서 만약 아프리카 학생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싶다면,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페이스북을 통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마침내는 사람들이 배우는 것에 대한 데이터가 민간 기업에 의해 수집되고, 그들의 여생 동안 광고로 쓰이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전에는 오직 시장력에 의해 제한된 정도로만매개되었던 관계가, 페이스북이 사람들이 모든 것에 접속할 수 있는 인프라의 제공자가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갑작스레 미국의 세계적 기업에 의해 점유된다. 하지만 여기서 반대론은 단지 페이스북에 대한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반대론이다. 현재 꽤 유행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에 대한 공격은 마치 실리콘밸리가 다른 모든 것들과 철저히 분리되어있는, 스스로의 역사력historical force인 것 마냥 다룬다. 유럽에선, 실리콘 밸리를 공격하는 많은 이들은 단지 자본주의의 오랜 유형을 대변할 따름이다. 출판회사나 은행 등.

 

눈앞에 벌어진 이 모든 것들에 시대구분을 했을 때, 당신은 인터넷의 짧지만 빠른 역사에서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를 무엇으로 보며, 그것에서 도출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분석적인 변별점은 무엇인가?

 

이미 말했듯, 나는 ‘인터넷’이라는 용어의 모호성이 불만이다. 5, 60년대 이후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네트워크에서는 독립적이고 유사한 국면이 있었다. 만약 70년대 후반의 상황을 돌아본다면, 세계를 연결하는 12개의 네트워크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불 네트워크payments network, 여행예약 네트워크travel-reservation networks 등. 종국에 인터넷이 되었던 그 네트워크는 지배 시스템이 명확하지 않았을 당시에 등장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규격 위원회Standard Committees에서, 그리고 국제전기통신연합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s Union의 수준에서─엄청난 노력이 들었다. 또한 스마트폰 앱과 같은 개발이 있었는데, 구글과 같은 거대 기업이 생산하는 플랫폼에서 운영되기에 우리는 그걸 인터넷의 일부로 인식하고 있지만, 인터넷네트워킹의 역사보다는 소프트웨어의 역사 속에 위치시키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이 모든 역사들이 두서없이 ‘인터넷’이라는 용어로 집중됐던 사실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한 역사적 사건이다. 만약 1993년에서 1997년 사이의 논쟁을 공부한다면, 이 단어(인터넷)는 이러한 이슈들에 있어 가장 많이 쓰이는 용어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였다. 

 

90년대의 대부분, 당신은 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다종다양한 기대와 불안, 해석, 비전과 그것을 나타내는 수많은 경쟁적인 용어들─가상현실, 하이퍼텍스트hypertext,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 인터넷─을 보았을 것이다. 어느 시점에 매체로서 인터넷이 그 모든 것들을 앞질렀고, 다른 용어들이 사라져갈 때 인터넷은 조직하는 메타카테고리organizing metacategory가 되었다. 우리가 만약 그것을 매체가 아니라 하나의 공간이라고 생각해왔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런 질문들이 중요하다. 인터넷은 영원하거나 문제가 없는 카테고리가 아니다. 나는 어떻게 그것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주정부 지원하의 인프라, 인프라의 민영화에서) 이 모든 유사한 역사들을 포함하고, 그것들의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역사적 문맥을 빼앗고 전형적인 근원설a typical origin story을 만들어낸 분석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이해하고 싶다. 발명─빈트 서프Vint Cerf와 다르파DARPA─이 있었고 그것은 그 자체의 역사와 함께 이 매력적인 새로운 권력이 되었다.[각주:1] 근본적으로, 그것이 현재 우리의 인터넷 담론이다.  

 

하지만 최소한 인터넷에 대한 이러한 담론들의 통합에는 하나의 객관적인 기반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러한 기존의 네트워크가 각각 존재할 당시에, 기본적인 인터넷 프로토콜─TCP/IP[각주:2]─이 그들 모두가 단 하나의 통합된 구조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는 현상에 등장하지 않았나?

