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열풍이 한차례 불어닥친 한국에도 여성 서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만큼 여성 중심 공동체를 특별할 것 없이, 아주 잔잔하게 그려내는 영화를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영화는 안토니아와 자손들의 삶을 지극히 유토피아적으로 그린다. 카메라의 중심에는 언제나 ‘여성’ 이 있다. 여성과 여성의 삶을 존중해주는 유니콘 같은 남자들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사회에서 정한 정상성을 아주 자연스럽게 질문한다. 과연 이 사회가 정한 부계 중심의 정상성이 보편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보편성 역시 인간 사회가 만들어 낸 개념은 아닌가?

아주 다양한 사건들이 각자 의미를 갖고 스쳐 지나가지만, 나는 안토니아의 3대가 균열내는 정상성이 무엇인지 상징하는 바를 짚어보고자 한다.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의 포스터 (출처 - 네이버영화)



안토니아 – 결혼보다는 파트너십으로


 안토니아는 바스의 청혼을 받지만 (“내 아들들에게는 어머니가 필요하오.” 라는, 지극히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청혼이었다.)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그를 거절한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동반자로 산다. 비혼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파트너가 있는 사람이 – 특히나 결혼 가능한 이성 파트너일 경우 – 결혼 대신 파트너쉽 관계를 평생 유지하자고 제안했을 때, 선뜻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거기에는 세금 감면이나 내 집 마련 등 정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이라는 경제적 이유 역시 분명하게 존재할 것이다. 연애 관계의 최종 도착지를 결혼으로 결론짓고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결혼을 권장하는 한국 사회에서 둘의 파트너십은 결혼이 아닌 동반자로서의 삶, 결혼의 대안을 이상적으로 보여준다. 안토니아와 바스는 이성애-유성애 관계를 맺지만, 둘의 파트너십은 이성애-유성애 틀의 바깥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모델로서 작용할 수 있다.


다니엘 – 원하는 가족을 선택할 권리, 이성애 관계에서 이탈하기


 다니엘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한다. 안토니아는 그런 딸을 나무라는 대신에 괜찮은 남자를 직접 물색해준다. 결국 다니엘은 목표했던 대로 테레사를 낳는다. 출산을 남성과 여성의 사랑의 결실로 그리는 클리셰와는 100만광년 정도 동떨어진 행보다. 다니엘의 출산은 새로운 가족을 만나기 위한 일종의 ‘도구’적 행위다. 그 과정에서 남성은 자식을 낳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 다니엘의 행위는 ‘대’를, 자신의 핏줄을 통해 부나 명예를 후손에 물려주고자 했던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 집단과 자손을 낳기 위해 섹스를 한다는 점에서 다를 것 없는 결과를 보이지만, 정반대의 목적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맥락을 보이게 된다.

정상성을 이탈한 다니엘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니엘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 파트너와 평생을 함께하는데, 둘의 파트너십은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안토니아의 공동체에 녹아든다. 둘의 결합은 이상하다거나 특이하다는 시선 없이 안토니아 공동체의 다른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축복받는다. 재생산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여성 당사자를 배제하고, 동성 연애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와 대비되는 행보라고 할 수 있다.


테레사 – 재생산의 자유와 모성 이데올로기, 공동 육아


 다니엘의 딸 테레사가 임신했을 때, 가족들은 출산 결정권을 온전히 테레사에게 부여한다. 아무도 테레사에게 “낳아!” 혹은 “낳지 마!”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테레사가 결정할 일이기 때문이다. 테레사가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했을 때 구성원 중 누구도 그녀의 선택을 부정하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 낙태와 같은 재생산 과정에서 결정권을 온전히 당사자에게 준다는 점에서 안토니아의 작은 사회는 그야말로 유토피아적 면모를 보인다.

사라를 낳은 이후, 테레사는 사라에게 헌신하지 않는다. 애초에 테레사는 결혼에도 초연한 모습을 보였으므로 사라에게 냉담한 게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자녀의 육아에 관심 없는 테레사에게 아무도 모성 운운하지 않는 장면은 몹시 인상 깊었다. 테레사는 늘 그렇듯 자기가 하고 싶은 일 – 작곡 – 에 집중하며 산다. 테레사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 점에서, 이 공동체에는 모성 이데올로기에 의문을 던진다. 과연 모성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인가? 모성을 당연하게 상정하는 사회로부터 주입된 것은 아닌가?

사라의 육아는 아빠 시몬과 다른 가족들이 함께 한다. 사라는 공동육아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형성한 친밀한 관계를 통해 성장한다. ‘어머니의 지대한 관심’ 없이 성장했지만 사라는 누구보다 상냥하고 마음 따뜻한 사람, 감수성 넘치는 사람으로 자란다.


안토니아의 대안 공동체


 안토니아의 공동체는 가부장제 사회의 일반적인 공동체와는 전혀 다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양한 소수자들이 모여 사는 이 공동체는 현실적이지 않다. 사회의 당연한 규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모든 상황이 유별나게 특별한 것처럼 그려지지도 않는다. 영화는 모두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각자가 ‘다른 인간’ 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맞춰 가는 모습을 차분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그 점이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이다. 

 이 영화는 1995년에 개봉했다.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아직도 이 영화는 선도적이고 ‘특이’한 영화다. 다양한 관계와 선택지가 당연시되는 안토니아와 가족들처럼 한국 사회도 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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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대학원 발제 준비로 재일 조선인에 대한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의 영화 <박치기, 2004>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던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 이 영화를 봤을 땐 단순히 일본 특유의 재치가 느껴지는 상업영화라고만 생각했다. 머리가 조금 커서 그런지 단순한 상업영화라기보단 정치성이 다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대충 내용을 설명하자면, 영화는 1968년도 교토에서 일어나는 조선학교와 일본학교의 갈등을 그려낸다. 갈등의 극단에는 각 학교의 폭력조직이 위치해 있지만 결국 조선인 여학생 ‘경자’와 일본인 남학생 ‘코우스케’의 사랑으로 평화가 찾아온다는 매우 신파적 결말로 막을 내린다.


영화 '박치기' 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런데 문제는 내용이 아니다. 내용이 ‘보여지는 방식’이다. 2000년대 세계화의 이름 아래 초국가적 공간이 형성된다. 미국만이 ‘Melting Pot’이 아닌 전 세계가 ‘Melting Pot’이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일본 영화계에서는 마치 트렌드처럼 ‘다문화에 대한 고민’, 특히 ‘재일 조선인’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는 재일조선인 출신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Go>, 그리고 <박치기>가 있다. 모두 각종 영화제에서 우수한 상을 차지하면서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은 영화들이다. 이 세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재일조선인을 다루는 시선은 제각각이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에서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재일조선인’이라는 공통점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일본 상업영화에서 재일 조선인에 관한 극영화가 많이 제작되었다면 한국에서는 재일조선인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많이 제작되었다. 재일한국인 양영희 감독의 <디어평양>, <굿바이평양>,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 또 최근에 개봉한 박사유, 박돈사 감독의 <60만번의 트라이>등이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 제작된, 혹은 재일한국인에 의해서 제작된 이 일련의 다큐멘터리에서 재일조선인들이 그려지는 방식이다. ‘위협적인 재일조선인’을 그려낸 일본영화와 달리 한국 다큐멘터리에서는 일본 사회 내의 차별과 극우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순수한 존재로 그들을 구현해 내고 있다.


