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전부터 인턴기자로 일하고 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조급해지고 이내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그토록 바랐던 인턴이었는데 막상 와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적어도 나는 무언가 생각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여기서 하는 일은 대부분 무언가 생산해내는 일에 가깝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구태의연하게 표현하자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다. 물론 그런 우려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언론인이 된 선배들의 조언, 책의 구절, 퇴직한 언론인의 푸념 등에서 그런 기미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의 차이는 컸다. 말로 수차례 듣던 이야기를 현실에서 마주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혹자는 내게 말한다.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물론 이런 말 해주는 사람들 마음 잘 안다. 또 고맙다. 그러나 의미 부여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아무리 옆에 있는 사람이 의미 있는 일이라 말해줘도 내가 그걸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기울이는 사람이었다면 모를까. 냉정히 말해 의미 없는 일은 억지를 부린다고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는다.

내가 하루 종일 붙잡고 있는 일이 의미 없게 느껴지고 재미조차 찾을 수 없다면 그 일은 안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슬프게도 그럴 용기는 또 없다. 왜냐면 대안이 없으니까. 총체적 난국이다. 대안을 찾기 위한 시도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돌아선다.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깝기도 하고 지금껏 온힘을 다해 준비한 적 역시 없어서 후회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많은 걸 잃어간다. 운 좋게 꿈에 가장 근접하게 됐는데 여전히 꿈은 멀게만 느껴진다. 꿈과 대안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사이 자존감은 추락하고 용기와 도전의식 따위는 희미해져만 간다. 함께 언론을 준비했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어 간다. 그들이 부럽다. 적어도 갈팡질팡하지 않고 하나의 선택을 내린 것일 테니까.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는 어떤 소신 같은 것이 생겼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꿈과 대안의 중간지점에 놓인 애매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속된 말로 이도저도 아닌 놈이 된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이런 고민을 어떤 식으로든 유예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된 다음에 고민해도 늦지 않아, 라는 식으로 말이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누가 봐도 어른이어야 할 나이가 됐다. 지난날처럼 마냥 세월아 네월아 방황의 늪에 빠져 있을 수 없다. 꿈을 예리하게 조정하든, 새로운 대안을 찾든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1년 후에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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