 

나는 TCP/IP 프로토콜의 현실성은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용어로서 인터넷의 산만한 통합은 거부한다. 내 걱정은 사람들이 이 구조물로부터 직접적으로 파생되는 일련의 사실들이 존재하며, 마치 인터넷에 게재된 서비스들이 기업들에 의해 운영되거나 정부에 의해 감시되지 않는 것처럼 가정한다는 데 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인터넷을 끝장낼 거야.”, 혹은 “인터넷은 실패할거야.”, 또는 “인터넷이 그것을 수용하지 않을 거야.” 이런 식의 말들은 거의 종교적이다. 나는 심지어 인터넷은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할 수도 있다. 이 말은 내가 매일같이 사용하는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컴퓨터에서 이용하는 것과 인터넷 이전, 그러니까 40년 전에 몇몇 도서관에서 운용되던 정보체계 사이에는 대다수의 이러한 이야기들이 암시하는 것보다 연속성이 훨씬 강하게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보다 날카로운 사회역사적 관점에서 이러한 국면을 바라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60년대에 MIT나 다른 어떤 곳의 엔지니어들은 현대의 클라우드 컴퓨팅과 매우 흡사해 보이는, 공익사업으로서 컴퓨터 사용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은 MIT 같은 장소에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를 설치하고, 사람들의 집에서 전기나 물을 쓰듯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모든 것들이 한 장소로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프로세서를 돌릴 필요가 없거나 자신만의 하드웨어를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 당시 IBM같은 거대한 컴퓨터 회사들은 대부분 큰 사업체의 중앙 컴퓨터를 공급하고 있었다. 개인 유저들, 가족들, 소비자들에게는 공급하지 않았다. 부분적으로는 70년대 반문화와 반제도적anti-institutional 풍조 덕분에, 애플 같은 기업들이 이러한 거대 회사들의 지배구조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개인이 컴퓨터를 소유하고 운용할 수 있고, 컴퓨터가 단지 관료제와 공격의 기계가 아니라, 해방의 창조적이고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확신시키는 데에는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과 <지구백과Whole Earth Ctalog>[각주:3] 같은 간행물의 지적인 조력자들─스튜어트 브랜드Stewart Brand와 이 DIY 패러다임을 고취시키고 있던 반문화 진영─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모든 것들이 어떻게 상호연결─당신은 상호연결된 무언가를 필요로 했다─되어있는지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처음에 당신에게는 그저 대학들이 있었고, 개인 컴퓨터 사용을 향한 이동이나 사고방식의 변화가 없었다면 상황은 그대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클라우드 컴퓨팅으로의 이동은 그러한 초기의 수사rhetoric─물론, 이제는 인프라의 공적인 운영과 관리의 가능성을 열 수도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공익사업에 대한 어떠한 비유도 거부하는 것을 제외한다면─를 반복하고 있다.

 

중앙 집중화된 ‘빅 데이터’라는 현재의 현상은 이 유구한 역사 위에 어떻게 위치시켜야 하겠는가?

 