 이렇듯 일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재일조선인과 한국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재일조선인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인이 또는 한국인이 재일 조선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영화에서 구현해 내는 폭력적인 재일 조선인의 모습을 보며 한국인으로서 마냥 화만 내야 할까. 실제로 50년, 60년대의 재일조선인들과 일본인들의 무력적 갈등은 영화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물론 재일조선인의 폭력은 해방 후에도 ‘해방되지 못한 존재’로서 식민지 제국에 살면서 받는 차별과 고통으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위협적인 재일조선인’이 존재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화는 상상하는 예술이지만 현실에 토대를 둔 상상의 예술이다. 영화가 시대와 사회의 반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일련의 영화들이 재일조선인을 폭력적으로 그려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타당성을 잃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 다큐멘터리에서 그려지는 ‘순수한 재일조선인’의 모습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영화에서 보여지는 ‘요즘 시대에 사는 아이들 맞나?’ 싶을 정도의 순수성은 그들의 한 면일 뿐이다. 그들이 재일조선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그 정체성으로 인해 일본 사회 내에서 차별과 위협에 시달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조선학교를 떠나면 일본 사회에서 사는 똑같은 일본 학생일 뿐이다. 멋 내기 좋아하고, 친구들과 놀기 좋아하는 여느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아이들이란 말이다.


 우리는 흔히 미디어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곧이곧대로 뇌에 저장시키곤 한다. 생각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날 것으로 들어온 정보들은 마치 내 생각인 것 마냥 뇌를 장악한다. 이 날 것의 정보는 또다시 생각의 과정을 생략한 채 입 밖에 나와 누군가의 뇌를 점령하기도 한다.


철학자 벤야민은 근대 인간의 지각 양식을 설명하기 위해 ‘아케이드’를 예로 든다. 아케이드는 19세기 파리 도심에 세워진 아케이드 형식의 쇼핑몰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차 화물칸 같은 상점들로 이루어진 쇼핑몰 양식은 현대에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소비자는 근대에 들어와 ‘이러한 아케이드를 거닐며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다양한 이미지의 ‘파노라마적 연쇄’를 경험하게 된다. 일정한 흐름에 따라 ‘정지’ 상태가 아닌 ‘이동’ 상태에서 상품을 관람하면서 소비자-대중은 주의 깊은 지각 대신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지각만을(김호영, 영화 이미지학, 문학동네) 가능하게 한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의 홍수시대에 사는 우리는 아케이드를 거닐며 지각하는 방식, 대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지 못하고 외연적인 것만을 훑어버리는 편의적인 방식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이러한 편의주의적 지각방식, 사고방식이 현대인간들의 ‘사유’를 멈추게 한다. 이것은 언론, 방송, 영화 등을 포함한 미디어와 그 뒤에 숨겨진 거대담론의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스탈린은 ‘영화는 가장 중요한 대중 선동 수단이다’ 라고 말했다. 소련시대와 나치시대에 영화가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전히 북한에서는 프로파간다로서의 영화와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한다. 물론 21세기는 20세기의 피의 역사의 시대와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안이하게 미디어가 가진 정치성마저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더욱 교묘하게 인간의 의식을 형성한다. 어찌 보면 그것이 미디어의 숙명적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더 ‘보여짐’의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패를 마련해야만 한다.


 바로 ‘질문하기’와 ‘사유하기’ 필자가 이 글에서 제안하고 싶은 방패이다. 다시 영화 <박치기>의 예로 돌아가 보자.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왜 시대는 68년도일까?’ ‘왜 조선인은 폭력적이고 일본인은 순진하게 그려질까?’ ‘왜 재일조선인에 대한 영화에서 재일조선인은 항상 위협적인 존재일까? 의도적으로 질문한 순간 풀고 싶은 궁금증이 되어버린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하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런 여과 없이 영상이 보여주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면, <박치기>를 본 한국 관객들은 재일조선인을 폭력적으로 그린 것에 대해 분노할 것이고, 일본 관객들은 폭력적인 재일 조선인들을 보며 자신들을 다시 한번 피해자로서 재정의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비단 재일조선인의 영화, 혹은 영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모든 미디어,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이미지와 정보들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수동적인 관객에서 능동적인 관객이 된다. 날 것을 정제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힘을 갖게 된다. 또한 ‘사유하기’ 세계의 문을 열 수 있게 된다. 사유할 수 있는 틈새가 발생하는 순간 우리는 더 많은 궁금증이 생긴다. 저절로 찾아보게 되고, 공부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며 이미지가 보여지는 일방적인 사슬에서 벗어나 저 멀리서 관조하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요즘 지하철 내 의자에 앉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엄지를 위아래로 열심히 움직여가며 핸드폰에 열중해 있다. 과연 그중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 ‘보여짐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진정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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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타시나요?  (0) 2015.05.16

(사진=SBS뉴스)



 OECD 35개국 중 34개국의 선거연령은 대부분 만18세이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와 달리 우리나라의 선거연령은 만19세이다. 현행법 상 만 18세가 되면 공무원 시험 응시와 혼인이 가능해지고 국방과 납세의 의무 대상임에도 이와 같은 ‘기타 권리, 의무’와 ‘선거가능연령 간’의 부조화는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고, 민주주의의 확대를 저해하는 요소이다. 선거연령 하향조정에 대해 20대 국회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이를 논의해왔다. 그러나 일부 정당이 ‘학교의 정치화’와 ‘청소년의 미성숙’을 이유로 반대하는 등 제대로 된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국제적 추세, 국민의 의무와 일치하지 않는 선거연령 등의 이유 외에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선거연령의 만18세 하향조정은 필요하다.


 첫째, 선거는 청소년의 권리를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결(self-decision)수단이고 둘째, 선거는 청소년들이 민주주의 가치를 직접 체험하고 시민으로서의 책임성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이며, 셋째, ‘선거권 확대’는 민주주의 진보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선거’는 주권자가 정책 결정에 접근할 수 있게끔 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러나 청소년에 대한 선거권이 제한되어있는 현행법 상 청소년의 목소리를 선거에 투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간 한국 정치에서 청소년 관련 이슈는 소외되었다. 따라서 선거연령 만18세 하향조정을 통해 청소년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자결 수단이 마련되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청소년의 미성숙’을 이유로 선거연령 하향조정을 반대한다. 그러나 민주적 권리의 실현은 ‘스스로 체득하는 기회’를 주어야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Robert Dahl)은 저서 『On Democracy』에서 민주주의의 10가지 장점 중 하나로 ‘도덕적 책임의 증진’을 꼽았다. 달에 의하면 민주주의 하에서 시민은 정책 결정을 통한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에 더욱 책임감 있게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일정 수준의 교육은 필요하다. 이에 2014년 1월 서울시를 필두로 경기도, 광주, 충남, 전북 등의 여러 광역단체가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상태이다. 민주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가르쳐주는 교육과, 이 배움을 실천할 수 있는 권리, 즉 '선거권 보장'은 병행되어야 한다. ‘민주적 가치’에 대한 배움은 ‘민주적 실천’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고 체화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교육 환경에서 오늘날 청소년들은 선거권을 행사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있다. 심지어 1929년 광주항일 학생운동과, 김주열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던 4.19 민주혁명 등 민주시민교육이 없던 시기에도 청소년들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섰다. 따라서 선거연령 하향조정에 대해 학생들의 미성숙을 문제 삼기보다는 학생들을 ‘미성숙의 상태’로 묶어두고자 하는 기성 정치권의 고질적인 관성을 지적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성숙해야만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비로소 민주시민으로서 정치적으로 성숙할 수 있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618 선거권을 위한 시민연대’ 회원들이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한겨레21)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는 소외된 자들을 점진적으로 포용해 나가는 ‘참정권 확대의 역사’였다. 당시 수많은 근거없는 차별과 편견에도 유색인종과 여성이 결국 선거권을 획득했다. 선거권의 부여는 선거를 통해 ‘여러 권리를 향유하는 주체’가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역사가 증명하듯이 ‘선거권의 확대’는 민주주의 체제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지, 퇴행이라 할 수 없다. 선거권 보장은 청소년의 권리와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만18세로의 선거권 하향조정은 청소년으로 하여금 결과에 따른 책임을 상기시키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주인의식’을 증진시킬 수 있다. 아울러 선거권 연령 하향조정이 학교의 정치화를 부추긴다는 일부 정당의 주장 역시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정치로 인한 갈등’은 피해야 하고 혐오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일상에서 끊임없이 마주하는 자연스러운 ‘생활의 영역’이다.


