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 낙관론에 대한 선두적인 우상파괴자(에브게니 모조로프)가 벨라루스에서의 학창시절에서부터, 불가리에서의 수학을 거쳐 중앙 유럽에서의 NGO 활동과 미국에서 『넷 딜루전』The Net Delusion의 저자로서 명성을 쌓기까지의 편력을 이야기한다. 평등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정보 인프라에 필요한 변화에 대한 급진적인 관점을 담았다.

 


[91 jan.feb 2015] 에브게니 모로조프, <데이터 센터를 사회화하자!> - ①
[91 jan.feb 2015] 에브게니 모로조프, <데이터 센터를 사회화하자!> - ②
[91 jan.feb 2015] 에브게니 모로조프, <데이터 센터를 사회화하자!> - ③
[91 jan.feb 2015] 에브게니 모로조프, <데이터 센터를 사회화하자!> - ④

 

 

 

 


당신은 구글에 대한 유럽의 저항이 단지 새로운 기업에 대한 기존 기업의 반대라며 묵살한다. 그럼에도, 이 사실은 모든 신자유주의 소들이 밤에는 똑같이 검다는 이유로 당신이 사람들에게 단념하고 좇으라고 말하는, 미국이라는 불가항력 앞에 깔린 길 위 현실에 존재하는 조약돌(걸리적거리는 정도의 장애물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듯 – 옮긴이)이 아닌가?  

 

유럽식 구글을 개시해야 한다는 지역 정치가들의 지속적인 요구, 그리고 베를린이나 브뤼셀에서부터 나오는 다른 제안들 대다수는 길을 잘못 들었거나 섣부르다. 유럽식 구글은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 오늘날 구글은 검색 기업 그 이상이다. 구글은 핸드폰 운영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곧 다른 스마트 기기, 브라우저, 이메일 시스템, 그리고 심지어는 꽤 많은 케이블과 광대역 인프라의 운영체계를 관리하게 될 것이다. 이런 활동들을 넘나드는 것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유발한다. 아무리 대학에 12억 달러를 쏟아 붇고 구글을 능가할 만한 더 나은 검색 알고리즘을 개발하라고 요구할지라도 그것을 복제할 수는 없는 법이다. 도전자들이 구글과 똑같은 기초적인 유저 데이터를 소유하게 되지 않는 한, 구글은 지배적인 위치에 남아 있을 것이다. 개선된 알고리즘으로는 충분치 않다.   

 

유럽이 타당성을 유지하려면, 데이터와 그것을 생산하는 인프라(센서, 핸드폰 등)가 갈수록 경제 활동의 핵심 영역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구글의 진입을 허용하고 몇몇 무료 서비스의 대가로 이 모든 것을 움켜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만약 유럽이 진정 심각했다면, 데이터의 판매를 엄금하는 별개의 법적 체제를 수립했어야 했고, 이후 보다 작은 기업에게 그런 식으로 보호된 데이터 위에서 (검색에서부터 이메일에 이르기 까지) 해결책을 고안하도록 해야 했다.

 

『넷 딜루전』 이후 당신의 정치적 진전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음, 원래 나는 스스로를 실용적 영역의 중심에 서있으며, 다소간 사회 민주주의적 관점을 지녔다고 간주했다. 그러한 방향은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던 종류의 질문들이 확장되어가는 과정 중에 재설정되었다. 그래서 5년 전쯤의 내가 페이스북과 구글과 같은 부류를 규제할 수 있는 더 낫고 효과적인 방식을 찾는 데 만족했었더라면, 오늘날의 나는 그러한 활동에 시간을 그다지 많이 투자하지 않는다. 대신에 나는 인프라와 그것을 통해 운영되는 모든 데이터를 누가 운영하고 소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더 이상 이러한 모든 서비스가 시장에 의해 조달되고 단지 사후에 규제되어야 한다는 걸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그것을 두서없고 유물론적인 관점 양측 에서 쓰는 것은 도전이다─의 역사에 대한 나의 계보학적 연구의 과정에서 나는 적잖은 시간을 실리콘 밸리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 지를 이해하려는 데 투자했다. 실리콘 밸리 그 자체를 어떤 더 광범위의 역사적 내러티브─생산과 소비에 있어서의 변화, 국가 형태에 있어서의 변화, 감시 능력의 변화와 미군의 요구에 대한─ 위에 위치시키지 않으면, 어떤 그럴 듯한 이야기도 전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선 맑시스트의 역사 기록학[각주:1]으로부터 배울 점들이 많다. 특히 ‘인터넷’의 기존 역사 대부분이 자본과 제국에 대한 의문은 등한시 한 채, 관념적인 엉뚱함ideational irrelevance에 빠져있을 상황에서 말이다.