‘빅 데이터’는 지난 몇 년에만 해당하는 특유의 것이 아니다. 이 데이터 수집을 추동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인터넷 논쟁은 잊고 유통시장secondary market─액시엄Axiom(Acxiom의 오기인 듯 - 옮긴이)이나 엠실론 같은 기업들에 정보를 파는 데이터 은행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들은 데이터를 누구에게 파는가? 은행, 보험 회사, 사설 탐정 등등에게다. 60년대 후반 미국에선 데이터 은행의 역할과 잠재적 남용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그것은 오늘날 빅 데이터 논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국립 데이터 은행을 운영하고 연방 기관이 수집한 모든 정보들을 모든 개개의 기관이나 대학이 접근할 수 있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로 통합시켜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의회를 포함하여 엄청난 논쟁이 일었다. 결국에 그 아이디어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 때문에 부결되었다. 하지만 많은 수의 과학자들과 기업들은 데이터가 수집되어온 이래로, 암에 대한 치료를 도울 수도 있기 때문에─정확히 현재 빅 데이터와 관련된 수사와 같은 종류다─다른 연구자들도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은 핸드폰, 스마트기기, 또는 컴퓨터를 통해 추적되고, 점차 그 양이 증폭되고 있으므로, 정보는 훨씬 더 쉽게 생산된다. 이제는 수집된 양이 상당히 많아졌으므로, (이에 대해) 새로운 명칭을 부여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순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터넷 논쟁은 모든 것을 추상적인 기술의 역사의 일환으로 이야기하는, 일종의 기억상실증과 함께 벌어지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구글의 메인 랭킹 알고리즘에 대한 이야기도 있으며, 사실상 그것은 수십 년에 걸쳐 정보 과학과 색인 작업indexing에 투자한 작업의 결과였다. 어떤 아이템이 연관되었고 그렇지 않은지─누가 무엇에 연결되어있는지, 인용 패턴 등을 살펴봄으로써─를 결정하는 데 구글이 사용하는 메커니즘은 학계 논문에 대한 색인 작업과의 관련 속에서 발전했다. (즉) 그들만의 개발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보 과학에서의 발전에 대해 알지 못한 채 그것을 절대 추측할 순 없을 것이다. 유사하게, 오늘날 ‘온라인 공개수업massive open online courses’[각주:4]을 듣는 이들은 5, 60년대에 B. F. 스키너Skinner같은 사람들이 말했던, 강사를 없앨지도 모를 ‘교수기계teaching machine’[각주:5]를 촉진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모른다. 교육을 자동화하려는 전통은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여러 스타트업이 같은 영역에 진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초기의 발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 모든 분야─교육, (‘자가측정quantified self’[각주:6]와 함께) 의료, 그리고 모든 나머지들─에 퍼지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은 실리콘 밸리에서 시작되고, 그 외의 다른 권력이나 대의명분이라고는 없는, 멍청한 역사로 끝나버릴 위험에 처해있다.

 

당신은 지난 10여 년간 기술적이고 조직적인 집중화로의 이러한 추동이 얼마나 불가피하다고 보는가?

 

경계를 넘어서 집중화로 향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또한 특정 속도를 도메인과 레이어 각각에 부여하는 산업 역학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데이터에 발생하는 것은 핸드폰 제조에서 발생하는 것과 구분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구글과 페이스북은 그들이 지식과, 지식이 통과하는 출구를 만들어내는 센서를 조절하지 못한다면, 세계의 지식을 조직하는 사업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속담이 그러하듯 ‘무더기’를 조작하기 위해 그들이 모든 층위─운영체계, 데이터, 색인 작업─에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현재의 역경향을 인식할 수 있을까?

 

만약 구글의 목표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조직하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에 대한 근원적인 정보 인프라를 운영하는 것이라면, 구글이 그들 모두를 붕괴할 좋은 위치에 있게 될 거란 사실을 더 많은 산업과 기업이 깨닫게 되면 긴장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현재 국영 기업들─종종 당연하게도 구글이 자동차 산업을 인수할 것을 두려워하는 독일 자본─에 의해 유럽 정책 입안자들은 구글을 와해시키라는 압력을 받는다. 독일의 거대한 빅 미디어 기업들에도 구글을 염려할 까닭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산업 내 경쟁은 속도가 늦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시민들에게 그렇게 유리하리라 생각하진 않는데, 구글과 페이스북은 자연독점으로 보이는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약화시키거나 와해시키려는 유럽의 미미한 압박에는 경제, 정치, 혹은 생태적으로 어떠한 대안적 비전도 없다.

 

 

<원문 p. 56-60>

 

Isn’t the key issue the rate and degree of monopolization in this area? These companies have grown much bigger and faster than their predecessors. It took a lot longer for oligopolies to emerge in the automobile or aircraft industries. Google only started in 1996.

