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이 코앞이다. ·야 가릴 것 없이 각 정당들은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예비후보 공천 심사, 그리고 앞 다투어 외부인사 영입 추진 등 총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24일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하나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다음 20대 국회의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현행 54석에서 47석으로 줄인다는 골자였다. 당장에 합의한 두 정당 이외에 비례대표로 원내 진출을 희망하던 소수정당들의 눈앞에 빨간불이 켜졌다.

 

 

<ⓒ레디앙>

 

 

현재 19대 국회의 총 의원수는 300명이다. 이 가운데 새누리당이 156, 더불어민주당이 116석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의석 중 두 정당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져보면 무려 약93%나 된다. 반면에 소수 진보정당들 중 정의당만 그나마 5석을 갖고 있으며, 그 외 노동당과 녹색당은 단 한 석도 없는 원외정당 신세다. 이 중 정의당은 새누리, 더민주와 함께 원내정당 위치임에도 원내 교섭단체 자격 기준인 의원수 20명에 미달이라 교섭권이 없기 때문에 보수양당으로부터 무시 받는 처지에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복수정당제, 즉 다당제를 추구하고 있다지만, 현실적으로 양당체제와 다름없는 정당구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역주의와 인물, 계파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정치문화에서 소수정당으로서 원내에 진출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특정 정당의 과반의 의원 구성에 따른 다수당의 횡포를 미리 막고, 소수정당의 원내진출을 도모하고자 마련한 장치가 바로 비례대표제다. 현행 비례대표제는 총선에서 3% 이상의 정당지지율을 얻어야만 그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1순위인 사람에게 비례대표 의원직을 부여한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지역구에서 의원을 5명 이상 당선시켜야 지역구 의석 비율에 따라 비례대표직을 배분받게 된다.

 

그런데 현행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에게 불친절하단 점 외에 또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사표'의 가능성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수정당의 경우 지역구에서 승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실정이다. 일단 새누리와 더민주 양당의 견고한 경쟁구도 속에서 지지도가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정당과 후보 개인의 열악한 재정상황으로 막대한 선거자금을 조달하기란 더욱더 힘들다. 때문에 결국 소수정당의 입장에서 비례대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당장에 지지율도 3% 받기 힘든 마당에 정당득표율 3%를 얻으려 한다는 것 역시 큰 벽에 부딪치게 돼있다(3%가 당장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투표자 수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된다). 다시 말해 정당득표에서 어느 정당이 최종적으로 3%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할 시 던져진 그 표들은 전부 사표, 즉 '죽은 표'가 된다. 어느 한 유권자가 소신껏 소수 정당에 투표 하고 싶어도 만약 3%가 넘지 않으면 나의 표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을까란 두려움 때문에 선뜻 투표하지 못 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렇듯 소수정당은 도저히 살아남기 위한 돌파구가 없는 정치선거제도 현실에 놓여있다.

 

지난 2015년 초 국회는 선거구획정 관련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별 인구 차이에 따른 투표가치 불평등 문제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함께 거론된 제시안이 바로 비례대표제에 대한 개혁 작업이었다. 선관위는 이에 연동형비례대표제 방안을 처음 제시했고,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적 소수정당들이 주도적으로 이를 주장해오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현행 비례대표제가 단순히 정해진 비례대표 전체 의석수(현행 54)에서 득표율을 따져 비례대표를 배분했었다면, 그와 다르게 총 300석의 의석에서 정당득표율에 따라 고스란히 비례대표직을 배분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는 절대적으로 소수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기 유리한 제도로 여겨진다. 혹여나 지역구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을지라도 현행 의석수를 전제하에 정당득표율을 단 0.5%만 기록해도 1명 이상의 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최근의 전국선거였던 2014년 지방선거에서 소수정당들의 각 정당득표율을 보자면 정의당은 3.52%, 노동당은 1.25%, 녹색당은 0.84%. 현행 비례제도로 계산하면 유일하게 정의당만이 고작 1석을 얻을 수 있는 초라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때의 각 정당득표율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입해보면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은 각각 무려 10, 3, 2명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겨우겨우 정당득표율 3% 이상을 얻어야 비례 의원 1명을 얻을 수 있던 것에 반하여 얼마나 놀라운 효과이자 결과인지 눈여겨보게 된다. 