 

2013년 여름 혹은 가을에 나는 점증하는 개인 데이터의 상품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모든 것은 실래콘 밸리─스마트 침대, 스마트 차, 그리고 스마트한 모든 것─에 의해 중개되는 하나 혹은 다른 방식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깨어있는 상태로 (또한, 짐작건대 자고 있을 때에도) 보내는 모든 순간들을 포착해서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데이터 포트폴리오를 관장curate하는 데이터 사업가로 초대된다. 분석적으로 봤을 때, 모든 것에 대한 데이터화는 일상의 금융화라는 광범위한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나는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멈출 수 있을지 등의 의문들에 대한 답변이 기술보다는 정치에 더 밀접하다는 것이 어떻게 명백해질지를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다. 또한 내가 아무리 대안적 정책을 계속해서 제안할지라도, 구조적인 이유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란 것도 깨달았다. 유럽이 실리콘밸리를 대체할 만한 프로젝트들을 형성하는 데 그렇게도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유럽의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단지 그로 인해 발생할 개입들─미국 기업에 대한 의존 줄이기, 경쟁력이나 기업가 정신을 기본으로 하지 않는 창업initiatives을 장려하기, 시민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인프라에 투자할 자본 모으기─이 현재 신자유주의적 유럽이 견지하는 입장과 명백히 대치되기 때문이다. 브뤼셀에서 거대 기술 기업들을 대표하는 로비스트들이 그러한 논쟁을 주도하는 상황은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다른 말로 하면, 유렵이 ‘인터넷’을 다루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이 아니라 유럽을 역사화하는historicizing Europe 편이 훨씬 낫다. 한때 나는 가장 기초적인, 심지어는 피상적인 수준─예를 들어, 유럽의 반독점 및 경쟁촉진 법antitrust and competition law의 진화, 혹은 ‘사회적 혁신’이라는 순진한 이름 하에서 제3의 길[각주:2]과 뜻을 같이 했던 다양한 아이디어의 보급을 살핌으로써─에서 몇몇 작업을 수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스스로의 사회민주주의적인 안주함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넷이 모든 것으로 퍼지는 것과, 거대하고 중앙 집중적인 데이터수집의 정치적 함의는 무엇인가?

 

기술 기업들은 모든 종류의 정치적 어젠다를 법령화 할 수 있으며, 지금 당장이라도 그 우세한 어젠다는, 추방된 이민자나, 부채를 변제하지 못할 것 같은 빈민들을 구별해낼 수 있는 중앙 집중적 데이터를 이용함으로써 신자유주의와 긴축austerity[각주:3]을 강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적절한 제도적─이로써 내가 의미하는 것은, 정치적─설립에 있어서 거대한 긍정적 잠재력을 내포한다고 믿는다. 당신이 내 활동의 일부를 관찰한 뒤 내게 그것에 대해 제안하거나 예견할 때, 만약 나의 다른 활동 또한 관찰다면 서비스가 훨씬 더 나을 것이라 가정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구글이 나의 웹 검색, 이메일, 위치를 관찰한다는 사실은 이 카테고리들 각각에 대하여, 만약 그들 중 단 하나만을 관찰했을 때에 비해 훨씬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이러한 논리를 견지하면 궁극적인 결론에 도달했을 때, 200개의 다양한 정보 서비스 공급자─규모 효과scale effect(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로 이해하면 될 듯 – 옮긴이)로 이용자들은 편리해지므로, 당신은 단 하나의 공급자를 원한다─를 원하지 않으리란 것은 명백하다. 물론, 중요한 문제는 공급자가 사적 자본주의 기업이어야 하는지, 혹은 정보국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운 데이터 공유 협약에 도달할 수 있는, 연합되어 공적으로 운영되는 서비스들의 집합이어야 하는지다.

 

대중교통은 때로 손님을 하나도 태우지 않는 기차도 운행되는 현재의 엄격한 체계에 비해, 만약 어디서 사람들을 태워야 할지에 대한 예측분석 등으로 모든 사람들의 위치에 근거하여 조정될 수 있다면 훨씬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그건 단지 비용을 절감해줄 뿐만 아니라, 환경 친화적인 인프라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나는 모든 이가 전자 팔찌(범죄와는 전혀 상관없다 – 옮긴이)착용을 의무화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록 그러한 장비들은 주(州) 차원─국제적일 필요는 없다─에서 작동되어야겠지만, 나는 그런 장비들을 감시하는 데에 반대하지 않는다. 당신이 비(非)-신자유주의적 체제가 21세기에 어떻게 작동할 수 있으며 환경과 기술 모두에 여전히 건설적일 수 있는지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런 종류의 문제를 붙들어야 한다. 그 문제를 회피할 방법은 없다. 당신은 단지 어떤 회사가 공급할 수 있는 서비스들보단, 우리의 공동체 생활을 위한 전반적인 정보 인프라에 대해 생각하고 계획을 짜야 할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자는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괜찮아, 우리가 사기업들이 그렇게 하도록 규제할게.”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타당하지 않다. 지금 이 시점에 구글을 규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떠올리기란 매우 어렵다. 그들에게, 구글을 규제하는 것은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좋다, 구글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자.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룰 수 없다. 그 순간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붙들 힘과 자원을 갖지 못한다. 유럽에는 필수적인 대안적 비전을 발전시켜나갈 정치적 의사가 없다. 상황은 바뀔지도 모른다. 내년에 포데모스Podemos[각주:4]와 시리자Syriza[각주:5]가 선거에 승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까?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비-신자유주의적이지만 기술친화적인 세계의 유토피아적인utopian 비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당신이 성립하리라 예상하는 상대적으로 양호한benign 중앙 집중적 ‘빅 데이터’ 배치를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인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적 찬양을 늘어놓지 않는 정부가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민간 기업들이 이러한 것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하기 위해선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또한 내기에 응하여, “우리는 개인들의 프라이버시를 믿기 때문에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이 감시받게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데이터에 대한 모든 요청사항들을 되돌리는 강력한 법적 체계를 갖출 것이다.”라고 말하는 정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인프라를 좀먹는 너무 과도한 율법주의로 역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좀 까다롭다. 문제는 어떻게 실제적으로 시민들을 위한, 심지어는 검색 엔진의 경쟁에도 호의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강력한 기업들이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주로 알고리즘이 아니라 데이터 때문이었고, 그 힘을 억제할 유일한 방법은 그 데이터를 완전히 시장의  영역에서 빼와서 어떤 회사도 그것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데이터는 시민들에게 생길 것이고, 다양한 사회적 층위에서 소유될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를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은 일종의 라이센스비를 지불해야 하고, 정보 전체가 아니라 오로지 정보의 특성attributes에 접근 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의 저량(貯量)이 결국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기업 저장고로 끝나지 않고 성장하도록 허가할 법사회적 체제를 이해하지 않고선,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걸 이해한다면, 모든 종류의 사회적 실험이 가능해질 것이다. 충분한 데이터로 당신은 개별 소비자─지역 사회, 지역, 도시의 차원에서─라는 지평선 너머에서 계획을 시작할 수 있다. 그것만이 집중화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데이터의 법적 위치를 바꾸지 않는 한, 성공할 수 없다.