 

That’s a function of the nature of the service and the network effects in companies like Google and Facebook. The more people are on Facebook, the more valuable it becomes, and it doesn’t really make sense to have five competing social networks with twenty million people on each; you want all of them on one platform. It’s the same for search engines: the more people are using Google, the better it becomes, because every search is in some sense a tinkering and improvement in the service. So Google’s expansion into other domains has been very fast. Right now they do thermostats, self-driving cars, health. Google and Facebook are even trying to bring connectivity to so-called Third World countries. For them it’s important to get everyone in Africa and Asia online, because that’s the next few billion eyeballs to be converted into advertising money. But they get their customers online under very specific terms.


Facebook takes mobile operators as partners, since in poor countries most people will get online through their mobile phones. Users pay for what they access and download, but don’t have to pay to access Facebook. Facebook comes free, and everything else is at a price—so that’s supposedly positive, because it’s better than paying for everything. The result is that all other services have to establish a presence on Facebook, which thus becomes the bottleneck and gateway through which content is fed to users. So if you wanted to provide education to students in Africa, you’d be better off doing it through Facebook, because they wouldn’t have to pay for it. You would then end up with a situation where data about what people learn is collected by a private company and used for advertising for the rest of their lives. A relationship previously mediated only in a limited sense by market forces is suddenly captured by a global American corporation, for the sole reason that Facebook became the provider of infrastructure through which people access everything else. But the case to be made here is not just against Facebook; it’s a case against neoliberalism. A lot of the Silicon Valley-bashing that is currently so popular treats the Valley as if it was its own historical force, completely unconnected from everything else. In Europe, many of those attacking Silicon Valley just represent older kinds of capitalism: publishing firms, banks etc.

 

In a periodization of how all this came about, what do you see as the critical turning points in the short but fast history of the Internet, and what are the most important analytical distinctions to be made within it?


I’m dissatisfied, as I’ve said, with the ambiguity of the term ‘the Internet’. From the fifties or sixties onwards, there were separate, parallel developments in software, in hardware, in networks. If you look back at the situation in the late seventies, you find a dozen networks connecting the globe: the payments network, the travel-reservation networks and so on. That the network which eventually became the Internet would emerge as the dominant system was not obvious. It took a lot of effort—in standards committees, and at the level of organizations like the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s Union—to make that happen. There were also developments such as smartphone apps, which we now perceive as part of the Internet because they run on platforms produced by giant companies like Google, but which make more sense within the history of software than that of internetworking. The fact that all of those histories discursively converged on the term ‘Internet’ is itself a significant historical development. If you study the debate between 1993 and 1997, this wasn’t the most popular term to talk about these issues; that was ‘cyberspace’.


For most of the nineties, you still had a multiplicity of different visions, interpretations, anxieties and longings for this new world, and a lot of competing terms for it—virtual reality, hypertext, World Wide Web, Internet. At some point, the Internet as a medium overtook all of them and became the organizing metacategory, while the others dropped away. What would have changed if we had continued thinking about it as a space rather than as a medium? Questions like these are important. The Net isn’t a timeless, unproblematic category. I want to understand how it became an object of analysis that incorporates all these parallel histories: in hardware, software, state-supported infrastructures, privatization of infrastructures, and strips them of their political, economic and historical contexts to generate a typical origin story: there was an invention—Vint Cerf and darpa—and it became this fascinating new force with a life of its own.6 Essentially, that’s our Internet discourse at present.

 

But isn’t there at least one objective basis for the unity of these discourses about the Internet: that, while all these previous networks existed separately, once the basic Internet protocol—tcp/ip—came onto the scene they all tended to converge into a single integrated structure?


I’m happy to accept the reality of the tcp/ip protocol, while also rejecting the discursive unity of the Internet as a term. My concern is that people assume there is a set of facts which derives directly from this architecture, as if the services that are built on it are not operated by companies or monitored by states. They start saying things like: it will break the Internet, or the Internet will fail, or the Internet will not accept it. This kind of talk is almost religious. I might even say that the Internet does not exist. This is not to deny that there is something which I use every day; but there’s much more continuity than many of these narratives suggest between what I use on my computer and an information system that ran in some library forty years ago, before the Internet.