 

 

 

<‘6대 선거권역중앙선거관리위원회>

또 다른 방안으로 권역별비례대표제가 거론된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주장하는 것으로서 먼저 특정 권역별로 선거구를 나눈 다음, 국회의원 정수인 300명을 기준으로 해당 권역의 인구비례에 따라 각 권역별로 지역구 의원수와 비례대표 의원수를 더해놓은 할당된 총 의원 수를 배정한다. 그리하여 특정 정당의 득표율 결과에 따라 의석을 배분받는 제도다. 여기서 할당된 의원 수는 지역구 : 비례대표 = 2 : 1’의 비율이다. 예를 들어 서울(인구비례 약 20%)을 기준으로 인구비례를 하면 300명 의원정수 중 60명의 의원을 선출할 수 있다. 지역구 대비 비례대표 의원 비율을 2:1로 한다면 지역구 의원 총 40, 비례대표 의원 총 20명이 된다. 여기서 만약 어떤 정당이 서울 권역에서 20명이 당선되고, 40%의 정당득표율을 기록한다면, 원래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받을 24명의 비례 당선자 중 지역구 당선자 수(20)를 뺀 나머지 4명만 비례대표직을 배분받게 되어 총 24(지역구20+비례4)의 의원을 얻어가는 방식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면 연동형보단 미비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소수 정당에게 역시나 기회를 줄 수 있고, 또 호남에서 새누리당이, 반대로 영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얻는 등 지역구도를 완화하는 데 도움 될 것이라 선관위 역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여·야의 협상 파행 소식에 정의화 국회의장까지 나서 선거구획정 및 비례대표확대 합의 촉구의 성명을 냈지만, 소수정당 야당의 득세가 실현될 것이 두려워서인지 새누리당은 그마저 무시한 채 전면 반대하고 나섰다. 자신들의 과반 의석수가 깨질 것이 우려되니 반대한다는 노골적인 언사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개혁하기 좋아하면서 정작 개혁당하기는 싫어하는 그 얄팍한 속내가 드러나보인다이렇게 정치 혁신을 뻔뻔히 거부할 수 있는 건 한국 정치사에서 이어져온 지역주의정치, 정당정치의 과두제, 제왕적 대통령제 등의 고질적인 폐단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점차 민주주의와 자유가 우리 생활과 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함에 따라 다원화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들은 점차 계층별, 분야별로 각기 추구하는 바가 다양해지며 정치권력이 자신들의 더 나은 삶을 대변해주고 책임져주길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주류 정치세력들은 국민들의 삶보다는 위선과 권모술수의 정치로써 기득권 수호와 정권 획득에만 혈안이었다. 그게 다였다. 전보다 다양하고 세분화된 가치를 충족해주고, 또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정당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만의를 배제한 정치는 정치적 무관심층을 생산했고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넘어 전사회적인 신뢰와 연대를 깨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례대표 확대를 위한 각 정당과 시민사회, 국회의원의 기자회견 모습 비례대표제포럼>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정진후 정의당 원내대표, 박원석 정의당 의원 정의당 트위터>

연동형(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은 그래서 필요하다. 비례대표제도 개혁은 먼저 보수양당의 독과점 체제가 쌓아놓은 정치적 진입장벽을 허물고, 사표가 줄며 비례성이 높아지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여러 소수정당들이 원내에 진입하여 정책으로써 경쟁하는 정치, 다양한 계급과 계층, 개인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의 환경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이로써 정당정치의 활성화가 예견되는 바, 소수정당들의 주요 가치인 '탈핵', '노동', '복지', '실질적 민주주의', '평등', '평화', '생태', '인권' 등이 개개인의 정당 참여로써 조금 더 실현 가능해질 것이다. 연동형(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의 꽉 막혔던 숨통을 트게 해주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앞서 말했듯이 새누리와 더민주, 보수양당은 비례대표제 개혁과 선거구획정의 합의 파행인 와중에 현행 비례대표 의원수를 줄이고 결국 본인들에게 유리한 지역구 의원수를 늘리는 게리맨더링을 저지르고야말았다. 여기서, 더민주는 도대체 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주장했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또, 새누리는 직접 말만 안 했을 뿐, '지역주의를 좀먹으며 기생할 것'이라 공공연한 다짐을 한 셈과 진배없다. 이 밀실야합은 거대 보수양당이 정치문화 전반을 혼탁하게 만들고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만 수호하려했다는, 유권자들의 비판을 결코 면치 못 할 것이다. 아마도 현대정치사에도 길이 남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엔 경제민주화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당정치, 선거제도의 민주화 또한 간절히 필요하다. 연동형(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개혁하는 정치혁신은 '숨통이 트이는 정당정치', '숨통이 트이는 사회'로 변화하는 움직임에 크나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출퇴근 시간에 기계적으로 몸을 지하철에 싣는 삶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의 내 모습과 다르게, 내가 잠시 살아봤던 인도는 생기가 넘치고 ‘살아 있는 곳’ 이었다. 물론 단편적인 모습이라며 인도의 사회문제를 말할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에너지가 있고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도의 모습으로 계속 글을 써가도록 하겠다. 또한 기억해야 할 점이 내가 지냈던 곳이 소수민족이 많고 다양한 문화와 종교, 인종이 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시길.