 

 

 

 

당신은 기본적인 선택이 ‘빅 데이터’ 세계의 두 형태─하나는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민간 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다른 하나는 국가와 같은 기구에 의해 운영되는─사이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 시스템이 국가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데이터의 위치를 변화시킬 법률을 통과시켜야 하며, 그것을 집핼할 국가 필요하다. 확실히 그렇지 않다면 국가의 개입은 줄이는 편이 낫다. 나는 모든 이들의 데이터를 빨아들이는, 마치 비밀경찰 같은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공유재commons에 대한 급진 좌파의 언급은 눈여겨볼만 하다. 단지 중앙 집중적으로 계획되고 운영되는 저장소를 기본으로 하지 않을 데이터 저장소, 데이터 소유권, 데이터 공유의 구조를 상세히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시민들에게 소유된다면, 굳이 국가에 의해 운영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단지 두 가지 선택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또 다른 아이디어는 시민들에게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을 넘김으로써, 하지만 기본적인 법적 위치는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구글과 페이스북의 독점을 종식시킬 것이다. 그렇게 개인들에 대한 정보는 그들이 팔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된다. 그건 재런 래니어[각주:6]의 모델이다. 하지만 만약 시민들에게 돈 찍어내는 기계로서 데이터를 건넨다면, 우리는 모두 기업가가 될 것이며, 그로 인해 일상의 금융화는 극단적인 수준까지 확대되어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각, 감정, 사실, 아이디어를 화폐화하려는 강박관념─왜냐하면 그들은 이러한 것들이 분명해진다면, 그들은 개방 시장에서 구매자를 찾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을 심어놓을 것이다. 이건 인간 사회의 풍경을 현재 신자유주의의 주관성보다 훨씬 악화시킬 것이다. 내가 보기엔 오직 세 가지 옵션이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최상의 알고리즘을 보유하고 있고 최선의 예측을 할 수 있다는 등의 근거에 따라, 그들이 모든 것을 중앙 집중화하고 모든 데이터를 모으는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시민들이 그것을 소유하고 팔 수 있게 데이터의 위치를 변화시킬 수 있다. 또는 시민들은 그들의 데이터를 소유하지만, 그들 삶에 대한 보다 공동체 차원의 계획을 위해 팔진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이 내가 선호하는 옵션이다. 

 

그럼 당신은 미래는 불가피하게 지금(컴퓨팅 파워의 대규모 집중화와 하나의 독점 또는 과점에 의해 운영되는 데이터)과 같을 뿐이라는 생각을 거부하는가?


최후의 전선(戰線)은 명백하다. 그것은 이 모든 센서, 필터, 프로필과 알고리즘을 관료제와 기업으로부터 해방시켜 시민들과 지역 공동체가 이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만약 현재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경향이 지속된다면, 상상컨대 부자들은 그들의 감각을 배양하고, 언어를 배우고, 예술을 알아가고, 공부하는 데 즐기는 반면, 빈자는 데이터에 따라 처리하는 자동화의 노예(‘노예’라는 표현은 의역임 – 옮긴이)─그 결과, 그들의 모든 시간은 일하는 데 쓰일 것이다─가 될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컴퓨팅의 미래가 아니다. 그것이 어디에 쓰일 수 있느냐가 문제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런 회사들이 그들의 권역을 일상까지 확장해서 심지어 왜 당신이 다른 모델을 원하는지 조차 명확히 할 수 없게 되는 지점에 이르리라 예견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런 기업들에 뿌리를 박고 있는 이러한 기술과 정치를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을 허용하거나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과거 60년대 머레이 북친[각주:7]이 <Post-Scarcity Anarchism>[각주:8]에 실린 그의 에세이에서 언급했던 (우리를 풍요롭게 살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기술이 맡을 거라는 유토피아적 미래를 짐작할 수도 있다.