So how might we begin looking at these developments in a sharper socio-historical perspective?


In the sixties, engineers at mit and elsewhere had a vision of computing as a public utility that looked very much like contemporary cloud computing. Their idea was that you would have one giant computer in a place like mit, and then in people’s houses you would get computing
just as you do electricity or water. You wouldn’t need to run your own processor or have your own hardware, since it would all be centralized
in one place. At that time the big computer companies like ibm were mostly supplying mainframe computing for big business—they didn’t cater to personal users, families, consumers. Thanks in part to the anti-institutional climate and counterculture of the seventies, companies like Apple challenged the dominance of those big players. It took a lot of effort by people like Steve Jobs, and their intellectual enablers in publications like the Whole Earth Catalog—Stewart Brand and the countercultural wing that was promoting this do-it-yourself paradigm—to convince consumers that computers could be owned and operated by individuals; that they were creative new tools of liberation, and not just machines of aggression and bureaucracy.


Unless you understand this, it’s hard to see how everything got interconnected—you needed something to interconnect. At the beginning you just had the universities, and it would have stayed that way if there had been no change of mentality, no shift towards personal computing. Today the move to cloud computing is replicating some of that early rhetoric—except, of course, that companies now reject any analogy with utilities, since that might open up the possibility of a publicly run, publicly controlled infrastructure.


How should the current phenomenon of centralized ‘big data’ be located in this broader history?


‘Big data’ isn’t something unique to the last few years. To understand what’s driving this data collection, you need to forget Internet debates and start focusing on the data banks selling information on the secondary market—companies like Axiom and Epsilon. Who are they selling their data to? To banks, insurance companies, private investigators and so on. There was a debate in the late sixties about the role and potential abuse of data banks in America, which was not all that different from the big data debates today. At stake was whether the us should run national data banks and aggregate all the information collected by federal agencies into one giant database accessible to every single agency and every single university. It was a huge debate, including on a Congressional level. In the end the idea was killed because of privacy concerns. But a lot of scientists and companies made a case that since the data had been collected, it ought to be made accessible to other researchers, because it might help us to cure cancer—exactly the sort of rhetoric you hear now with Big Data. Nowadays the information can be produced far more easily because everything we do is tracked by phone, smart gadget, or computer, and this amplifies its volume. So much is now gathered that you can argue it deserves a new name. But these Internet debates tend to operate with a kind of amnesia, narrating everything in a kind of abstracted history of technology.

 

There’s a story to be told even about Google’s main ranking algorithm, which actually comes out of decades of work on information science and indexing. The mechanism that Google uses to determine which items are relevant or not—by looking at who links to what, citation patterns etc—was developed in relation to the indexing of academic literature; it’s not their own invention. But you would never guess that without knowing something about developments in information science. Likewise, people looking at these ‘massive open online courses’ today don’t generally know that in the fifties and sixties people like B. F. Skinner were promoting what he called ‘teaching machines’ that would dispense with an instructor. There’s a continuous tradition of trying to automate education. The fact that a bunch of start-ups have now moved into the area does not erase those earlier developments. Now that ‘the Internet’ is spreading into everything—education, healthcare (with the ‘quantified self’), and all the rest—we’re in danger of ending up with a kind of idiot history, in which everything starts in Silicon Valley, and there are no other forces or causes.


How inevitable do you regard this drive towards technical and organizational centralization over the last decade or so?


There are tendencies towards centralization across the board, though there are also industry dynamics which lend a specific tempo to each domain and layer. So what is happening with data should be distinguished from what is happening in phone manufacturing. But Google and Facebook have figured out that they cannot be in the business of organizing the world’s knowledge if they do not also control the sensors
that generate that knowledge and the gateways through which it passes. Which means that they have to be present at all levels—operating systems, data, indexing—to establish control over the entire proverbial ‘stack’.


Can we perceive any counter-tendencies at present?