민주 정치에서 갈등은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 그러나 민주 정치는 갈등을 공론화한 뒤 타협의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선거’는 이 ‘타협의 방식’과 ‘결과에 승복하는 시민적 덕성’을 습득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마지막으로 여야 각 정당은 선거연령 하향조정이 선거에 끼칠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태도를 최대한 지양하길 바란다. 선거권의 확대를 저지함으로써 반사이익을 취하려는 반민주적이고 당리당략적 행태는 없어져야 한다.


시민 정치참여를 증대하고, 민주주의 저변을 확대하기위한 방안으로 ‘선거연령 18세 하향조정’ 개정은 반드시 달성되어야 한다.





 남원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다. 역으로 가야 하는데 시내버스로는 시간이 안 맞아 택시를 탔다. 기사님은 살갑게 맞아주시며, 남원역까지는 금방이니까 걱정 말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미터기에 할증 버튼을 누르는 모습을 보았다.(시내 밖의 다른 면에 들어갈 때에는 할증이 붙는 것이 맞지만, 남원역은 시내 안에 위치해있으므로 일반 주행으로 가야 한다.) 잘해봐야 기본요금 정도의 거리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릴 때 즈음, 요금 3840원을 내며 여쭤보았다.     


“기사님, 할증은 왜 누르셨어요?

기사님은 영수증이 발급되서야 겨우 말씀하셨다.

“...지방자치세야.”

나는 살지도 않은 남원에서 지방자치세 840원을 택시기사님한테 납부하였다.     




택시를 잡는 손님과 함께 심야 승차거부를 단속하는 단속원의 모습이 보인다.(사진=중앙일보)



 모든 택시들이 이렇게 주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농간은 이미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택시의 폐단은 이미 뿌리 깊게 박혀있다. 손님을 골라 태우기 위한 승차거부와 목적지까지 굳이 빙빙 돌아가는 주행 행위들은 비일비재하게 자행되어왔다. 승차거부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제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기사들은 교대시간과 같은 사정을 들어 단속에서 벗어나기 쉽다. 이런 연유로 승차거부 신고의 90%는 증거 불충분으로 처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지간하지 않은 이상 기사들은 손님을 가려도 크게 손해 볼 일이 없는 것이었다. 반대로 차가 없는 시민이나 교통약자에게 있어서 택시는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타야만 하는 수단이었다. 심야에는 더욱 그러했다. 택시는 상전이 되었고, '어쩔수 없이 타야하는' 시민들은 콘크리트층처럼 견고한 수요층이 되었다.     


 여기에 택시 요금(서울시 기준)은 내년부로 인상이 확정되었다. 2013년에 600원이 오르고 5년 만에 다시 800원이 오른 것이다. 두 요금 인상 과정 모두 시민의 여론 수렴 과정은 없었다. 또다시 시민들은 근거 없는 인상을 받아들여야 하게 되었다. 과거 2013년 박원순 서울 시장은 인상안에 앞서 "시민 서비스 개선과 운수종사자 처우개선이 동시에 이뤄지는 첫 택시요금 인상이 되길 기대한다 “라고 말헀지만, 5년간 시민들은 인상에 따른 서비스의 개선된 모습을 전혀 인지할 수 없었다. 나아진 것 없이 부담만 가중된 셈이다.     


 최근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 도입에 택시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어제 전국적으로 파업에 돌입하였고, 여의도에선 대규모 집회와 행진이 있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택시에 대한 반응은 냉담하다. 오히려 택시가 없으니 더 빨리 출근할 수 있었다거나 칼치기가 없어져서 좋았다는 반응들이 다수였다. 파업에 대한 지지하는 의견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연합뉴스)


 카풀도 기업의 영리 행위의 일환이므로 이를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허점과 한계는 분명 있을 것이다. 다만 필자가 분개하는 것은 택시의 개선과 자성의 목소리는 하나도 없이 자신들의 기득권 사수에 여념이 없는 작태에 대해서이다. 카카오 측은 출퇴근시간 한정과 휴일에는 카풀금지로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택시 업계는 무조건 도입 반대를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도 택시는 5년간 시민들에게 1,400원의 요금을 인상안을 받아들이며, 우리는 지속적으로 승차거부와 칼치기를 당하고 있다.


 ‘카풀’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택시에 쌓인 불만이 새로운 수요가 맞물려 이어진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임에도 택시업계는 정부의 오판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내년부터 3,800원의 기본요금을 부담해야 하는 시민 입장에선 택시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소비자의 선택을 침해하는 행위와 함께,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파이를 강제적으로 축소하게 된다. 이는 기득권의 일방적인 폭리를 고수하고자 하는 주장이다. 이미 시민들은 기존의 택시 행태에 대해 시민들은 적폐로 규정할 만큼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있다. 그런 적폐에 대한 해소 의지가 없다면, 시민들의 시선은 계속 카풀로 고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자유민주주의가 실제로 모든 이들의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을뿐더러 ‘중립을 표방하는 탈정치화’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무방향성’이 오히려 구조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들은 권위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와 서슴없이 타협하고 자본 세력의 경제적 이익에만 봉사하고 있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성 자유주의만을 타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케인즈식 타협의 산물인 사민주의'의 한계까지 거침없이 지적하는 저자들의 과감한 주장은 분명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현재 우리는 과거에 비해 외형적인 경제발전과 제도화된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정치적 불평등마저 두드러지고 있다.

 

보편적인 정치 권리와 사유 재산권을 주장한 자유주의 사상은 시민 권리의 외형적인 확대에는 기여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실질적인 기본권 증진에는 오히려 방해물이 되어왔다.

 

 

저자 중 한 명인 전병찬 작가에 의하면 자유주의 사상은 ‘기존에 작동하는 권력관계’ 자체를 누락시켰기 때문에 자유주의 사상이 보장하는 정치적 권리, 경제적 자유의 보편적 실현은 ‘진공상태’에서나 가능하다고 진단한다.

 

본인도 적극 동의하는 바이다. 자유에 대한 권리 선언이나 법 제도만으론 개개인의 자유를 적절하게 보장해주지 못한다.  자유의 추구도 결국 사회적 관계안에서 실현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가 실현되기 위한 사회적 조건'이 어떤지에 대해 먼저 살펴봐야한다.