 

- 끝 -

 

 

<원문 p. 61-66>

 

 

 

socialize the data centres!(evgeny morozov).pdf

 

* <뉴 레프트 리뷰>는 1960년 영국에서 창간되어 격월로 발간되는 잡지입니다. 이따금 한국어로 번역되어 단행본(도서출판 길)으로 출간되긴 하지만, 영어판 잡지에 기고된 글을 선별적으로만 다루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BIG HIP>에선 <뉴 레프트 리뷰>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글들을 최대한 번역해서 수록할 예정입니다.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에, 분명 오역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걸 발견하신 분이라면, 제게 훈수를 두셔도 좋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여기서 공동 번역 작업을 제안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진출처:
http://gizmodo.com/5875571/google-just-made-bing-the-best-search-engine
http://newstrack.ng/technology/33-ict/4774-facebook-rolls-out-video-calls-on-messenger-in-nigeria-norway-oman-us-others
http://setup.nl/content/evgeny-morozov-boat

 

  1. 맑시스트 혹은 사적유물론자의 역사기록학은 맑시즘에 영향을 받은 역사기록학의 한 유파다. 맑시스트 역사기록학의 주된 교리의 중심에는 역사적인 결과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경제적 제약과 사회 계급이 있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2. 좌ㆍ우의 이념을 초월하는 실용주의적 중도좌파 노선을 일컫는 말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정책 브레인으로 잘 알려진 앤서니 기든스가 논문 <좌우를 넘어서>에서 사회주의의 경직성과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이념 모델로 제시한 데서 출발한다. 앤서니 기든스는 <제3의 길>이란 저서에서 신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모두 반대하고 '제3의 길'로 불리는 새로운 사회발전 모델을 주창했다. (옮긴이 -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3. 경제학에서, austerity는 정부 예산 적자를 줄이는 정책을 말한다. austerity 정책은 종종 지출 삭감, 증세, 또는 둘의 혼합을 포함한다. austerity는 수익을 지출에 가깝게 맞춤으로써 신용평가기관과 채권자들에게 정부의 재정 원칙을 입증하기 위해 실시되곤 한다. austerity는 또한 정치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추동되거나, 외부 기관에 의해 시행되기도 한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4. ([poˈðemos], 영어로 “할 수 있다”로 번역되는) 포데모스는 2014년 파블로 이글레시아스Pablo Iglesias를 중심으로 창설된 스페인의 좌파 정당이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5. 두문자어로서 Syriza(때로는 SYRIZA로, 그리스어로는 ΣΥΡΙΖΑ, 발음은 [ˈsiɾiza])로 널리 알려진 극좌 연합은 그리스의 좌파 정당이며, 2004년 좌파와 극좌 정당의 연합으로 탄생하였다. 시리자는 그리스 장관을 역임하고 있는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f 당의장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 의회의 최대 다수당이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6. Jaron Lanier Lanier에 대해선, Rob Lucas, ‘Xanadu as Phalanstery’, NLR 86, March-April 2014 참고. [본문으로]
  7. 머레이 북친(1921.1.14. - 2006.7.30.)은 미국의 무정부주의자이자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libertarian socialist로서 작가, 연설가, 역사학자이자 정치이론가였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8. 는 램파트Ramparts 출판사에서 1971년에 출간된, 머레이 북친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북친은 가능한 무정부주의의 형태는 빈곤-이후의 조건 하에서가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의 개요을 서술한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 <뉴 레프트 리뷰>는 1960년 영국에서 창간되어 격월로 발간되는 잡지입니다. 이따금 한국어로 번역되어 단행본(도서출판 길)으로 출간되긴 하지만, 영어판 잡지에 기고된 글을 선별적으로만 다루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BIG HIP>에선 <뉴 레프트 리뷰>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글들을 최대한 번역해서 수록할 예정입니다.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에, 분명 오역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걸 발견하신 분이라면, 제게 훈수를 두셔도 좋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여기서 공동 번역 작업을 제안하고 있는 셈입니다.

 

[91 jan.feb 2015] 에브게니 모로조프, <데이터 센터를 사회화하자!> - ①

 

 


어떻게 당신의 작업에 정치와 기술을 접목시킬 수 있었나?