‘진정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 있는 인도
한국에서 나는 주체적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살고 싶었지만, 경쟁 속에 눈치를 살피며 어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이끌려 살았다.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보다는 안정적이고 사회가 원하는 것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다수의 방향에 따라야 하는지에 의문도 생기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가 잘 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인도에서 나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볼 수 있었다. 현재 자신의 감정과 일에 충실하고, 주변을 살피고 함께 살 수 있는 여유도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보통 한국 사람들이 인도 사람들를 보고 게으르다고 말한다.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만약 릭샤 아저씨가 우리를 본다면 어떨까? 아마 아저씨는 우리의 방식이 더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길가에서 낮잠도 자고, 품격 있는 짜이(인도식 밀크티)를 마시며, 가족들을 위해 일할 땐 일하는 릭샤 아저씨들의 삶은 만족을 알고, 그들만의 행복을 향유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기엔 그들의 삶이 열악할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은 우리보다 풍요롭다고 생각한다. 릭샤 아저씨들처럼 내가 본 인도분들은 자기 페이스를 절대 잃지 않으며, 어떤 틀에 자신을 가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방식대로 해 나간다. 누군가의 시선과 생각에 의식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 충실히 사는 것 같았다. 자신이 궁금하면 물어보고, 흥정하고 싶으면 하고, 신기하면 쳐다보고, 무엇이든 때 묻지 않고 아이들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인도 분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누가 그들 삶의 주인인지'는 달랐다.
또한 타인을 대할 때 자신이 소중해서 타인의 삶이나 성향을 자신의 틀 안에 넣어서 이해하려 합리화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남일에 무심하기 보다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고 관심 가져주고 함께 고민한다. 그 분들은 나를 소수민족인 앙가미족 아이로 생각했음에도 다들 모여서 고민해주었던 기억들이 있다. 내가 무슬림마을에서 사원을 찾지 못해 헤맬때 내가 못 알아듣는 데도 가이드해줬던 일리아할아버지와 마을 사람들도 그랬고. 번잡한 버스터미널에서 내 엉덩이를 만지고 성희롱했던 아저씨한테 나 혼자 위축되어서 한국어욕을 하고 있는데 다들 어디선가 나타나서 욕해주고 혼내줬던 것도 그랬다. 모든 것에 효율적이고 경쟁적인 사람들에겐 시간낭비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분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아낄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어느 사회든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가 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그분들의 삶 태도는 내 생각과 행동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해지고 따뜻해졌고, 어떤 것에 편견과 잣대가 아니라 받아들일 수 태도를 배웠다. 한국에서는 오지랖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할지를 느꼈다. 인도생활은 나에게 더 없이 큰 응원 같았다. ‘너 방식대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달라도 함께 사는 곳’이 살아있는 인도