Tension may arise when more and more industries and companies realize that, if Google’s aim is not only to organize all of the world’s knowledge, but also to run the underlying informational infrastructure of our everyday life, it will be in a good position to disrupt all of them. That may generate resistance. At present there is pressure on European policy-makers to break up Google, driven by national firms—often German capital, which, understandably, is fearful that Google could take over the auto industry. The big media empires in Germany also have reason to be worried by Google. So this kind of intra-industry fight might slow things down a little. But I don’t think it will benefit citizens all that much, since Google and Facebook are based on what seem to be natural monopolies. Feeble calls in Europe to weaken or break them up lack any alternative vision, economically, politically, or ecologically.

 

 

 

 

socialize the data centres!(evgeny morozov).pdf

 

* <뉴 레프트 리뷰>는 1960년 영국에서 창간되어 격월로 발간되는 잡지입니다. 이따금 한국어로 번역되어 단행본(도서출판 길)으로 출간되긴 하지만, 영어판 잡지에 기고된 글을 선별적으로만 다루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BIG HIP>에선 <뉴 레프트 리뷰>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글들을 최대한 번역해서 수록할 예정입니다.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에, 분명 오역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걸 발견하신 분이라면, 제게 훈수를 두셔도 좋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여기서 공동 번역 작업을 제안하고 있는 셈입니다.

 

* 사진출처:
http://www.ted.com/talks/evgeny_morozov_is_the_internet_what_orwell_feared?language=ko#t-20261

 


  1. DARPA: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펜타곤의 한 기관. 빈트 서프는 그곳의 핵심 인물이다. [본문으로]
  2. TCP/IP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핵심 프로토콜이다. 인터넷에서 전송되는 정보나 파일들이 일정한 크기의 패킷들로 나뉘어 네트워크상 수많은 노드들의 조합으로 생성되는 경로들을 거쳐 분산적으로 전송되고, 수신지에 도착한 패킷들이 원래의 정보나 파일로 재조립되도록 하는 게 바로 TCP/IP의 기능이다.(옮긴이 –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3. <지구백과 Whole Earth Ctalog(WEC)>는 미국의 반문화 잡지였고 스튜어트 브랜드의 주도 하에 1968년에서 1972년 사이에, 그리고 이후 1998년까지는 간헐적으로 발간되었다. 잡지는 에세이와 기사를 특징으로 했지만, 주로 제품 리뷰에 집중했다. 편집 방향은 자급자족, 생태학, 대안교육, DIY, 전체론holism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도구에 대한 접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WEC는 광범위한 제품들(옷, 책, 도구, 기계, 종자 등)을 나열하고 리뷰했지만, 그 어떤 제품도 직접적으로 판매하진 않았다. 대신에, 판매자의 연락처를 아이템과 리뷰 옆에 기재해놓았다. 비록 정기적으로 간행되진 않았으나, 다양한 형식으로 수많은 판본과 최신판이 있었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4. 웹 기반의 온라인 공개 강좌. 정규 교육의 보조 수단에 머물지 않고 수업과 시험 등의 교육 체계를 갖춘 대학 강좌를 가리킨다. 여러 사람에게 강좌를 널리(massive) 공개(open)하기 때문에 기존 대학 교육 체계를 크게 바꿀 태세다. 미국 유명 대학이 앞서 시작했으며, 일본의 주요 대학도 2014년부터 인터넷으로 강좌를 제공했다. 한국에서도 이른바 케이무크(K(Korea)MOOC)가 추진된다.(옮긴이 –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5. 행동주의적 학습원리를 교육의 실천 분야에 응용한 것으로 학습자가 개별적으로 자기속도대로 학습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도록 고안된 자동학습장치이다.(옮긴이 –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6. 자가측정이란 개인 일상에 있어서 투입(음식 소비, 주변 공기의 질), 상태(기분, 각성, 혈류 산소 수준), 그리고 행위(정신적이고 육체적인)의 측면에 대한 데이터의 습득과 기술을 통합시키는 움직임이다. (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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