 

2004년 이후, 나는 우크라이나와 다른 지역의 시위자들이 문자 메시지와 블로그를 통해 결집된다는 이야기를 믿었다. 2006년 3월 벨라루스는 선거를 앞두고 있었을 때, 나는 자문해봤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 시점에, <트랜지션>Transitions이라는 이름의 인쇄 잡지print magazine를 발간하다 90년대 후반부터 온라인으로만 발간하기 시작한, 프라하Prague에 거점을 둔 NGO 트랜지션 온라인Transitions Online과의 협력을 시작했다. 비용을 대기 위해, 그들은 여러 종류의 부차적 활동을 벌여야 했으며, 그래서 NGO로 탈바꿈한 초기엔 전 소련 블록에서 온 기자에게는 기삿거리를 취재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자기의 삶을 기록하고 싶어 하는 집시Roma를 가르치는데─돈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whatever there was money for─집중했다. 대부분의 기금은 교육이나 지역적 이슈에 관심을 가졌던 소로스 네트워크Soros network에서 마련되었다. 자본의 다른 출처들로는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기금the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인터뉴스Internews, 아마도 독일 마셜 기금the German Marshall Fund, 그리고 이와 같은 미국 조직들에 더하여, 체코 정부와 스웨덴 국제 개발국Swedish International Development Agency 등이 있었다. 대다수는 프로젝트 별로 지원되었다. 결국 트랜지션 온라인은 블로깅이나 사회 연결망social network 등 뉴 미디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영역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쓴 우편을 그들에게 보냈고, 결국 벨라루스 블로그를 인계받게 되었다. 뉴 미디어의 영역이 매우 빠른 속도로 전(前) 소련을 가로질러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을 때, 나는 그들을 위해 전임으로 일을 맡게 됐다. 이 말은 그들을 교육하면서 전 소련의 상당히 넓은 지역을 여행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어디에 머물고 있었나?

 

나는 베를린에서 삼 년하고 반년을─일 년은 유러피언 컬리지 오브 리버럴 아츠에서, 그리고 이 년 반은 NGO에서 일하며─머물렀다. 하지만 2008년 8월에 나는 NGO에서의 일뿐만 아니라 여러 기금 제공자의 태도, 그리고 그들의 기술과 정치에 대한 억측assumptions 때문에 좌절하게 되었다. 소로스는 원하는 어디에서라도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하는 오픈 소사이어티 장학재단Open Society Fellowships을 창설했다. 장학금 중 하나를 받자마자 나는 어디에 머물러야 할지 정해야 했고, 뉴욕으로 간다면 책을 출판하기 더 쉽지 않을까 추측했다. 나는 이미 많은 글─그렇게 깊이 있지는 않지만,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에 자유 기고하던 여러 편의 오피니언─을 쓰고 있었다. 물론 기사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지만, 계간 공학technology 부록과, 잡지 내의 국제 면에 꽤 많은 글을 게재했다. 이미 나는 기술과 정치에 대한 표준적인 지식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었다.

 

이것들이란 무엇이었는가?

 

나는 우리 프로젝트에서 기대했던 결과의 결핍뿐만 아니라 우리가 야기할 수 있는 잠재적 피해 때문에 좌절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장려함으로써 세계를 구하려 했으나, 스스로 뉴 미디어를 통해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던 벨라루스나 몰도바, 혹은 코카서스 등지의 여러 사람들을 결국 우리가 망칠 거라는 것이 내게는 명백했다. 우리가 상당히 많은 돈을 가지고 도착해서 건넨 뒤, 그들은 곧 전혀 다른 식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었다. “좋아, 비록 내가 실패하더라도 나는 또 다른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 후에 우리의 목적 자체도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당시 나는 목적을 믿고 있었고, 만약 우리의 목적이 출판과 대화의 독립적 문화─하버마스의 공론장Habermasian public sphere[각주:1]  같은─를 증진시키는 것이었다면, 그것을 돈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계획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우리는 이러한 국가들의 힘 있는 정부를 지원자로 간주했는데─최소한, 아무도 적이라고 말하진 않았다─그들의 우선사항이 우리와 정반대였다는 것은 명백했다. 우리는 단지 이러한 독립적인 목소리들을 들리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부들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교활하게─감시를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블로거들을 고용하여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만들어내고, 온라인 대화를 조작하고, 웹사이트에서 서비스 거부 공격denial-of-service attacks[각주:2]을 하는 등─뉴 미디어 공간에 툴tool, 기술, 그리고 전략을 신속히 동원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정당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물론 회상해보면, 우리가 그렇게 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미국 기업들이 우즈베키스탄 정부에 감시 장비를 공급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 기금의 소관 밖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첫 책 『넷 딜루전』Net Delusion을 출간했을 때, 나의 목표는 해방의 신호탄으로서 우리가 경탄해 마지않던 여러 툴, 플랫폼 그리고 기술이 마찬가지로 바로 그 활동가, 반체제 인사와 우리가 추구했던 대의cause에 등에 돌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각주:3]  오늘날 이 말은 당연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때 당시 대부분의 기부자와 서양의Western 정권은 단순하게도 독재자들이─그들이 독재적인 정부를 뭐라고 부르든─너무 멍청하고, 체계적이지 않고, 과학 기술 공포증technophobia 때문에 절대 ‘인터넷’을 통제하지 못할 것이며, 그래서 이 정보통신기술의 새로운 물결은 그들을 몰락시킬 것이라 가정했다. 워싱턴에서는 냉전의 종결이라는 서사가 이러한 추측을 굳히는 데 한몫했다. 소련을 몰살했던 것이 자유유럽방송Radio Free Europe과 제록스Xerox 프린터였다면, 이제 블로그와 사회 연결망social network이 민주주의의 전파 작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미국의 주 정부American state가 새로운 툴과 플랫폼에 점점 더 관여할수록, 점점 더 그것에 대해 무언가 할 수 있다고 다른 정부에 귀띔해줄 것이므로, 미국 외교 정책의 기둥으로서 인터넷 자유화라는 이러한 프레임이 새로운 툴과 플랫폼이 대안적 공론장을 형성할 잠재성의 기반도 약화시킬 조짐이 내게는 명백히 보였다. 하지만 『넷 딜루전』을 썼을 때 나는 25살이었고, 결국 워싱턴 싱크탱크에 합류하지end up in a Washington think-tank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그 책은 마치 미국 정책 입안자들에게 스스로 덫을 놓고 있다고 말하고자 애쓰고, 그들에게 달리 행동하라 충고하고 있는 것 마냥 쓰여 있다. 물론, 이제는 그런 식으로 쓰지 않지만.