인도는 다양함 그 자체 였다. 나처럼 생긴 몽골리안부터 우리가 흔히 인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인종까지, 지역별로 많은 부족과 문화들이 공존했다. 그들은 여러 신들이 공존하고 다른 신들을 믿으며 살아간다. 힌두교, 무슬림, 기독교, 시크교 등등 종교가 달라도 함께 다른 종교의 축제와 휴일을 즐겁게 보낸다. 우리는 절대 무슬림과 기독교는 함께할 수 없으며 이도교라고 배척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서는 종교를 여러 개 가지고 있을 수 있고 기독교이면서 힌두교인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인도인들은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에 비슷한 점도 다른 점도 느끼지만, '함께 살아갈 것이고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내가 본 인도는 서로 달라도 융합되고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인도에서의 경험은 나도 모르게 ‘다르다’는 말을 두려워하고, ‘다름’을 머리 속으론 인정하지만 불편해 하고 있었던 나의 모습들이 되돌아보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선 선 긋기와 다름을 죽이려 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인도는 너무나도 다른 차원에서 그들의 삶을 이루고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내가 미타암톨 마을(망고나무아래라는 뜻의 시골마을)을 가서 단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 마을에는 다양한 소수민족마을과 네팔등 외지에서 시집을 온 아주머니들이 살고 있다. 아주머니들은 항상 모이면 아쌈주의 유명한 비훗Bihut춤을 추고, 한 두시간씩 추고 나서야 마을일을 하던 한다. 비훗을 함께 출때 보면 다양한 소수민족출신의 사람들이 자신의 동네방식을 선보이면서도 함께 모인 사람들끼리 좋아하는 네팔노래를 부르며 박수로 가락을 만들어 한다. 내가 만났던 아주머니들은 서로 너무나도 다른 지역 출신임에도 문화, 언어가 다 달라도 어울리며 지내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발전시키고 그들만의 문화생활을 만들어 갔다. 나에겐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들의 포용력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 덕분에 외지인인 나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살아있다. 바로 이 곳에.
나는 그 곳에서 느꼈다. 내가 살아있고, 그들도 살아있고, 우리 모두가 지금 지구에 살아있다는 걸. 옹졸하고 편협했던 나의 마음과 삶의 태도가 나 자신을 죽이고, 주변을 보지 못하게 해서 외부로 공격적으로 반응하고 대한다는 것을 느꼈다. 인도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나는 내가 잊고 있던 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다시 느끼고 배웠었다. 다양성이 서로 공존할 수 있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회를 봐왔고, 잠시 그 곳에서 함께 살아봤다.
지금 나는 이 곳에 살고 있는 데, 아직도 이 곳은 다르고 다양한 것에 대한 혐오의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고 뉴스에선 종교를 비롯한 다름에 의한 혐오와 이로 인한 폭력들을 다룬다. 점점 사람들도 나도 뭐가 옳고 그른지를 잘 모르고 몽롱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듯하다. 회색빛이 짙게 투사되는 지금의 분위기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생기가 넘칠 수 있을까?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인도 아쌈에서 얻었던 경험처럼 모두가 ‘내가 살아있다’는 자극을 계속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의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바짝 긴장해서 올라온 어깨부터 풀고 주기적으로 내면의 평화를 찾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기 기대한다. 무엇보다 가시로 둘둘 감은 말과 행동이 아닌, 나와 다른 것을 포용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우리는 이곳에서 함께 살아있다’는 의미를 잊지 않길 바란다. 나는 인도에서 함께 살아있음을 느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금 이곳에서도 함께 살아있음을 주변에서 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살아있다. 바로 이곳에.