 

그런데 그 사회적 조건이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불리하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원자화된 개인들이 각기 추구하는 자유는 필연적으로 상충하기 마련이며 대개 경제적 우위를 이점으로 법률 자원을 용이하게 구사할 수 있는 강자의 자유가 결국 선택되기 마련이다.

 

정치학자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루칸 웨이는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uneven playing ground)을 설명했다. 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을 바탕으로 ‘대표성을 보장하는 선거 제도’, ‘선거 자원에 대한 동등한 접근’, ‘법의 공정성’ 등이 보장되지 않는 이른바 ‘경쟁적 권위주의 체제’의 출현을 경고했다.

 

'합법이라는 테두리 하에서의 비폭력에 대한 강박'은 현재 87년 체제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현실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합법에 집착하고 중립을 견지하겠다는 무관심한 태도는 결국 현실의 부당함에 힘을 실어줄 뿐이다.

 

작가들의 말마따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기어를 중립으로 해도 차는 어느 한 쪽으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제도적 민주주의에 대한 집착’, ‘실질적 정치 참여의 제한’, ‘무방향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맹신’은 보편적 가치인 자유, 평등을 효과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득권의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기제로 작동하면서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본연의 가치를 퇴보시키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속성인 개인의 원자화, 무방향성’, 그리고 ‘다수결의 한계’는 이 책에서 저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이다. 저자들은 이를 극복하고 정의에 대한 정의를 확립하기 위해 ‘지성’과 ‘정치의 직접 참여 확대’를 융합하는 ‘진리의 정치’를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제도적 보완과 비폭력의 틀에서 상생의 가치를 되풀이해서 주장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행동을 통한 구조 변환을 촉구하고 있다.

 

‘진리의 정치’는 개인의 권리와 행복에만 집착하는 자유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공동체적 가치를 복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익을 얻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이기적 존재’라고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인간관은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시대정신이 되어있다.

 

따라서 이미 이 시대에 내면화된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 관념을 보기 좋게 해체하고 이를 사회적 가치와 공동체적 윤리 추구로 선회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저자들은 진리와 옳음의 기준에 대한 가치 확립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처음 의도했던 바와 상관없이 ‘플라톤식의 엘리트주의’로 변질, 오용될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저자들이 설명했듯이 ‘진리의 정치’에서 말하는 진리는 플라톤의 사상처럼 고정불변의 개념이 아닐뿐더러 엘리트주의는 더더욱 아니다. 외려 진리에 대한 기준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보다 많은 이들의 참여를 장려한다는 측면에서 ‘지성의 탁월함’과 ‘다수 참여의 확대’를 동시에 포용하는 획기적인 시도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적자생존과 개개인의 욕망 추구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시스템을 극복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윤리를 회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방법은 무엇이 있는가?

 

바로 알렉시스 드 토크빌과 로버트 달이 공통적으로 주장한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 사회 참여가 결과적으로 나에게 이익이라는 장기적 관점’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행 정치 제도는 시민의 장기적 관점 확산을 장려하고 정치 참여를 증진시키는 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성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대표성이 왜곡된 선거 제도'와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경제적 조건의 악화' 등으로 인해 오히려 시민의 탈정치화와 정치적 무관심을 부추기고 있다. 다시 말해 정치인을 충원하는 선거 제도와 통치 구조 전반에 대한 대전환의 실패는 ‘87년 체제의 한계’를 방증하고 있는 셈이다.

 

현행 정치 제도는 변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기존 정치인들의 합법적인 회전문 등용을 야기하는 한편, 참신한 신진 정치인들의 개혁의지를 사전에 걸러내는 검열 기제로써 작동하고 있다.

 

또한 ‘합법에 대한 강박’과 ‘방관’에 가까운 ‘관조적 중립’은 ‘선진 시민의식’과 매우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는 정치를 포함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대전환을 방해하는 구태이다.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고든 경찰청장은 ‘조직이 족쇄가 되어 발목을 잡고 법이 더 이상 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해 악인이 그것을 농락하는 상황’에 대해 한탄했다. 영화 속 그의 고민처럼 한국 사회에서 법은 ‘옳음의 이정표’가 아니라 가진 자들이 법적 처벌을 경감하거나 회피하기 위한 ‘기술적 수단’으로 자주 악용된다.

 

박근혜 국정 농단 사태 당시, 법이 정의회복이라는 제 기능을 상실하고 우병우같은 ‘법비’들에게 농락당하기까지 한 상황에 대해 우리는 좌절감을 충분히 경험했다. 법치만능주의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득권의 방패막이가 되어 사회진보를 정체시킨다. 물론 법치정신은 반드시 필요하다.

(2011년 12월 경제위기 당시,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그리스 시위대, 출처: AFP통신 )

 

그러나 사회변화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사회정의에 역행하는 법에 대해서는 설령 그 방식이 폭력을 동반한다할지라도 시민불복종을 통해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이는 폭동이 아니다.

국민의 기본 권리에 대해 정부에 신탁한 권리를 넘어설 때, ‘정부에 대한 혁명권’을 정당화한 17세기 영국의 정치사상가 존 로크 역시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1. 표심이 아닌 ‘옳음과 정의’를 추구하는 진리의 정치를 실현 할 것

2. 그리고 이 진리의 기준을 만들어 가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민 권리를 보장할 것

3. 자유주의적 개인의 관점에서 탈피하여 공동체적 가치에 헌신하는 시민성(civic virtue)을 회복할 것

4. ‘기계적 중립’과 ‘비폭력에 대한 강박’을 극복하는 ’적극적인 저항권‘을 보장할 것

등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2030세대들을 위해 이 책에서 저자들이 외치고 있는 시대적 요구이다.

 

이 책은 현실의 민주주의가 본연의 가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고있는 것이지, 결코 자유, 평등, 민주, 법치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아보인다. 법치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분명 '적당한 사회적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꾸기위해서는 '합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만 사고하는 패러다임'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편집자 주) 본 글은 2014년 작성되었으나, 현 시의성과 부합하여 게재했음을 밝힙니다.



기자. 1년 간 품어온 꿈이었다. 처음엔 저널리즘에 대한 무한한 애정도, 투철한 사명감도 없이 이 일에 뛰어들었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현 상태에 만족하지 않는다. 둘째, 영악하게 글을 쓸 줄 안다. 셋째, 희망을 버리지 않는 염세주의자다. 이 세 가지를 만족할 수 있는 직업은 오로지 기자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했던 언론인의 꿈을 이제는 접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 글은 지금껏 약 1년간 언론계에 기웃거리면서 느꼈던 것들에 대한 짤막한 기록이자,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내 미래에 바치는 헌정서다. 


유난히도 사건 사고가 많았던 2014년 상반기에 나는 인턴이라는 ‘나름의 형태로서’ 언론계에 몸담아봤다. 사회부에서도 사건팀에 배정됐기 때문에 항상 현장에 나가있어야 했다. 일을 시작한 지 정확히 3일 후엔 세월호가 침몰했고, 이후 진주 요양병원 화재, 고양터미널 화재, 브라질 월드컵, 6·4 지방선거 등이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건들을 다뤄보면서 나름의 보람과 뿌듯함도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언론이라는 영역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쫓아가고 있지만 정작 내가 쓴 기사가 오늘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자신이 없었다. 과연 뉴스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단서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깊어져만 갔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1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자회견. (ⓒ 서울신문)


우선 언론사에서 일을 해보며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언론도 기업이라는 사실이었다.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다른 매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광고 외에 마땅한 수익 모델이 없다.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는 누구도 자신의 돈과 시간을 투자해 뉴스를 사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위해 일명 '닷컴기사'라 불리는 자극적인 기사들을 내놓게 된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은 유가족의 아픔을 가능한 한 극대화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소비하도록 돕는 유통자였다. 알리기 위한 취재가 아닌, 취재를 위한 취재를 펼치는 언론계 현장에서 저널리즘이라는 말은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했다. 