 

당신은 전세계적인 선거 감시에 있어서 어떤 정부도 국가안보국NSA[각주:4]을 능가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나?

 

그렇다. 나는 국가안보국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하지만─미국 정부에 의한 사이버 공격과 같이─많은 사건들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미 2006년이나 2007년에는 비록 늘 그렇듯 지하디스트jigadists에게서 정보를 빼내기 위해 적들의 웹사이트를 다운take down시키는 걸 원치 않는 CIA와 펜타곤Pentagon 사이의 긴장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하디스트나 다른 적들의 웹사이트를 다운시켜야 하는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에는 그에 해당하는 전용 기구dedicated unit가 있었다는 건 명명백백했다. 그래서 힐러리 클린턴Hilary Clinton이 인터넷 자유화에 대한 2010년 연설에서 사이버 공격에 참여한 나라들을 힐난했을 때, 그것은 최악의 위선이었다. 어디서든 미국 당국자들이 블로거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단지 아제르바이잔Azerbaijan이나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 같은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실제 정책을 고려야해야 하는 것처럼. 그건 인터넷 자유화뿐만 아니라, 인권과 다른 여러 이슈의 모순이다. 이런 해외 정책의 모순은, 미국 자체가 행하고 있던 것은 간과한 채, 러시아, 중국, 이란, 이집트와 다른 국가들이 감시, 검열, 블로거 매수, 기업에 대한 지배체제 설립 등의 측면에서 어떤 종류의 수단과 기술을 진전시켰는지 이해하고자 했던 나의 책 속에 반영되어있다.

 

오늘날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좇는가track?

 

글쎄, 스탠포드의 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아래서 수학했고, 스스로 차기 국방/외교 정책의 ‘신동Wunderkind’으로 홍보했던 제어드 코엔Jared Cohen과 같은 인물을 예로 들어보자. 24살이었던 2006년, 국무부 정책기획부로 들어가기 전에 그는 두 권을 책─르완다Rwanda의 제노사이드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다룬 책과, 청년의 과격화youth radicalization에 대한 책─을 출판했다. 거기서 코엔은 국무부 부장관이었던, 전직 콘트라Contra[각주:5] 통제관 존 네그로폰테John Negroponte와 닷컴 버블 붕괴 직전에 ‘신 경제new economy[각주:6]에 대한 찬양일색의 글[각주:7]을 썼던, 국무부의 정치외교 담당 차관 제임스 글래스먼ames Glassman과 함께 일했다. 하지만 그의 경력은 테크노포리아technophoria[각주:8]의 흐름 속에서 오바바의 선거에서 본격적으로 날개를 폈다take off. 국무부에 계속 남아있으면서, 코엔은 콜럼비아에서 발생한 2008년 반(反)Farc[각주:9] 집회가 페이스북에 FARC에 저항하는 그룹을 만든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게 전부라고 주장하며, ‘인터넷 자유화’의 불가피한 중요성을 논증했다. 실제로는, TV에 중계된 대통령 연설에서 페이스북 그룹을 방송에 내보내고, 모든 일을 조직했던 이는 물론 알바로 우리베Álvaro Uribe[각주:10]였다. 하지만 국무부에 이 사건은 선의를 위한 대중 집회가 신기술을 통해 마법에 걸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방식의 선례showcase로 남았다. 코엔 옆에는, 오바마가 클린턴의 상급 고문으로 임명했던, 국제 관계나 외교 정책에 대한 배경지식이 얕았던 서른 살의 알렉 로스Alec Ross가 있었다. 이 짝패는 소위 ‘기술 집행 여행tech executive trips’을 주선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주요 문화 수출과 소프트 파워soft diplomacy의 근저에는 기술이 있다고 판단하여, 그들은 관련 기업들의 CEO들이 미국의 이미지를 해외로 전파하는 것을 북돋을 수 있도록 결정했다. 그래서 그들은 회장bosses을 준-문화quasi-culture 대사로 임명해, 실리콘 밸리로에서 멕시코, 시리아─아사드를 만났던─ 또는 이라크로 보냈다. 다분히 상징적이게도, 제어드 코엔은 오바바의 중요한 후원자인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Eric Schmidt를 바그다드로 가는 중에 만났다. 그들은 『새로운 디지털 시대』The New Digital Age[각주:11] 의 공동 저자가 되었다.