당신은 지금 살아있나요? 아니면 오늘 하루라도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 있나요?

요즘 나는 살아있는 햄토리 같은 삶이다. 햄스터가 우리 안에서 주는 먹이를 잘 먹고 쳇바퀴를 수십번 돌고 피곤해서 자고, 어제와 동일한 패턴으로 또 먹고 돌고 잔다. 분명 나는 살아있기에 지금 움직이고 숨을 쉬고 있는 거지만, 내 정신은 살아있다는 느낌보다는 꾸역꾸역 하루를 지낸다는 느낌이 들까. 내 정신이 맑고 말랑했던 때, ‘내가 살아있구나’라고 마음 깊숙한 어느 곳에서 마구 올라오는 감정을 느꼈던 그때의 글을 펴보려고 한다.

물었다. ‘나는 살아있나?...’
피로사회라고 명명되는 한국사회에서 내가 모르는 사이 나는 학점, 취업, 스펙 모든 것을 향해 사람들과 경쟁하고 하루하루 그저 살아가고 있었다. 경쟁 속에서 계속 마주하게 된 좌절과 포기, 걱정으로 일상 속에 지쳐가고 있었다. 점점 ‘내가 잘 가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조급해지고 사람들로부터 고립되고 있었다. 그땐, 내 눈 앞에 아무것도 안보이고, 미래가 암담해 보였다.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혼자 살기 바빴던 나는, 누군가를 살펴보고 함께 할 만한 여유 또한 없었다. 이렇게 나는 모든 것에 폐쇄적이고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쉽게 말하자면,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문뜩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메말라 가던 내가. 나한테 물었다 ‘나는 살아있나……?’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배우고 함께 움직여보고도 싶었고, 살아있다는 말랑말랑한 그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모든 걸 내려놓고 인도로 떠났었다.

나에게 던지는 물음 ‘살아있는 인도’
인도. 나에게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게 된 곳.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한번도 외국을 가본 적이 없었다. 난 오직 인터넷과 책을 통해서만 외국을 봐왔고, 옆집에 살았던 외국인 노동자분들과 학교에서 친하게 지냈던 교환학생들을 만나면서 외국을 알았다. 그렇기에 인도는 간접경험뿐이었던 나에게 마치 세계지도에서 보이는 인도라는 이름처럼 그저 보이기만 하고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인도 아쌈주 가우하티에서 살면서, 살아 숨쉬는 인도와 사람들은 나에게 생기와 호흡을 나눠주었다. 인도는 ‘나는 살고자 하는 삶 자체요. 살고자 하는 삶의 한 가운데 있다’라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말을 정확히 느낄 수 있었던 곳이었다.

‘사람 그 자체’ 살아있는 인도
인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Where are you from? 너는 어디 출신이니?’ 이었다. 인도라는 나라가 넓어서, 인도 자국민이라도 다양한 인종과 지역출신들이라 출신을 묻는 질문을 일상 속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나 또한 이 질문을 많이 들었다. 내가 KOREA에서 왔다고 대답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날 KOREA이라는 외국 나라에서 온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옆집 사는 사람, 인도에 어느 지방사람처럼 대해주셨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모를 수 있지만, 지구라는 별에 나는 그저 어느 곳에 사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대하는 인도인들에게 놀랐다. 내가 만났던 인도인들은 어느 누구보다 넓은 세계관을 가지고 사람들 자체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나는 '한국에서 외국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 자체로 받아 들였나'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편협하게 외국인들을 어느 나라 사람이라는 인식과 국적으로만 가지고 대하진 않았는지를 말이다. 인도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외국인이 아니었다. 나가랜드, 마니푸르(인도 동북부지역명)사람처럼 생기고 동네에서 덩치가 큰 아이, 한국에 고향 집이 있는 황은미이었다,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 속에 살아가는 인도사람들과 살면서 나는 온전히 나일 수 있었고, 나를 마주보고 있게 되었다. 그 곳에서 나를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그 분들을 받아들이면서, 다다, 바이듀(언니 오빠 호칭)과 말이 안 통해도 함께 즐겁게 비훗춤을 추기도 하고 나눠먹기도 하는 등 시간을 보내고 다양한 이야기 나누었다. 잠시나마 한 곳에서 살아가면서 사람 그 사람자체로 느끼고 마주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배웠다. 누군가를 편견과 배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함을 느꼈다.

3년이 지난 지금. 난 다시 한국에 돌아와 하나의 틀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을 쓰며 두꺼운 가면을 쓰고 나를 포장하고 남들과 비교하기 바쁘다. 다시 그 때처럼 온전히 ‘내 자신’이려 노력하고 사람들의 다름을 이해할 필요성을 느꼈다. 2부에 걸쳐 인도 나가랜드에서 일본군을 격파한 몽골리안 앙가미족있었던 내 모습들을 다시 떠올리며 인도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을 함께 공유하고 다시 느끼고자 한다. 

 

* 인도 아쌈주는 우리가 흔히 카페에서 먹는 아쌈홍차가 나오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인도의 이미지와 다르게, 아쌈와 나가랜드, 마니푸르등 인도 동북부지역은 소수민족이 많고, 힌두교,무슬림,기독교가 각각 2-30%정도를 차지하고 그 외에도 여러 종파가 있기에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한다. 한국 사람처럼 생긴 몽골리안부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도인들도 있다. 주변 국가(네팔, 방글라데시, 중국국경 등)과도 가까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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