기성 언론이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의무를 뒤로하고 스스로 또 하나의 권력이 된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이는 기자들의 특권의식에도 녹아있다. 언론의 공익적 성격 때문에 기자는 그 어떤 직업보다도 사회 정의 실현과 같은 거대담론을 쉽게 품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회 모순을 지적하는 언론의 임무에 반해 언론계 내부에서는 부당한 일들이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사 내에서 인턴과 계약직 비율은 매우 높은 편이다. 또, 아직까지 언론계 현장에서는 폭언이 일상화된 곳들이 많다. 필자도 언론사 인턴 기자 시절 술자리에서 선배로부터 모욕적인 언행을 당한 적이 있다. 그는 후배들의 학력을 따져 물었고, 가족구성원 중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있던 한 인턴을 칭찬하며 추켜세웠다. 업무적인 것 외에 집안 배경이나 학벌을 노골적으로 중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부 언론사 입사지원서에서는 부모, 심지어 조부모의 신상까지 적는 칸이 있다는 점은 가히 충격적이다. 


언론계에는 ‘야마’와 같이 일본말에서 유래한 은어가 많다. '부장님, 사장님, 선배님'이 아니라 '님'자를 빼고 '부장, 사장, 선배'라고 서로를 부른다. 조직 내 수평적 문화와 평등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실상은 일본의 언어 습관을 그대로 들여온 것에 불과하다. 일본말에서는 '사장(社長: しゃちょう)'라고 그 자체에 존칭을 담고 있기에 따로 '님' 자를 붙이지 않는다. 이 같은 언어 습관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돼 오늘날까지 통용되는 기자 사회의 악습들이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례로 ‘사쯔마와리(察回り)’라고 불리는, 수습기자 때 새벽까지 경찰서를 돌며 사건사고를 보고하는 문화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몇 시간도 안 되는 쪽잠을 자며 3개월 간 '사람취급 못 받는 것'을 당연시한다. 아무도 이 악순환을 끊으려고 하지 않는다. 


문제는 성찰하지 않는 기자 개인에게도 있고,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 깊이 침잠한 언론계에도 있으며, 거기에 썩은 동아줄을 놓아주는 정권, 그리고 끝없는 경쟁 속에서 독하게 살아남을 것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에도 있다. 그저 묵묵히 밥줄이 끊기지 않길 바라며 말과 글을 생산수단 삼아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기자라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보면 언론인은 이 시대의 눈물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기자라는 꿈을 단호하게 접으려고 한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해도 좋다. 꿈을 포기하는 과정에서의 구차한 변명이라고 손가락질해도 할 말 없다. 그러나 분명 나에게는 이 꿈을 버리는 데에 대한 확신이 있다. 여전히 현실을 비관하고, 영악하게 글을 쓰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 염세주의자로서 나는 또 다른 실험을 시작하려 한다. 한 언론사에 소속된 기자가 아니어도 세상을 당당하게 인터뷰할 것이고, 숨은 권력에 분노할 것이며, 모든 것을 글과 말로 풀어낼 것이다. 기자라는 이름을 가졌을 때보다 더 자유롭고 근사하게 말이다. 







일신상의 이유로 퇴사?


  회사에서 행정상 제출을 해야하는 사직서에 ‘일신상의 이유’로 적어서 내야했다. 내가 겪었던 복합적인 상황과 내가 퇴사를 결정하게 된 계기/배경에 대해서 그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중이 싫으면 절을 떠나야 한다.’라는 말처럼 떠나는 사람한테는 관심이 없었고 사직서를 쓰는데 복잡한 마음이 들면서 주저리 설명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사직서를 송부하면서 조직내부자들의 귀에 대고 ‘ 과연 이게 나의 희망 퇴사으로만 봐야 할까요? ’ 라고 온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소리치고 싶었다.

  대부분 서류상 퇴사의 이유는 개인적 사정, 사유로 귀결된다. 계속 사직서를 수정저장 하면서 끝내 일신상의 이유로 써서 내버린다. 하지만 퇴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나 근원적 문제에 대해서 모두가 느끼면서 누구도 입밖으로 꺼내지 않고 그곳을 떠난다. 무언가에 의해 떠밀려 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쉽게들 희망 퇴사와 이직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퇴사 밖에 방법이 없다 생각해 선택했고 더 이상 못 버티겠어서 떠났다.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퇴사’를 고민하게 되었고, 나의 아픔이 그저 개인적 사유나 부주의로만 생각된다는 느낌이 들고 아픈 와중에도 일을 이야기하고 생각해야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시간과 일만 생각하는 워커홀릭이 되어버린 나에게 ‘STOP’ 버튼과 쉼이 필요했지만, 뭔가 적응을 못하고 뒤쳐지는 것만 같은 느낌에 아등바등 일을 하면서 버티고 있었던 거였다.  



내 몸에서 보내는 신호 ‘그만 멈춰.’


  확실히 건강의 적신호는 나의 상태를 명확히 알려준다. 젊은 나이에 겪지 않을 질병에 걸렸다. 작년에 회사가 재정이 어렵다고 해서 노동조건을 변경하고 계약서를 수정하게 되었고, 내 월급과 비스므리한 활동비를 지원해주는 용역단체가 건강검진표를 요구했다. 그 덕분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내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그저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 거 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다. 회사에 말씀을 드렸고 나는 일은 해야 했기에 차일피일 치료를 미루어지게 되었다. 휴가를 신청하고 얻는 과정에서 내 상황을 고려해주십사 요청드렸고 우여곡절 끝에 조금 긴 휴가를 얻게 되었다. 그래도 계속 일에 신경 쓰게 되고 휴가임에도 마음이 엄청 불편했다. 일은 되게 해야한다는 일중심 사고, 멋지게 일을 해내고 싶은 마음이나 책임 때문인지 모르겠다. 휴가임에도 일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뭔가 쉬지 못한 상태로 있는 것만 같았다.