 

<원문> p. 48-52

 

How and when did you connect politics and technology in your work?


After 2004, I believed the story that the protesters in Ukraine and elsewhere were mobilized through text messaging and blogs. There were elections coming up in Belarus in March 2006, so I asked myself—what’s going to happen there? At this point I started collaborating with an ngo in Prague called Transitions Online, which used to be a print magazine called just Transitions, and in the late nineties became online-only. To pay for this, they had to develop all sorts of secondary activities, so they transformed themselves into an ngo, initially focused on teaching journalists from the former Soviet bloc how to do investigative reporting, or Roma who wanted to write about their lives—whatever there was money for. A lot of the funding came from parts of the Soros network concerned with education or regional issues. Other sources of money included the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Internews, maybe the German Marshall Fund, and alongside these American organizations, the Czech government and the Swedish International Development Agency. A lot of it was project-by-project. Eventually Transitions Online began to express an interest in new media—blogging, social networking etc. I offered to write some posts for them on what was happening in this area, and eventually took over the Belarus blog. When it became clear how quickly the new media space was developing across the former Soviet Union, we agreed that I would work for them full-time. That meant travelling quite widely in the former Soviet Union, doing training sessions for them.


Where were you based in these years?


I stayed in Berlin for three and a half years—a year in the European College of Liberal Arts, then two and a half years working for the ngo. But by August 2008 I had become frustrated not only with ngo work, but also with the attitude of many funders and their assumptions about technology and politics. Soros had created Open Society Fellowships that allowed you to work on a project from wherever you wanted. On getting one of these, I had to decide where to be based, and reckoned it would probably be easier to get a book published if I moved to New York. I was already doing a lot of writing—nothing very deep, but a lot of opinion pieces, freelancing for The Economist; of course, my name was not attached to the articles, but I worked quite a bit on their quarterly technology supplements and the international section of the magazine. I already had some ideas about what was wrong with much of the received wisdom about technology and politics.


What were these?


I was frustrated not only with the lack of the kind of results we had expected from our projects, but also the potential damage we could be causing. We were supposed to be saving the world by helping to promote democracy, but it seemed clear to me that many people, even in countries like Belarus or Moldova, or in the Caucasus, who could have been working on interesting projects with new media on their own, would eventually be spoiled by us. We would arrive with a lot of money, and put them on a grant, and they would soon start thinking very differently: ‘Great, even if I fail I can get another grant.’ Later I began to question our objectives too, but back then I believed in them, and thought that if our aim was to promote an independent culture of publishing and conversation—a kind of Habermasian public sphere—trying to engineer it by doling out money was the wrong way to go about it.


At the same time, while the governments in power in these countries were supposed to be our allies—at least, nobody said they were our enemies—it was clear their priorities were the opposite of ours. We thought all we needed to do was make these independent voices heard. But governments very quickly began deploying tools, techniques and strategies in this new media space that were much smarter than we had anticipated—not only stepping up surveillance, but creating their own propaganda by hiring bloggers, manipulating online conversations, carrying out denial-of-service
attacks on websites. We weren’t raising the right questions about this. Of course, in retrospect there was a reason why we were not asking them. It wasn’t in the remit of the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to be questioning whether American companies were supplying surveillance equipment to the government of Uzbekistan.


So when I began my first book, The Net Delusion, my aim was to show that many of the tools, platforms and techniques we were celebrating as emancipatory could equally be turned against the very activists, dissidents
and causes we were trying to promote.1 Today this sounds obvious. But back then, most donors and most Western governments simply assumed that dictators—or whatever they called authoritarian governments—would never be able to control ‘the Internet’, because they were too dumb, too disorganized, too technophobic, and that this new wave of information technology would bring about their downfall. In Washington the narrative of the end of the Cold War encouraged this: if it was Radio Free Europe and Xerox machines that killed off the Soviet Union, blogs and social media could now finish the job of exporting democracy.

 

It seemed clear to me that this framing of Internet freedom as a pillar of us foreign policy threatened to undermine whatever potential the new tools and platform had for creating an alternative public sphere, since the more the American state got involved in them, the more it would tip off other governments that something ought to be done about them. But I was twenty-five when I wrote The Net Delusion, and thought I might end up in a Washington think-tank, so it reads as if I’m trying to tell us policy-makers they were setting a trap for themselves, and I was advising them to act differently. Of course, I wouldn’t write it that way now.


You weren’t aware that the nsa far exceeded any government in the world in its universal electronic surveillance?


No, I didn’t know about the nsa. But a lot was in the open.cyber-attacks by the us government, for example. Already by 2006 or 2007 it was crystal clear that there were dedicated units within the Department of Defense whose job was to take down the websites of jihadists and other foes, even if there was typically tension between the Pentagon and the cia, which wanted to derive intelligence from them so didn’t want them taken down. So when Hillary Clinton condemned countries that engage in cyber-attacks in her 2010 speech on Internet freedom, it was the worst kind of hypocrisy. Just as when us officials talk of supporting bloggers everywhere, you only have to look at their actual policy in countries like Azerbaijan or Saudi Arabia. It’s not just a contradiction on Internet freedom, but also on human rights and many other issues. These foreign policy contradictions were reflected in my own book, where I was trying to understand what kinds of tools and techniques Russia, China, Iran, Egypt and other such states were developing in terms of surveillance, censorship, buying bloggers, establishing control over companies, without paying attention to what the United States itself was doing.