  하루는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덤덤하게 말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아파요. 이게 다 스트레스때문이죠 뭐. 사는게 그렇지’ 나는 스트레스를 잘 안받는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몸이 아프고 나니 내가 많이 받고 있었구나를 느꼈다. 스트레스의 주 원인은 바로 회사에서 있는 관계들, 일들이었다. 조직 안에서 소통도 되지 않고 최소한의 배려가 부족하다고 느꼈지만, ‘아닐 거야. 좋은 사람들이야.’ 라고 계속 부정했다. 내가 사회생활과 일을 잘 모르고 너무 많은 걸 바라는 내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회사도 어렵고 다들 바쁘고 힘들게 일하니까 라고 이해하려 했다. 아프고 나서 버겁게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회사의 재정상 어려움은 거짓말이었음을 알게되고 조직안에서 그 누구도 함께 일하고 있는 나를 기억되거나 생각되지 않음을 확실히 느꼈다. 무례했던 조직과 상사, 동료들에 대해서 격렬한 감정과 생각이 들면서 회사 안에서의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았다. ‘ 고슴도치 한 마리 ’가 혼자 노오력하며 일하고 뭔가 이상하고 잘 맞지 않는 공간에서 힘들고 어려워도 캔디처럼 존버하고 있었다. 사실 내 자신을 내팽겨쳐놓고 누군가를 위해, 일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퇴사하고 알게 된 사실, 1+1=0


  한때는 일을 하고 바빠보이는 것이 멋져보였다. 뭔가 역할을 하고 책임을 가지고 한다는 거에 소속감도 느끼고 자아실현을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조직은 항상 어렵다고 말하고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이 밀려왔고 우린 팀원으로 협업을 하며 일을 해나간다. ‘일이니까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일에 얽매여 지내고 공을 들여 열심히 해내야 한다. 또 일 뿐만 아니라 조직생활도 어렵고 힘들어도 사회초년생, 직장인이라는 이유로 아름답게 함께 일해야 하기에 참고 일을 한다. 일을 하면서 ‘퇴사’를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 많이 오지만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다시 사직서를 수정하고 저장해둔다. 그러면서 나는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바짝 세우며 일을 하고, 내 자신은 점점 건강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갔다.

  퇴사를 고민하게 된 수많은 단절점 중 ‘나 상태 안 좋음’을 깨달은 일이 있다. 하루는 퇴근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다음날 출장이 있음에도 술이 날 마시는지 내가 술이 마시는지 모를 정도로 술을 마셨다. 대책없이 술을 마시고 엄청 흐트러진 적 없었던 내가 그날 탄탄대로 길바닥에 슬라이딩하며 뽀뽀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얼굴 오른쪽 광대는 까져서 빨개져있고 안경은 부러져있었다. 그래도 아침일찍 일어나 출장을 가 일하는 내 모습이 안 쓰러워 보이고 짠내 났다. 원인을 특정할 수 없지만 참 버거워 보였고 ‘이대로 괜찮은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직장에서 일이 나를 하게 되었다. 퇴사를 고민하면서 일을 할 때 수란과 딘의 1+1=0 노래를 많이 들었다. ‘나도 그렇고 너를 이해해. 철저히 아무것도 안하고 쉬어도 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에게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추천한다. 

 


SURAN - 1+1 = 0 (feat.DEAN)



( 여유가 없어 여유가 없어 여유가 없어 없어 없어 여유가 )

다들 왜 이래  뭐 땜에 이래 힘 좀 빼 hey hey my baby

일 주 내내 일에 얽매인 채 삐걱대 hey hey why baby

페북을 둘러봐도 인스타를 둘러봐도 관심에 메말라 갈 뿐

알겠어 청춘인 건 근데 좀 버거워 보여 이대로 괜찮을까요

1+1 = 0 and I'm still young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나영

So how bout you So how bout u

일을 해 아니 일이 나를 해

everyday same day 놀자 하니 이젠 노는 법도 모르겠어 Am i crazy whoo

woo 따져보자 엄밀히 어 넌 왜 일에만 공 들이지

해와 달 낮과 밤 세상 만물엔 다 밸런스라는게 있으니

넌 좀 쉬어야 돼 이미 yeah 달고 사는 아스피린

고진감래 다 헛소리지 yeah Just take a little time Relax ur mind yeah

1+1 = 0 and I'm still young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것도 아닌게 되나영

1+1 = 0 and i'm still young

이젠 좀 가만 가만 가만 가만히 가만 가만 가만 가만히 just chill Just chill Just chill

시간이 약이라면 그게 언제인지 알려줘 일에 내 팽개져있던 진짜 나를 찾고 싶어 hey

1+1 = 0 and I'm still young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나영

1+1 = 0 and i'm still young

이젠 좀 가만 가만 가만 가만히 가만 가만 가만 가만히 just chill Just chill Just chill



  어느 순간 워라밸(Work & Life Balance) 라는 말처럼 멋지게 균형점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랬고 그렇게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해서 사회생활을 잘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난 사회생활과 일이라는 블랙홀에 빨려들어가서 몸과 마음도 다쳤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휴가를 보냈지만 나는 아직도 일하는 중인 것 같았다. 몸, 마음도 상태가 안 좋고 더이상 몸이 버티지 못하겠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다시 일터로 돌아가면 날 힘들게 한 상황을 변경할 수 있는 결정권/권한이 없다는 걸 직시했고 ‘그저 아픈 채 익숙하게 일할 뿐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나아질 수 없음.’를 느꼈다. 그렇게 황급히 비상구를 찾아 나가듯이 퇴사를 했다. 사회초년생으로 젊은 나는 일터에서 다 소진, 소모되어서 태워져 도망치듯이 나가게 된 것 같았다. 퇴사를 하면서 사회생활, 일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일은 해도해도 끝이 없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1+1=0?





 한 달에 두세 번씩 이메일과 쪽지로 인턴 관련 질문을 받는다. 대학생 시절 ‘아름다운 가게’에서 인턴생활을 했는데 블로그에서 올려둔 인턴 활동 일지를 읽고 문의가 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면접에서 합격할 수 있는지 물어오는 문의가 10번 중 3번 정도이고 나머지 7번은 인턴 월급에 대한 문의다. 짧게는 2달에서 많게는 4달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인턴 활동에 금전 문제에 대해 문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문의해서 알아보고 인턴 지원을 할지 말지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인턴 급여문제가 심각해진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필자의 인턴 활동 장면 (출처 : 필자 본인)


 필자는 2012년 1월부터 2월까지 약 2달간 인턴생활을 했다. 고용노동부에서 인턴활동 지원금을 받고 활동했다. 재밌던 것은 같은 근무시간을 보내는 같은 기수의 인턴인데도 고용노동부 지원금 외에 나오는 학교 지원금에 따라 40만 원부터 70만 원까지 월급이 천차만별이었다. 월급이 나오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용노동부의 지원 프로그램에 참가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인턴활동에 참여한 경우 무급으로 일하는 친구도 있었기 때문이다.         


 인턴 문제는 월급 외에도 있다. 바로 근무 내용이다. 필자가 고용노동부의 지원금만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턴활동을 한 이유는 인턴 근무 프로그램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2일간의 단체 소개와 체험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서는 책상에 앉아 흔히 말하는 ‘카피+코피+커피’의 과정을 치를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매장에 나가는 물건을 정리하는 ‘되살림터’ 체험, 직접 매장에 나가보는 매장 체험, 독거 어르신과 저소득 가구에 생필품을 나눠주는 ‘나눔 보따리’ 포장 작업, 배치된 부서에서 진행하는 사업 관련 외근 체험을 비롯해 인턴이 보는 단체에 대해 의견을 듣는 발표 시간도 2번이나 있었다. 


 더 좋았던 것은 정기적으로 2층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강연이 진행되는데 강연 주제가 마음에 들면 근무하다가도 내려가서 들을 수 있었고 도서관에서 책도 마음껏 빌려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외에도 필자의 전공에 따라 업무를 줬는데 언론학을 했던 필자에게는 매일 아침 사회공헌 관련 뉴스를 부서 전체 직원에게 이메일로 정리해 보내주는 일과 홈페이지에 게시되는 기사 작성하기가 주 업무였고 국내외 비영리단체의 사회공헌사업 및 홈페이지 구성에 대한 보고서 작성도 추가로 주어졌다.  이렇게 두 달여 동안 알차게 인턴활동을 한 덕분에 현재 근무하고 있는 단체에서 인턴활동을 하며 배운 것들을 많이 활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알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2015년 1월 28일에는 청년 유니온의 주최로 ‘청년 과도기 노동 당사자 증언 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대회 참가자들의 이야기 중에 가장 눈에 들어온 이야기는 미술관에서 두 달간 일했다는 학생의 이야기였다. 그곳에선 인턴 교육 프로그램도 없었으며 주 업무의 90%가 청소와 설거지와 같은 일이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미술관은 왜 인턴을 채용했는지 의문이 든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필자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인턴을 뽑는 단체에서 근무하는 곳에서 근무하는데 그동안 스쳐간 대학생 인턴만 총 7명이다. 인턴 활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직접 짤 때마다 대학생 때 겪었던 인턴활동을 바탕으로 작성하고 있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출퇴근 시간과 전공에 대한 것이었다.  우선 출퇴근 시간을 이야기하자면, 필자가 인턴활동을 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오전이나 저녁시간에 학원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거리상의 이유로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출근을 하고 나서 한 시간(오전 9시부터 10시)과 퇴근하기 두 시간 전(오후 4시부터 6시)에는 집중도가 현격히 떨어져서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데 이때 차라리 학원을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는데 시간이라도 줄여주면 얼마나 좋겠나!) 이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기만 해도 충분히 학원을 다니거나 기타 취미 생활을 할 수 있을 듯하여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단체의 인턴 출퇴근 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정했다. 하루 5시간 근무해서 제대로 배우겠냐는 우려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 인턴에게 하루 8시간씩 가르칠만한 알찬 교육거리가 없다. 또, 주말에 근무를 하게 되면 반드시 대체근무를 하게 했는데 이것만 지켜도 인턴은 자신의 시간을 알차게 사용할 수 있다. (그마저도 최근엔 오후 1시 출근 5시 퇴근으로 바꿨다.) 


 두 번째는 전공 활용 부분이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었던 학생에게는 번역 업무와 사업제안서 작성을 해보게 했고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던 친구에게는 동아리 로고 디자인과 명함 디자인을 과제로 내주었다. 친구들 모두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업무를 맡았기에 결과물에 만족해하며 인턴과정을 수료했다. 이외에도 언론과 인터뷰를 하거나 법정에서 문화재 관련 재판이 있을 때, 박물관에 볼만한 전시가 있을 때 인턴 친구들과 함께했다. 이들에게 그렇게 했던 이유는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우리 단체에 맡겼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약 2년 전부터는 시급을 만원으로 책정해서 인턴에게 지급하고 있다. 시급 만원을 지급하니 단체 입장에서도 인턴을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




필자가 인턴 재직시 받은 명찰이다. (출처 - 필자 본인)



 인턴활동 환경이 안 좋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안 좋다. 어른들의 이기심과 무관심에 많은 청년이 희생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시민단체 경력 7년 차 필자에게도 일어났다. 


 필자는 강의를 듣고 연구논문을 제출하며 3개월간 인턴 활동까지 마치면 이수증이 나오는 국회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시민단체 활동에 대한 매너리즘 때문에 단체의 허락을 구하고 휴직 후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6월에 면접을 보고 합격한 이후까지 국회 인턴이 무급일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설마 국회가 인턴을 무급으로 부리겠느냐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그것은 현실이었다. 거의 99%의 인턴이 무급이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월급을 챙겨달라고 말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연수담당자의 대답이었다. 필자가 아니어도 무급으로 인턴을 하려는 사람이 줄을 길게 서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열정과 시간을 앗아가는 도둑들이 국회에도 있었다. 이들이 사라지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실제로 파이를 굽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선거를 알아갈수록 이상한 것들이 많다. 단편적인 경험을 일반화시켜 말하기는 조심스러운 일이라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밝힐 수 없지만, 공천과 경선 과정은 매번 불투명하게 진행되기로 유명했고 이번 공천과 경선 역시 그러했다.


공천 유무는 정치인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다. 이를 위해 4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며 공을 들여 준비하기도 한다. 공천은 그 중요성 때문에 곧 권력이 된다.


당에서는 전 지역의 상황을 세부적으로 살펴볼 수는 없는 일이므로, 각 지역의 위원장(당협위원장, 지역위원장으로 지칭되나 당별 명칭에는 차이가 있다)의 의견을 중점적으로 참고한다. 위원장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의견을 전달하면 가장 좋겠지만 간혹 이를 악의적으로 활용하는 위원장이 있을 수 있다. 당에서는 공천심사위원회와 재심사위원회를 두어 객관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위원장이 특정 후보를 강력하게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경우 이를 적극적으로 제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실제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이와 관련해 공천 파열음이 발생했고, 각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간 다툼도 꽤 지속되기도 했다.


혹자는 경선이 해답이 될 수 있지 않느냐며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산점을 두는 등의 경선 방식을 두고도 여러 다툼이 있을 수 있을 수 있고, 지난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당원이어도 후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 그 신뢰도에도 의문이 남을 수 있다. 또한 대부분 ARS로 진행되는 경선이 특정 기간을 두고 기간 내에 응답한 경우만 유효 결과로 보는 현 시스템이 지역 당원 과반수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모든 선거가 유권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해야 하지만 지방선거는 특히 지역주민과 더 밀접해있기에 그 의사가 더욱 정확하게 반영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몇몇 전략 공천 사례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이상한 일이었다. 그간 당을 위해 헌신해온 여러 사람을 제치고 꽂은 전략 공천의 결과는 당연히 좋지 않았고, 덤으로 지역주민의 원성까지 샀다. 실패한 전략으로 잃은 신뢰를 다시 쌓기는 수년간 쉽지 않을 것이다. 


파이를 굽고, 맛보는 것은 오롯이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파이를 만지작거리고 있고, 맛보다는 다른 것들을 고려하는 이상한 파이 장사는 언제쯤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예뻐서 산 것이 아닌 파이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빵집에서 예쁜 빵을 고르는 습관이 있다. 왠지 완벽하게 생긴 모양새는 다른 빵보다 더 맛이 좋을 것만 같다. 파이는 더 완벽하게 생긴 것을 고르고 또 고른다. 그런 파이만이 첫 한입부터 마지막 한입까지를 완벽하게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때문이다.


다시 글로 돌아와 비유적인 표현으로서의 ‘파이’를 다시 이야기해보자. 이번 지선 파이를 고르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제일 많이 한 말이 있었다. 구어체로 옮겨보자면 대략 이런 표현이 아닐까 싶다.


“응~ 파이 예뻐서(혹은 맛있어서) 산 거 아니야~ 유행이라 산거지~”


그 어느 때보다 쉬운 파이 장사였던 것 같기도 하다. 유행의 바람은 브랜드를 더욱 빛냈고, 경쟁사들은 위축된 시기였다. 사람들은 필자의 습관처럼 예쁜 파이를 굳이 고를 필요가 없었고, 일괄적으로 파이를 구입했다. 오랜만의 불고 있는 이번 유행의 바람이 기쁘면서도 우려스러운 이유다.