How would you track that today?


Well, let’s take the example of a figure like Jared Cohen, who studied at Stanford under Larry Diamond, and marketed himself as the next defence/foreign policy Wunderkind. He published two books.one on America’s response to the Rwandan genocide and another on youth radicalization.before getting a job with the Policy Planning Staff at the State Department in 2006, aged twenty-four. There he worked with former Contra-controller John Negroponte, who was Deputy Secretary of State, and Under Secretary of State for Public Diplomacy James Glassman, author of a hymn to the ‘new economy’ shortly before the dot.com bubble collapsed.2 But his career really took off with Obama’s election on a wave of technophoria. Staying on at State, Cohen used the anti-farc mobilization of 2008 in Colombia to demonstrate the vital importance of ‘Internet freedom’ to the State Department, claiming it was all started by a guy on Facebook who had set up a group to protest against the farc. In reality, of course, it was Álvaro Uribe who aired the Facebook group in a presidential address on television, and organized the whole affair. But in the State Department this became the showcase of how mass mobilization for good causes could be magicked up through the new technology. Alongside Cohen, there was now Alec Ross, in his thirties and with little background in international relations or foreign policy, whom Obama appointed as Senior Adviser to Clinton. This pair started arranging what they called ‘tech executive trips’. Since the main us cultural export and basis for soft diplomacy seemed to be technology, they decided that the ceos of these companies could help boost America’s image abroad. So they would fly bosses from Silicon Valley over to Mexico, Syria—where they met with Assad—or Iraq as quasi-cultural ambassadors. Symbolically enough, Jared Cohen met Eric Schmidt, the Google boss who is a key Obama backer, on a trip to Baghdad. They went on to become co-authors of The New Digital Age.3

 

 

socialize the data centres!(evgeny morozov).pdf

 

* 뉴 레프트 리뷰 공식 홈페이지 : http://newleftreview.org/

 

  1. 하버마스에 따르면, “공론장(public sphere)은 여론이 만들어질 수 있는 우리 사회 삶의 영역이며, 공론장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다시 말하면, 공론장은 자유로운 사적 개인이 모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소통 행위를 통해 공공선을 추구하는 이념적, 도덕적, 정치적 소통 행위의 모델이다. (옮긴이 –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2. 시스템을 악의적으로 공격해 해당 시스템의 자원을 부족하게 하여 원래 의도된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공격을 서비스 거부 공격, 혹은 디오에스/도스(DoS)라고 한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3. The Net Delusion: How Not to Liberate the World, New York and London 2011. [본문으로]
  4. 미국 연방 정부의 해독 첩보국으로 미국 국방부 소속이다. 1952년 11월 4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창설되어, 해외 통신과 해외 신호 정보의 수집과 분석을 책임진다. NSA는 암호 해독 분석에 관여하고 타국의 유사한 기관에게서 미국의 정부 통신과 정보 시스템에 책임을 진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5. Contrarevolucionario(반혁명분자) 또는 Contrarevolucion(반혁명)의 약어이다. 1979년 니카라과에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의 혁명이 성공하여 소모사정권이 붕괴되고 산디니스타 좌익정부가 수립된 이후, 반혁명 세력들은 온두라스와 코스타리카에서 반군을 조직하고 니카라과에 대한 무력침공을 꾀하였다. (중략) 1981년 9월 미국은 콘트라반군에게 자금공급, 산디니스타군의 이동 및 위치에 관한 정보제공, 통신수단을 이용한 지원 등 간접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중략) 1990년 2월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친미·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차모로가 당선되면서 그 존재가치를 잃게 된 콘트라 반군은 곧 해체되었다.(옮긴이 –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6.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유망분야가 출현하거나 확대되고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의 공존이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안정 속의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미국경제가 이러한 특징을 보이면서 과거와는 전혀 새로운 경제패턴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여 "신경제"라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옮긴이 – 네이버 지식백과) [본문으로]
  7. James K. Glassman, Dow 36,000: The New Strategy for Profiting from the Coming Rise in the stock Market, New York 1999. [본문으로]
  8. 최신의 훌륭한 하이테크 장치를 구매함으로써 얻는 황홀경 The high you get from purchasing the latestt and greatest high tech gadget.(옮긴이 – urban dictionary) [본문으로]
  9. 콜롬비아 무장혁명조직. (옮긴이) [본문으로]
  10. 콜롬비아의 정치인이다. 2002년 ~ 2010년 대통령으로 재직하였다.(옮긴이 – 위키백과) [본문으로]
  11. Eric Schmidt and Jared Cohen, The New Digital Age: Reshaping The Future of People, Nations and Business, London 2013.(에릭 슈미트, 제러드 코언, 『에릭 슈미트의 새로운 디지털 시대: Google 회장 에릭 슈미트의 압도적인 통찰과 예측, 사람, 국가, 비즈니스의 미래를 다시 쓰다』, 이진원 역, 알키, 20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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