유독 인력난에 시달린 선거였다. 한 쪽은 너무 많은 사람들로 제대로 검증되지 않아서, 한 쪽은 너무 사람이 없어 인원조차 채우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파이는 멀리서 보기엔 멀쩡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가까이서 보면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가까스로 유지한 이 형태는 또 어느 바람에 흩어지게 될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정말 더 잘해야만 하는 시기일 수밖에 없다.


각자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이번 지선을 돌아보며 제대로 된 인력 양성의 필요성도 다시 한 번 느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영역에서 그들만의 리그는 이미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고, 새로운 인력이 유입될 확률은 정말 낮다. 이번 선거의 당선자들 역시 이미 오랫동안 활동해오던 사람들이 대다수다.


유입될 확률이 낮은 곳에서 이들은 그 이전 사람들을 답습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의적‧타의적으로 떠났다. 정신적인 유전자가 동일한 사람들만이 남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같은 결과는 반복되었고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지선을 도운 새로운 사람들은 많았는데 그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 제대로 된 동력을 가진 좋은 바람이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인지 못내 궁금하고 아쉬워진다.


* 이 글에서 ‘파이’는 넓은 의미의 정치를 가리키는 비유적 표현이었음을 밝힙니다.




<참고> 파이 주문지(투표지)의 이동경로


투표 시스템은 나날이 발전한다. 투표를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들었으며, 투표일이 아니어도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사전선거가 생겼고, 개표 시스템은 더욱 정확해지고 있다.  


개표의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개봉된 투표함에서 나온 투표지는 사람의 손을 거쳐 종류별로 쌓인 후(1차) 분류기에 넣어져 각 후보의 투표지를 분류한다(2차). 긴 투표지는 분류과정에서 쉽게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는데, 후보자나 정당이 많을 경우 이 분류 작업이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기도 한다. 컴퓨터에 입력된 분류 결과와 실제 투표지의 개수가 동일하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면 여러 차례의 확인 후 다음 과정으로 넘어간다. 분류된 후보자별 투표지는 다시 확인 작업을 거쳐 컴퓨터의 결과와 투표지 개수를 다시 검증한다(3차). 최종 확인을 마친 마지막 검수자는 결과를 보고하고(4차), 결과를 보고받은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관계자는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뒤 인쇄물을 결과란에 부착한다(5차).


개표 참관인은 투표지의 이동에 따라 개표 전 과정을 감시하며 경우에 따라 이의를 제기하거나 재검을 요구하기도 하고, 지역구별 결과를 캠프에 실시간으로 전달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중앙선거위원회(이하 중선위)가 공식적으로 공개하는 결과보다 더 빨리 확인할 수 있는 이 결과를 통해 각 캠프 본부에서는 후보의 당락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만약 특정 지역의 개표현황이 평균보다 많이 낮다면 기계 오작동, 혹은 참관인의 이의 제기나 재검 요구로 지체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을 만나면 ‘ 요즘 무슨 일 하세요? ’ 라고 묻는다.

 소속이 없고 일을 쉬고 있는 나는 답한다.

 ‘ 저는, 지금 퇴사 중입니다. ’

 

 어느 날 오후 회의를 하는 내 모습을 마주했다.

 내가 제일 힘들어하고 닮고 싶지 않았던 ‘회색인간’이 되어서 말하고 있었다.

 내 모습이 낯설었다.마음 속에는 선인장을 키우고, 세상과 사람들에겐 바짝 가시를 세우고 움츠리고 있었다.

 마치 속살은 섬세하지만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처럼 말이다.

 다들 사회생활이 그렇다고 하니 멀쩡한 척, 괜찮은 척하며 견디며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퇴사를 하면 여러모로 힘들고 포기하고 도망치는 것 같아 머뭇거렸다. 또 일을 해야만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고 존재의 가치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누군가를 포용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기 어렵고

 글을 쓰거나 주변의 것을 예찬하지 못하고 있는 회색 고슴도치였다.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고슴도치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모두가 소모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기로 했고,

 나는 사직서 7장을 쓰고 퇴사를 선언했다.


 회사 행정상 제출해야 했던 사직서 1장엔 ‘일신상의 이유’로 적어야 했다.

 퇴사의 이유는 마음 속의 복잡하게 얽힌 감정실 타래 같은데, 어떻게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나.

 나의 젊은 날에 잠시 일했음에도 삶의 우선순위와 가치가 뒤흔들렸다. 나랑 맞지 않은 옷을 입고 가면을 쓰고 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참 폭력적이여서 마음에 상처투성이었다.

 지금은 나답게 일을 하고 함께 일할 방법을 고민하면서 나의 일경험과 사회생활을 회고하고 있다.

 아직도 난 회사와 일에서 완벽하게 퇴사하지 않은 것만 같다.

 내 안에 이해가, 소화가 되지않은 것들이 참 많다.

 서류상 퇴사했지만, 나는 아직도 퇴사중입니다.


 퇴사하고 나니 홀가분하면서도 덧없음을 느끼고, 또 다른 결의 공허함을 느꼈다.

 바쁘게 지내야 할 것만 같아서 서울을 다녀오던 밤에

 나의 빈자리를 채우는 채용공고를 봤다.

 ‘ 나는 대체가능한 인력이었구나. 내가 대체불가능한 인력이 되고 싶었구나 ’ 를 느꼈다.


 그 날은 잠들기 그른 것 같았다.

 ‘ 벌써 나의 존재가 지워지고 잊혀가는 구나.’ 라는 아쉬움과

 ‘ 새로운 사람은 뭔가 이상한 곳에 잘 적응할까? 나와 다르게.’라는 걱정이 생긴다.

 ‘ 나만 못 견디고 적응에 실패한 걸까 ’ 하는 쓸데없고 자존감을 낮추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계약직이라는 앨범 속에 공집합이 부르는 퇴사 노래를 들으면서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생각을 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 우린 아직도 퇴사 중이구나. ’  



“ 등을 돌려 떠나가네 남겨둘 것 없는 채로

아쉬워할 틈도 없이 예정대로 지워지네


내가 있던 자리. 당연했던 일상. 함께였던 사람들

모두가 낯설어져만 가네


내가 있던 자리. 당연했던 일상. 함께였던 사람들

모두가 낯설어져만 가네

모두가 잊혀져 가고 있네

모두가 희미해져만 가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하루가 그대로 지나가네

아무 일 없이 무사할 걸 알면서 어쩐지 뒤를 돌아보게 되네


등을 돌려 떠나가네 남겨둘 것 없는 채로

아쉬워할 틈도 없이 예정대로 지워지네.

< 퇴사 - 공집합 > 가사



 

[ 퇴사하면서 하고싶었던 말 #1. 넌 날 담을 큰 그릇이 못된다 ]




추신 :

오랜만에 저의 이야기를 담는 글을 쓰네요. 글을 쓰지 않았던 3년 가까운 시간동안 저에게 참 많은 일이 있었어요. 느영나영 함께 살고 나다운 삶을 찾아서 대안적으로 살려했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죠. 딱 그 시기에 사회와 사람에 대한 순진한 희망을 품고 소위 좋은 일을 시작했어요. 차차 글에 담아내겠지만 엄청난 일들을 겪고 나서 두 달 전에 서류 관계로 완벽히 퇴사했어요. 앞으로 제가 듣고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제 퇴사기를 비롯해서 많이들 공감할 수 있는 고민을 담아서 글을 쓸게요. 글과 음악을 통해 함께 알아가고 소통할 수 있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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